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사가 택배기사의 사용자인가’ 놓고 논란
사측 “직접고용 아니라 교섭의무 없다” 주장
택배노조는 “교섭거부는 부당노동행위” 반발
“진짜 사장 누구인가” 놓고 법정공방 이어져
여·야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대장동 비리 의혹, 김건희 여사의 주가조작 연루 의혹 등으로 정쟁에 휩싸이면서 ‘정책·입법 국회’는 실종된 상태다. 1년 넘게 지루한 여야 대치가 이어져 오면서 각종 경제정책 법안들이 국회에서 긴 잠을 자고 있다. 이에 CNB뉴스는 주요 기업정책을 분야별, 이슈별로 짚어보면서 국회의 제기능 회복을 촉구하고자 한다. 이번 주제는 원청에게 특수고용직인 ‘택배기사’ 등에 대한 단체교섭권 의무를 지울 것인가에 대한 논란이다. <편집자주>
최근 서울행정법원은 CJ대한통운이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부당노동행위구제 재심 판정에 대한 취소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간접고용 관계인 택배기사에 대해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하는 노동조합법상 ‘사용자’라고 판단한 것이다.
또한, 국회에서는 야당을 중심으로 하청 노동자에 대해 ‘진짜 사장’의 교섭 의무를 부여하는 관련 개정안 입법 논의가 활발하다. 하지만 정부·여당은 손사래를 치고 있는 상황으로, 향후 추이에 노동·경제계의 촉각이 곤두서고 있다.
전국택배노동조합은 지난 2020년 CJ대한통운에게 ▲서브터미널에서 배송상품 인수시간 단축 ▲서브터미널에서 집화상품 인도시간 단축 ▲서브터미널 작업환경 개선(택배기사 1인당 1주차장 보장, 우천시 상품 보호 시설 설치) ▲주5일제 실시 ▲급지수수료 인상·개선 ▲사고부책 개선’의 6가지 의제에 대한 단체교섭을 요구했다.
택배노조는 전국의 택배와 관련된 모든 노동자를 대상으로 조직된 전국단위 산업별 노동조합으로, 조합원 수는 약 5500명이다. 이중 CJ대한통운에는 167개 집배점(위탁 대리점) 소속 택배기사를 포함한 1200여명이 조합원으로 가입돼 있다.
그러나 대리점 소속의 택배기사 노조(하청 노조)에 대해 CJ대한통운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상(이하 노동조합법, 노조법) ‘사용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노조 측의 단체교섭 요구를 거부했다.
여기서 ‘사용자’란 근로자와의 사이에 그를 지휘·감독하면서 그로부터 근로를 제공받고, 그 대가로서 임금을 지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명시적이거나 묵시적인 근로계약관계를 맺고 있는 자를 말한다.
CJ대한통운의 택배기사는 약 1만8000명인데 이 중 1000여명만이 직계약·직영 근로자이고, 1만7000명은 하청 근로자다.
회사는 각 집배점과의 사이에 책임배송지역을 정해 택배화물운송에 관한 위수탁계약을 맺고, 집배점주는 택배사로부터 수탁한 책임배송지역을 세분화해 ‘집배점 택배기사’와 위수탁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즉, 직접(근로)계약관계가 없는 집배점 택배기사(하청)로 구성된 노조에 대해 회사는 ‘사용자’가 될 수 없다는 것. 따라서 노조의 단체교섭 요구를 거부하는게 부당노동행위에 해당치 않는다는 것이 CJ대한통운 측의 입장이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도 CJ대한통운이 ‘사용자’가 아니라고 손을 들어주며, 노조가 단체교섭 거부의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며 제기한 구제신청을 각하했다.
이에 택배노조는 불복했다. 중앙노동위원회(이하 중노위)에 재심을 신청했고, 결과는 뒤집혔다. 중노위는 2021년 ‘서브터미널에서 배송상품 인수시간 단축’ 등 6가지 의제에 대해 CJ대한통운이 실질적·구체적인 지배·결정권을 가지고 있어 노조법상 ‘사용자’가 맞고, 단체교섭 요구에 응할 의무가 있기에 교섭 거부는 부당노동행위라며 초심판정을 취소하고, 노조 측의 구제신청을 인용했다.
다만, 중노위 판정은 하청 노동자의 근로조건에 영향력을 미치는 개별 사안에 대해 원청 사용자에게 단체교섭 의무를 인정한 것이지, 원청의 하청 노조에 대한 단체교섭 의무 등의 사용자성을 일반적으로 인정하는 취지는 아니다.
이번에는 CJ대한통운이 받아들이지 못하고 중노위의 재심판정 취소를 구하는 소를 제기했지만 고배를 마셨다. 올해 1월 서울행정법원은 중노위의 재심판정과 동일하게 CJ대한통운이 집배점 택배기사와의 단체교섭을 거부한 것은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1심 판결문에서는 원청 사용자가 하청 근로자의 노무를 자신의 지배 또는 영향 하에서 이용하는 복합적 노무관계가 확산됨에 따라, 지배력이나 결정권을 갖지 못하는 근로조건에 대해 하청 사용자에게만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시킬 경우 근로자의 근로3권은 온전히 보호를 받지 못한다고 적시했다.
이러한 까닭에 노조법상의 ‘사용자’ 개념의 해석 문제는 단결권과 관련한 지배·개입 행위에 한정되는 문제가 아니라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 등 전반적인 근로3권의 보장과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고 봤다.
이를 통해 근로조건의 유지·개선과 근로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도모하고, 노동관계를 공정하게 조정해 노동쟁의를 예방·해결함으로써 산업평화의 유지와 국민경제의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는 노조법의 입법 목적의 실현과도 직접적으로 관련돼 있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1심 판결에 CJ대한통운은 “당사와 계약관계가 없다”는 기존 태도를 고수하며, 곧바로 항소한 상태다.
이처럼 노조 측에서는 원청 사업주인 CJ대한통운이 ‘진짜 사장’이라며 단체교섭을 요구하고 있고, 반대로 회사 측은 그러한 위치에 있지 않다며 팽팽하게 맞선 대치 국면으로 법리 공방은 한층 가열될 전망이다.
반대의 목소리 격렬…최종 입법 ‘난항’
한편, 이와는 별개로 국회에서는 ‘노란봉투법’인 노조법 개정안이 상임위인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야당이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노란봉투법’에는 근로계약 체결의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는 그 범위에 있어서는 ‘사용자’로 볼 수 있도록 현행 사용자의 범위를 확대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하청 등 간접고용 근로자도 원청 사용자와 단체교섭 등을 할 수 있도록 도장을 찍은 것이다. 하지만 최종 입법으로의 과정은 순탄치 않아 보인다.
일단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노조법 개정안은 헌법·민법과의 충돌 문제, 노사관계 및 법·제도 전반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 등을 고려하지 못한 입법으로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들고, 노사갈등 비용 증가로 국가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쳐 미래세대의 일자리에 충격을 줄 수 있는 만큼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견해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브리핑을 통해 “사용자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구체화되지 않아 원청은 자신이 하청 노조의 단체교섭 상대방인지, 단체교섭의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등을 예측할 수 없어 법적 안정성이 저해될 수밖에 없다”고 바라봤다.
이는 개정안이 ‘실질적·구체적 지배·결정’이라는 추상적 표현으로 근로계약 관계가 없는 원청 사업주에게 노조법상 사용자로서 모든 의무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
이 장관은 “이러한 상황에서 사용자가 단체교섭에 응하지 않았을 경우 형사처벌을 받게 돼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도 위반된다”며 “노조법이 개정된다면 단체교섭의 장기화, 교섭체계의 대혼란, 사법 분쟁 증가 등 노사관계의 불안정 및 현장의 혼란만 초래될 것”이라고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여당인 국민의힘에서는 ‘노란봉투법’이 사용자 개념의 과도한 확대로 크고 작은 노사분쟁을 폭증케 하고, 지금도 만연한 노조의 불법 파업에 면죄부를 줌으로써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파업 공화국’이 될 것이라며 절대 불가하다며 방어벽을 치고 있다.
강성 노조의 불법을 합법화해 부추기고 장려하겠다는 심산이라며,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을 강하게 비난하고 있다.
따라서 남은 입법절차인 법제사법위원회에서의 진통은 확실시 되며, 본회의에서 야당 주도 숫자의 힘으로 통과하더라도 대통령실은 ‘거부권’ 행사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계도 고개를 가로젓고 있다. 앞서 한국경영자총협회·대한상공회의소·전국경제인연합회·한국무역협회·한국중견기업연합회·중소기업중앙회 등 경제 6단체는 ‘노조법 개정 반대 공동성명’을 발표하며 한목소리로 노사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파탄에 이를 것이라며 법안 폐기를 요청한 바 있다.
사용자 개념을 확대해 하청 노조의 원청 사업자에 대한 쟁의행위를 허용하고, 노동쟁의의 대상을 넓히면, 노사간 대립과 갈등은 심화되고 파업이 만연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특히, 실제 산업현장에는 사업의 분화·전문화에 따른 도급 형태의 계약이 많은데 개정안은 원청 사업주에게 하청 근로자에 대한 사용자 지위를 강제하고 있어, 이는 도급이라는 민법상 계약의 실체를 부정하고 결국 대기업 중심의 노동시장으로 수렴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대기업 한 관계자는 CNB뉴스에 “원청 사용자성을 인정하면 하도급 구조에 있는 모든 사업장에서 큰 혼란과 문제가 발생될 소지가 있다”며 “하청 노조에서 그들이 소속된 하도급 업체를 건너뛰고 원청과 바로 교섭을 하게 된다면 이는 현행법을 위반해 경영권을 건드리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교섭이라는 것이 복지나 대가 등 근로조건을 협의해 결정하자는 것인데, 원칙적으로 도급 사업주는 수급 사업주의 근로자에게 업무상의 지휘・명령권을 행사할 수 없고, 이를 위반할 경우에는 위장도급 또는 불법파견에 해당한다는 얘기다.
노란봉투법을 둘러싸고 노동계는 쌍수를 들고 환영하고 있는 반면, 정부·여당·경제계는 법체계상 모순적인 측면과 불안정 등을 이유로 극렬히 반대하고 있어 향후 매듭이 어떻게 지어질지 예의주시되고 있다.
(CNB뉴스=이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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