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취지로 시작했습니다. 좋게 바라봐 줬으면 합니다”
식품업계 관계자가 조심스레 꺼낸 말이다. 이 한마디에 많은 망설임이 담겨있었다. 그리고 기자는 느꼈다. 정부, 소비자와의 이해관계 속에서 기업의 깊은 고심이 있었단 것을...
최근 농심을 시작으로 삼양식품, 오뚜기, 팔도 등 식품사들이 일제히 라면 가격을 인하했다.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롯데웰푸드, SPC 등 제과·제빵업체들도 가격 인하 대열에 합류했다.
식품기업들은 이달부터 여러 제품의 가격을 내리면서 입을 모아 말한다. 소비자 물가 안정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길 바란다고 말이다. 물가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소비자들의 한숨이 깊어지자 업체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이다.
물론 정부의 압박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을 거라고 짐작된다. 앞서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18일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지난해 9~10월에 (기업들이) 많이 인상했는데 현재 국제 밀 가격이 그때보다 50% 안팎 내렸다”며 “기업들이 밀 가격 내린 부분에 맞춰 적정하게 내렸으면 좋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공정거래위원회에 라면값 담합 여부 조사를 주문했고, 농림축산식품부는 제분업계를 소집하기도 했다.
결국 식품업체들은 일제히 가격을 인하하기 시작했다. 이에 울며 겨자 먹기로, 어쩔 수 없이 제품 가격을 내렸다는 볼멘소리가 들리는 것도 사실이다. 추가로 제품 인하율과 가격을 내린 제품 종류를 두고 곳곳에서 말들이 새어 나왔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라면 제품 가격 인하에 대해 성명서를 내기도 했다. 협의회는 “지난해 9월 농심은 신라면 10.9%, 너구리 9.9% 등 라면 26개 품목 가격을 인상했으나 이번에는 신라면만 4.5% 인하해 지난 인상분의 절반만큼만 인하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 2022년 9월 농심은 제조원가 상승분 등을 고려해 라면 26종 출고가를 평균 11.3% 인상했다. 10월에는 오뚜기, 팔도가 제품 평균 가격을 각각 11%, 9.8% 올렸다. 같은 해 11월 삼양식품도 13개 브랜드 라면 가격을 평균 9.7% 인상하는 등 주요 라면기업 4사 평균 10% 안팎의 제품 인상률을 기록했다.
가격 인하 품목이 제한적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게다가 각 사의 주력 판매 제품들은 대상에서 제외됐다는 비판까지 나왔다. 신라면과 새우깡의 가격을 내린 농심을 제외하고 오뚜기는 진라면, 삼양식품은 불닭볶음면 그리고 팔도는 팔도비빔면 등 인기 스테디셀러 제품들의 가격을 낮추지 않았다.
소비자들은 식품기업들이 핵심 제품 가격을 유지하기로 결정하면서 소비자 체감 물가가 가격 릴레이 인하 이전과 비교해 큰 차이가 없다는 입장이다. 회사원 김모(29)씨는 “때때로 찾게 되는 제품들의 가격이 신라면을 제외하곤 모두 그대로”라며 “상황이 이렇다 보니 라면값 릴레이 인하가 이뤄졌는지도 솔직히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소비자 반응에 이번에는 식품업체들의 한숨이 짙어진다. 무엇보다 좋은 의도로 시작한 일이 꼼수로 비치면서 씁쓸하다는 반응이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CNB뉴스에 “밀을 면발로 가공해내기까지 여러 차례의 공정을 거치게 되며, 이 과정에서 인건비·가스비·전기비 등 공장 가동에 드는 제반 비용이 발생한다”며 “(회사는) 이윤추구를 위해 존재함에도 불구, 소비자 물가 안정이라는 ‘대명제’에 힘을 보태기 위해 부담을 안고 가격 인하에 동참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이어 “장을 볼 때 생산자에서 소비자의 입장으로 되돌아가기에 (소비자) 물가 부담에 대해 충분히 공감한다”며 “하지만 기업들도 속사정이 있다는 것을 현장 고객들이 조금만 헤아려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