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부기자 | 2023.02.23 09:30:51
40년간 세계적으로 주목받아 온 작가, 곽훈은 1941년 생으로 현재 82세다. 하지만 마치 청년처럼 지금도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아직 밝히긴 어렵지만 조만간 새로운 '퍼포먼스'도 기획하고 있다. 오래전 대구에서 곽훈 작가는 세계 최초로 포크레인에 큰 붓을 메달아 거대한 일명 '신(新) 산수화'를 그리는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다.
그래서 기자는 곽훈 작가에게 "평생 작품을 해오셨는데, 선생님께 작업은 무엇입니까?"라고 질문했다. 그러자 "그림은 나, 작업은 팔자지"라는 답이 바로 돌아왔다.
오는 3월 2일부터 31일까지 예화랑에서 열리는 '곽훈 개인전-Homage to Homo sapiens'에는 "고래"를 그린 'Halaayt(할라잇)' 신작 50여 점과 1층에 6미터 대규모로 설치된 회화 'Homage to Homo sapiens'를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지난 40여 년간 그려 온 "Tea Bowl(찻 사발)" 시리즈를 연상시키는 작품이다.
"그림은 나"
이번 개인전 작품 "고래"와 "찻 사발"은 어떻게 곽훈 작가 자신 즉 아이덴티티(identity)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할라잇 시리즈 신작을 자세히 보면, 작은 배를 타고 거대한 고래를 잡는 드라마틱한 장면이 마치 순간 포착한 하일라이트 영상처럼 벅차다. 일반적인 고래 수렵 장면일까?
곽훈 작가는 "나는 헌팅은 관심 밖이다. 나는 고래를 본 적도 없고 고래잡이 배를 타본 일도 없다. 이것은 헌팅의 고래가 아니고 생존을 위한 '삶의 투쟁' 대상이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선사시대 우리 조상들의 그림처럼 말이다. 아마도 그들은 민속신앙처럼 조상들이 고래가 된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할라잇(Halaayt)이라고 했다."라고 말한다.
할라잇이라는 개념, 즉 원시 이누이트인들의 말로 '신의 강령'이라는 뜻인 이 개념은 신이 주는 '축복'이고 후손이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해 주는 '선물'일 수 있다. 곽훈 작가는 그렇게 삶을 바라보는 숭고한 철학을 그림에 담았다.
곽훈 작가는 여기에서 조금 더 깊이 들어가 이렇게 말했다. "선험적인 것이 더 많은 일을 한다고 생각한다. 수천년 전 선사시대 우리 조상들이 하는 일처럼, 그 DNA가 축적된, 다시말해 내 의식이 들어가지 않은 '선험적인 것'이 더 중요하다. 무의식적으로 손이 그림을 그리듯이"라고.
Tea Bowl(찻 사발)도 마찬가지다. 할라잇처럼 이도다완을 만든 우리 조상의 DNA가 곽훈 작가에게 '선험적인 것'이 되어 마치 손이 그림을 그리듯, 작가의 생각과 감정을 앞서는 작품이 찻 사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래와 찻 사발은 곽훈 자신이다.
"작업은 팔자"
1975년 미국으로 건너가 디자인 회사를 다니다가 1980년 켈리포니아에서 작품 전시를 시작한 곽훈 작가는 지금까지 43년째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매년 많게는 7번 전시를 하는 등 쉬지 않고 부지런히 작업했다. 그렇게 작품 활동이 좋았다.
그러나 "예술가는 막장에 갇혀 있는 느낌이다. 이 벽을 헐면 물이 쏟아질지 바람이 불지 알 수 없지만, 거기에 탐험의 기대감도 있고 절망도 있다. 나도 내년에 무엇을 그릴 지 알 수 없다."라고 곽훈 작가는 말한다.
"기자도 내일 기사 타이틀이 무엇이 될 지 모르잖나. 몰라야 기자지, 알면 소설가 아니겠나. 내 마음대로 됐으면 좋겠지만, 나도 내일 무얼 그릴 지 알 수 없다."라고 곽훈 작가는 내게 말했다. 가슴에 깊이 박히는 말이다.
"선생님을 세간에서는 대가라고 부르는데"라고 조심스럽게 운을 떼자, 곽훈 작가는 "대가가 아니고 청년작가"라고 응수했다. 늘 새로운 기대감에 흥분하기도 하고 막장에 갇혀 절망하기도 하지만 4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일 내가 뭘 그릴 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곽훈 작가는 가장 나이 많은 청년작가임에 틀림 없다. 작업은 그의 팔자다.
(CNB뉴스= 김진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