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방위적 압박에 잠시 숨죽인 식품사들
재료값·에너지 가격 치솟아 수익성 악화
“언제 올릴까” 여전히 인상시기 고민 중
식품업계 주요기업들이 기존 가격 인상 계획을 줄줄이 철회하고 있어 주목된다. 이는 정부가 주요 식품사 대표들과 간담회를 열고 물가안정을 위한 업계의 자발적인 협조를 요청한 데 따른 후속 조치로 풀이된다. 하지만 현재 대다수 식품기업들의 영업이익률은 3~4% 불과해 장기적으로는 가격 인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CNB뉴스=전제형 기자)
오비맥주(OB맥주)가 최근 다가오는 주세 인상에도 불구, 당분간 제품 가격을 올리지 않을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하이트진로도 지난달 27일 당분간 소주 가격 인상이 없을 것이라고 공식적으로 못 박았다.
앞서 주류업계는 오는 4월 고지된 주세 인상과 원부자재 가격 상승 등으로 원가 부담이 높아져 출고가를 올릴 계획이었다. 이렇게 되면 일반 음식점들이 소주 1병 6000원, 맥주 1병 7000원에 판매하게 될 것으로 점쳐졌다.
생수 가격 역시 그대로 유지된다. 풀무원샘물은 최근 생수 가격 조정 계획을 변경했다. 이달부터 생수 출고가를 5% 올릴 예정이었으나 당분간 현재 가격을 유지하기로 했다.
이처럼 식품업체들이 줄지어 제품 가격 인상 계획을 철회한 이유는 대통령까지 나서 물가안정을 위해 식품업계에 가격 인상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15일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식품업계에 사실상 가격 동결을 요구하는 내용이 담긴 물가안정 대책을 내놓았다.
이에 따라 관련 기관과 정부 부처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식품기업들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기획재정부는 소줏값 인상 요인을 점검하고 제조사의 주류 가격 인상 동향을 살펴보겠다고 밝혔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소주 등 국민이 정말 가까이 즐기는 그런 품목의 가격 인상에 대해서는 업계의 적극적인 협조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 ‘물가안정’ 지시에 국세청까지 나서
농림축산식품부도 지난달 28일 서울 서초구 한국식품산업협회에서 동원F&B·SPC·농심·오뚜기·삼양식품·오리온·해태제과·매일유업·동서식품 등 국내 주요 12개 식품사 대표들과 ‘물가안정 간담회’를 개최했다.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간담회에서 “최근의 식품 물가를 엄중한 상황이라고 인식하고 있다”며 “서민이 직접 몸으로 느끼는 식품 물가의 조기 안정화를 위해 정부와 식품업계가 더욱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심지어 국세청은 주류업체들과 소통을 강화한다는 취지로 비공개 간담회를 실시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세무조사를 무기로 가격 동결을 요구한 것으로 해석했다.
이 같은 전방위적인 압력에 결국 식품기업들은 ‘백기’를 들었다. 제품 물가안정에 적극 협조하기로 약속했다. 제품 인상 계획을 철회한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쟁 여파로 지난해부터 각종 원부자재에 더해 에너지 가격이 치솟은 가운데 비용에 대한 압박은 오롯이 식품업체들의 몫이어서 고심 또한 깊어지고 있다는 후문이다.
실제로 삼양식품·오리온 등 해외시장에서 높은 성과를 낸 기업들을 제외한 국내 주요 식품사들의 영업이익률은 3~4%대에 불과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체로 매출이 늘었으나 글로벌 곡물 가격과 물류비, 인건비 상승 등 비용이 증가하며 수익성이 악화됐기 때문이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CNB뉴스에 “제품 생산 과정에 포함되는 원부재료, 에너지, 병 등의 가격 상승으로 인해 장기적으로는 비용부담 완화를 위해 가격 인상이 뒤따를 수밖에 없을 전망”이라고 밝혔다.
(CNB뉴스=전제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