윤석열 대통령의 배우자 김건희 여사의 명품가방 의혹 등 ‘김건희 리스크’ 대응 방안을 두고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과 대통령실이 미묘한 긴장 관계를 보여오던 가운데, 윤 대통령이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에게 사퇴를 요구하고, 한 위원장이 이를 곧바로 거부하면서 총선을 80일 앞둔 여권이 격랑 속으로 빠져드는 모습이다.
앞서 윤 대통령이 부인 김 여사 명품가방 수수 의혹에 대한 국민의힘과 한 위원장의 최근 행보에 대해 불만을 표출하자, 21일 이관섭 대통령실장이 한 위원장을 직접 만나 “비대위원장을 사퇴하라”는 입장을 전달했으며, 이에 한 위원장은 즉각 사퇴를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국민의힘 한 수도권 중진 의원은 22일 CNB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윤 대통령은 명품가방 문제는 함정 취재로 인해 벌어졌는데 당에서 이런 부분을 빼놓고 김 여사 사과만 요구하는 데 대해 불편한 감정을 내비쳤다”면서 “이에 이관섭 대통령실장이 21일 한 위원장을 만나 김경율 비상대책위원을 마포을에 ‘자잭공천’한 것은 개인 정치용 ‘사천’이라며 사퇴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그러나 대통령실은 이날 한 위원장 사퇴를 요구했다는 보도와 관련해 “비대위원장의 거취 문제는 대통령실이 관여할 일이 아니다”라고 일축하면서 한 친윤계 의원의 ‘윤 대통령이 한 위원장에 대한 기대와 신뢰를 철회했다’는 주장과 관련해서는 “공정하고 투명한 시스템 공천에 대한 윤 대통령의 강력한 철학을 표현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한 위원장은 논란이 커지자 이날 ‘대통령실 사퇴요구 관련 보도에 대한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 입장’이라는 입장문을 통해 “국민보고 나선 길, 할 일 하겠다”고 대통령실과의 갈등을 사실상 인정하면서도 비대위원장 직에서 물러날 뜻이 없음을 밝혔다.
그리고 한 위원장은 오늘 출근길에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실의 사퇴 요구 및 당무 개입 여부에 대한 입장을 질문받고 “평가는 제가 하지 않겠다. 그 과정에 대해선 제가 사퇴 요구를 거절했기 때문에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말하기 어렵다”며 “제 임기는 총선 이후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비대위원장직 수행 의지를 거듭 천명했다.
이어 한 위원장은 ‘당정 간 신뢰가 깨진 것 아니냐’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여러 시각이 있겠지만 당은 당의 일을 하는 것이고, 정(政·정부)은 정의 일을 하는 것이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김건희 여사 리스크’가 당정 갈등 요인으로 거론되는데 입장에 변화가 있느냐”는 질문에는 “제 입장은 처음부터 한 번도 변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또한 한 위원장은 “4월 10일 총선이 국민과 이 나라의 미래를 위해 정말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그렇기에 제 모든 것을 아낌없이 쏟아붓겠다는 각오로 이 자리를 받아들였고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해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 위원장은 ‘당정 갈등 봉합을 위해 대통령실이 한발 물러서야 한다고 보느냐’ 질문에는 “그런 평가를 제가 할 일이 아니다”고 말을 아꼈다.
이처럼 윤 대통령 측에서 21일로 취임 한 달에 접어든 한 위원장의 거취 문제까지 제기한 배경에는 김 여사 리스크에 대한 입장차가 자리잡고 있다.
한 위원장은 취임 전에는 쌍특검에 대해 ‘정치공작’이라는 입장이었으나 지난 18일 기자들과 만나서는 “기본적으로 함정 몰카”라면서도 “전후 과정에서 분명히 아쉬운 점이 있고 국민이 걱정하실 만한 부분이 있었다”고 말하며 미묘한 입장 전환 가능성을 내비쳤으며 이어 다음날에는 “국민 눈높이에서 생각할 문제”라고 한걸음 더 나가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특히 김경율 비대위원이 지난 17일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원인으로 마리 앙투아네트의 사치와 난잡한 생활을 지적하면서 “(김 여사가) 바짝 엎드려서 사과해야 한다”고 사과를 요구하자 국민의힘 내에서는 “김 여사가 사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한 위원장은 이같은 김 비대위원을 억제시키기는 커녕, 오히려 이날 국민의힘 서울시당 신년인사회에서 김 비대위원을 민주당 정청래 의원 지역구인 마포을에 출마한다고 소개해 ‘사천’ 논란을 빚는 등 대통령실과 친윤계 의원들에게 공격 빌미를 제공한 것이다
이처럼 당정에서 한 위원장에 대한 공개적인 사퇴 요구가 분출한 이상, 한 위원장이 대통령실의 요구에 맞춰 한 발 물러서느냐, 아니면 이번 기회를 ‘윤석열 아바타’ 이미지를 벗고 ‘한동훈 홀로서기’의 계기로 삼아야 하느냐를 선택하는 기로에 선 것으로 보인다.
(CNB뉴스=심원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