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이 작년 7월 도입된 이후 두 번의 상품 심사를 거치며 올해부터 본격적인 가입자들의 선택이 시작된다. 이에 따라 300조원을 돌파한 국내 퇴직연금 시장의 지형도가 어떻게 바뀔지 관심을 받고 있다.
20일 금융투자업계의 의하면 퇴직연금 디폴트옵션은 근로자가 자신의 퇴직연금 적립금을 운용할 금융상품을 결정하지 않을 경우, 사전에 정한 운용 방법으로 적립금이 자동 운용되도록 하는 제도다. 그동안 퇴직연금 가입자들의 상당수는 전문성 부족과 낮은 관심도로 인해 퇴직연금 적립금을 원리금보장상품에 넣어두고 방치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로 인해 퇴직연금 수익률이 저조해지는 결과를 낳았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7년 이후 5년간 연평균 수익률은 2%에 미치지 못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퇴직연금 가입자들의 수익률 제고 목적의 디폴트옵션 조항을 담은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개정안이 수년간 수차례 국회 논의를 거쳐, 2021년 1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2022년 7월 시행됐다.
고용노동부는 2022년 하반기 상품 심사를 거쳐 11월과 12월 두 차례 퇴직연금 디폴트옵션 적격 상품 259개를 위험등급별로 분류해 발표했다. 가입자들은 올해부터 상품 가입을 진행하고 있다. 사용자(회사)는 승인받은 디폴트옵션을 근로자대표 동의를 거쳐 퇴직연금규약에 반영시키고 규약에 반영된 디폴트옵션의 주요 정보를 퇴직연금사업자로부터 제공받아 근로자는 그 중 하나의 상품을 디폴트옵션으로 선정하게 된다.
기존에 운용하던 상품들의 경우 만기 도래 후 운용 지시 없이 4주가 경과하면 향후 2주 이내 운용 지시 없을 경우 적립금이 디폴트옵션으로 운용됨을 통지하고, 통지 이후에도 운용 지시 없이 2주가 경과하면 적립금이 사전지정 운용방법으로 운용된다.
은퇴 시점 맞춰 자산배분 TDF 상품 주목, 미래에셋 점유율 선두
고용노동부의 심사로 디폴트옵션 적격 상품으로 인정받은 실적배당형 220개 상품 가운데 TDF(타겟 데이트 펀드)가 포함되어 있는 상품 개수는 165개로 75% 수준이다. 디폴트옵션 제도가 진행될수록 TDF 시장이 점점 커질 수밖에 없는데, 적격 상품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모니터링 결과로 인해 변경될 가능성도 있지만 TDF는 은퇴 시점에 맞춰 자산 배분과 운용전략이 바뀌게 되는 상품 특성상 디폴트 옵션의 취지에도 잘 맞아 지속적인 성장이 예상된다.
한국보다 먼저 디폴트옵션을 도입한 미국 사례에 비춰 봤을 때에도 제도 도입 이후 TDF 시장은 고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연금 시장은 2006년 미국식 디폴트옵션을 도입한 이후 연평균 25% 이상의 성장세를 보였다. 미국의 TDF도 2021년 말 기준 1조 8000억 달러 규모까지 순자산이 늘어나며 2006년과 비교하면 15배 성장했다.
2020년 뱅가드의 퇴직연금 가입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디폴트 옵션 도입 이후 자동가입 방식을 채택한 신규 가입자 중 80% 가까이 TDF를 선택했다. 기존 가입자 중에서도 30% 가까이 TDF를 선택했다. 이는 디폴트옵션 후광 효과로 인해 가입자들의 TDF 선택이 많았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한국 TDF 시장은 연금의 투자 문화가 본격화되기 시작한 2020년부터 급격히 성장했다. 2019년 말 기준 설정액 2조 8799억이었던 국내 TDF 규모는 2022년 말 9조 1414억원까지 늘어났다. 이 중에서는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작년 말 기준으로 점유율 43%를 차지하며 선두에 있다.
미래에셋은 자체 설계한 글라이드 패스(생애주기 자산배분 곡선)를 통한 운용전략으로 장기 수익률이 우수하다는 점뿐만 아니라 전략 배분, 자산 배분 등 차별화된 상품구조를 통해 합성총보수비용이 저렴하다는 점을 선두의 이유로 꼽는다.
‘미래에셋전략배분TDF’는 TDF 시리즈 중 2025, 2030, 2035, 2040, 2045에서 2022년 말 기준 3년, 5년 장기 수익률 1위를 기록했다. 이번 디폴트옵션 적격 상품 중에서도 미래에셋자산운용이 96개의 TDF 상품을 리스트에 올리며 업계에서 가장 많은 숫자를 기록했다.
또한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이번 디폴트옵션 적격 상품에 130개를 차지하며 전체 상품 중 절반을 차지했다. 전체 운용사 중 100개가 넘는 상품 승인을 받아낸 것도 미래에셋이 유일하다.
미래에셋은 박현주 회장의 강한 의지로 퇴직연금 비즈니스 도입 시점부터 장기 플랜을 갖고 적극적으로 인력 확충과 함께 투자를 진행하며 선제적으로 사업을 강화해 왔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디폴트옵션이 오랜 기간 논의 끝에 어렵게 도입된 제도인 만큼 본래 취지인 퇴직연금 투자자들의 수익률 개선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기를 기대한다”며, “미국 등 연금 선진국 사례를 봤을 때 디폴트옵션의 성공을 위해서는 실적배당 상품 중 메인으로 평가되는 TDF 상품에 대한 운용사별 차별화된 상품구조와 장기 운용성과 등이 중요한 키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