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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국민이 노동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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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이성호기자 |  2023.03.03 11:10:58

지난 2월 21일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노란봉투법'이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등 야권 단독으로 통과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안’을 둘러싸고 직접 당사자인 경제계·노동계와 여·야 정치권이 첨예한 입장차를 드러내며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이 개정안은 일명 ‘노란봉투법’이라고도 불린다. 그 까닭은 지난 2014년 쌍용자동차 파업 노동자가 47억원의 손해배상 판결을 받고 시민들이 4만7000원씩 노란봉투에 성금을 모았던 캠페인에서 유래됐다. 이후 파업 노동자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묻지 않는 법을 ‘노란봉투법’으로 부르게 됐다.

지난달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전체회의를 열고 야당 주도로 이 개정안을 의결했다.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근로계약 체결의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노동자의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도 그 범위에 있어서는 사용자로 볼 수 있도록 했다. 현행 사용자의 범위를 확대한 것으로 택배기가 등 하청·간접고용 근로자도 원청 사용자(사업주)와 단체교섭 등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또한 ‘노동쟁의’의 대상 범위를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사항에서 ‘근로조건’에 관한 사항으로 넓혔고,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단체협약의 불이행 등과 같은 사항에 대해서도 쟁의행위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아울러 법원이 노조 및 조합원의 쟁의행위 등으로 인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경우 그 손해에 대해 각 배상의무자별로 각각의 귀책 사유와 기여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책임 범위를 정하도록 해 모든 행위자 각각에 대해 과다한 배상책임이 부과되는 것을 막았다.

즉, 근로·노동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보장을 강화한 것으로 그동안 노동계의 숙원이었다.

반면, 경제계는 손사래를 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한국경영자총협회·전국경제인연합회·한국무역협회·한국중견기업연합회·중소기업중앙회 등 경제 6단체는 노란봉투법으로 인해 노사간 대립과 갈등은 심화되고 파업이 만연할 것이며 폐기를 부르짖고 있다.

정부·여당에서도 쌍심지를 켜며 절대 반대를 외치고 있다. 소모적인 갈등으로 인해 산업현장에 막심한 혼란을 일으켜 국가 경제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치고, 한마디로 대한민국이 ‘파업 공화국’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따라서 노란봉투법의 최종 입법 과정은 녹록지 않아 보인다. 환노위를 통과했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본회의,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

야당으로서는 법사위를 건너뛰고 본회의 의결을 숫자의 힘으로 강행할 수도 있다. 국회법상 법사위가 특정 법안심사를 60일 안에 마치지 않으면 소관 상임위 표결(재적 위원 5분의 3 이상 찬성)로 본회의에 직회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통령 거부권 행사 카드가 공공연하게 야기되는 상황으로 ‘노란봉투법’이 빛을 보기에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윤석열 정부 120대 국정과제 속 노동정책에는 ▲공정한 노사관계 구축 및 양성평등 일자리 구현 ▲노사 협력을 통한 상생의 노동시장 구축 ▲일자리 사업의 효과성 제고 및 고용서비스 고도화 ▲고용안전망 강화 및 지속가능성 제고 ▲전 국민 생애단계별 직업능력개발과 일터학습 지원▲중소기업‧자영업자 맞춤형 직업훈련 지원 강화 등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노동자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노동기본권(노동3권) 신장 관련 부문은 없다.

이처럼 찬·반이 팽팽하게 맞서 ‘노란봉투법’의 향배가 불투명한 가운데, 무엇보다 ‘근로3권’은 보장돼야 한다는 것에 방점이 찍혀야 할 것이다. 헌법에서 보장한 기본법으로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해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적시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2021년 4월 20일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제87호(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협약)·제98호(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원칙의 적용에 관한 협약)·제29호(강제 또는 의무노동에 관한 협약)를 비준했고, 지난해 4월 20일부터 헌법에 의해 국내법과 같은 효력이 발생했다.

특히, 제98호 4조에는 “단체협약으로 고용조건을 규제하기 위해 사용자 또는 사용자 단체와 근로자단체 사이에 자발적 교섭을 위한 메커니즘을 충분히 발전시키고 이용하도록 장려·촉진하기 위해 국내 사정에 적합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현재 원청 사용자가 하청 노동자의 노무를 자신의 지배 또는 영향 아래에서 이용하는 간접고용 등 복합적 노무관계가 확산되고 있지만, 원청을 상대로 헌법이 보장한 ‘노동3권’은 발휘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어도 원청업체는 노조법상 사용자가 아니라며 단체교섭을 거부하고 있으며, 불법파업으로 낙인이 새겨진다. 법의 사각지대 속에서 열악한 근로조건 및 환경으로 생명과 안전을 위협받고 있는 노동자들의 호소는 끊임없이 되풀이된다.

이에 ILO 협약을 비준한 만큼, 노동조건의 결정·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를 사용자로 인정하는 것이 ‘노란봉투법’의 주요 핵심이라 할 수 있겠다. ‘노란봉투법’이 부작용이 많다며 무조건 걷어차 버릴 게 아니라 중지를 모아 근로3권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는 이러한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대안을 내놔야 함이 타당하다.

기업 경영상 효율에 앞서 노동자가 곧 국민이라는 인식이 앞서야 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준 우리나라 임금근로자는 총 2172만4000명이며 이 중 정규직이 1356만8000명, 비정규직이 815만6000명이다. 국민이 노동자이다. 

최근 법원에서도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하는 판례도 나오고 있어 사용자 개념을 분명히 정립해야 할 것이다. 아니면 노사관계에서 각 사안별로 소송전만 난무하게 된다.

한편, 현 정부는 3대 개혁 중 ‘노동개혁’을 1순위로 보고 있다. 불법파업을 용납지 않으며 회계장부도 들여다보겠다는 엄중한 자세다. 물론 노조에 대해 무조건적인 따스한 시선을 요구할 순 없다. 잘못된 관행과 법에 위배되는 행위가 있다면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악’으로 규정해 색안경을 끼고 이래저래 휘둘러서 길들이겠다는 방식은 위험하다. 노조는 말 그대로 노동자로 이뤄진 조합이다. 노조 구성원은 별나라 사람들이 아닌 우리 국민이다. 국민이 노동자다. 적대적 개념이 아니라 국민으로 바라보며 공명정대하게 잘잘못을 따져야 하고, 오히려 탄압을 받고 있다면 이를 보호해주는 것이야 말로 국가의 역할이다.

덧붙여 최근 정부에서는 국정과제의 일환으로 노사의 자율적인 근로시간 선택권 확대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현행 주 52시간제에서 노사가 원하면 월, 분기, 반기, 연 단위로 연장근로를 운영할 수 있도록 선택지를 부여한다는 것으로, 주당 최대 근로시간을 ‘주 69시간’과 ‘주 64시간’ 중에서 고를 수 있도록 하는 방안 등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 그러나 근로시간의 유연한 활용을 가장해 쉬지 말고 일하라는 것이 아닌지 놀랍기는 하다. 공정과 상식은 노동자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어째 역행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일과 삶의 균형을 잡아줘야 한다. 돈 버는 게 힘든데 삶이 여유로워질 수 없다. 일 만하다 죽을 순 없을 것이다. 유연하게 일을 더 할 수 있다며 획책하는게 정부가 할 일은 아닐 것이다. 노동자 즉 국민의 삶을 풍족하게 만드는 시스템을 구현해 주는 게 정치다.

표적을 잘못 세우고 있지는 않은가. 노동자는 적이 아니다. 국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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