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제도는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보장하는 무엇보다 중요한 사회안전망이다. 그러나 건강보험 보장성은 후퇴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건강보험 지속가능성 제고 및 필수의료 지원 대책’에 따르면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재정 효율화를 추진해 ▲자기공명영상(MRI)‧초음파 검사 등 급여 항목과 기준에 대한 재점검 ▲공정한 건강보험 자격관리 ▲합리적 의료이용 유도 ▲재정누수 점검과 비급여 관리 등을 꾀한다는 것.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애초 급여화 예정이던 근골격계 초음파·자기공명영상(MRI)은 의료적 필요도와 이용량 등을 분석해 필수 항목을 중심으로 제한적 급여화를, 암 등 중증·희귀질환 진료시 낮은(5~10%, 결핵은 면제) 건보 본인부담률을 적용하는 제도인 산정특례도 손보기로 했다.
현행 산정특례 적용범위가 해당 중증질환 및 합병증으로 규정돼 있으나, 실제로는 결막염 등 이와 관련 없는 경증질환에도 특례가 적용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며, 앞으로는 산정특례 대상 질환과 관련성이 낮은 경증질환 등은 특례가 적용되는 합병증 범주에서 제외한다는 방침이다.
연간 건강보험 본인부담금이 개인별 상한액(소득별 차등)을 초과할 시, 그 초과금액을 환급하는 본인부담상한제도의 경우, 이제부터는 소득상위 30%에 해당하는 5~7구간의 상한액을 상향 조정하며 상급종합병원에서 외래로 진료받는 경증질환(105개)은 본인부담상한제 적용 질환에서 제외키로 한다는 안이다.
이 같은 지출개혁으로 절감된 재원은 필수의료 등과 같이 꼭 필요한 곳에 제대로 투자한다는 설명이다.
필수의료 지원은 공공정책수가 도입을 통해 필수의료에 대한 적정 보상을 지급한다는 것으로 예를 들어 야간·휴일 당직, 장시간 대기 등 의료인력의 업무부담이 큰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적정 보상이 이뤄질 수 있도록 가산을 확대키로 했다. 민간의료기관에 수가 인상으로 보상을 높이겠다는 얘기다.
각설하고, 총체적으로 건강보험 보장성에 메스를 가한다는 것으로 우려가 크다. 그렇다면 이 같은 방향을 설정한 까닭은 뭘까. 과잉진료로 인한 재정 누수에 방점을 찍고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 건강을 지키는 최후 보루인 건강보험에 대한 정상화가 시급하다고 보고 있다. 지난 5년간 보장성 강화에 20조원을 넘게 쏟아부었지만, 정부가 의료 남용과 건강보험 무임승차를 방치하면서 대다수 국민에게 그 부담이 전가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윤 대통령은 “국민 혈세를 낭비하는 인기영합적 포퓰리즘 정책은 재정을 파탄시켜, 건강보험제도의 근간을 해치고 결국 국민에게 커다란 희생을 강요하게 돼 있다”며 “건강보험 개혁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강조했다.
대통령실은 ‘문재인 케어’가 시행된 지난 5년간 건강보험 재정은 위기를 맞았다고 진단했다. 2040년 누적적자가 678조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박근혜 정부 당시 0.99%에 불과했던 연평균 ‘보험료율 인상률’은 문재인 정부 동안 2.7%를 넘어섰다는 것이다.
초음파와 MRI는 문재인 케어 적용 첫해인 2018년 1800억원에서 2021년 1조8000억원으로 3년 새 10배나 급증했다며, 문재인 케어가 대다수 국민을 위해 보장성을 확대할 것이라던 약속과 달리, 실제로는 외래진료 이용 횟수 상위 10명이 1년간 각 1200~2000회의 외래 진료를 받았고 외국인 무임승차나 자격도용도 실효성 있게 막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한번 따져볼 일이다. 일단 감사원에 따르면 문 케어로 남용이 의심되는 진료비는 약 2000억원으로 추정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건강보험 전체 진료비(약 100조원)의 0.2%라는 점에서, ‘과잉진료’를 건강보험 파탄의 주범으로 몰아가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사실상 건보재정 누수의 주범은 병상 공급 과잉, 만성질환 관리, 실손보험 등에 있다는 것.
아울러 건강보험 재정도 사실과 다르게 탄탄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김윤 서울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는 “우리나라 건강보험 누적적립금은 20조2000억원(2021년 말 기준)으로 적정 수준”이라고 바라봤다. 정부 측의 누적적자 전망은 2026년 건강보험료 법적 상한선(8%)에 도달 후 2040년까지 보험료를 인상하지 않고, 건강보험 수가 인상률과 진료비 증가율을 그대로 유지했을 때의 수치로 비현실적이라고 꼬집고 있다.
어째 손가락질을 잘못해 건강보험 개혁이 아니라 국민의료 혜택만 줄어들어 역행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보장성 강화책이 과잉진료를 낳고 있는 게 아니라 치료·검사 등 각각의 의료행위에 대해 보상하는 현행 요양급여 지불제도인 행위별수가제(fee-for-service)에 문제의 원인을 두고 초점을 맞춰야 한다.
감사원의 ‘건강보험 재정관리 실태’ 감사결과에 따르면 요양기관은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의료서비스를 효율적으로 제공하기보다는 많이 하게 됨으로써 과잉진료가 발생하고 있는 실정이다.
즉, 환자에게 많은 진료를 제공하면 할수록 의료기관의 수입이 늘어나게 되는 구조다. 이러다 보니 불필요한 의료서비스가 과다 제공될 가능성이 있고 이로 인해 국민 전체 의료비가 증가하며, 수가 구조가 복잡해 청구오류, 허위·부당청구 등이 나타나고 있는 상태다.
따라서 피보험자들의 적정한 의료이용을 유도하기 위한 실효성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과잉진료가 건강보험 재정의 악이라고 규정하려면 이러한 구조부터 합리적으로 개선해야지 호통을 치며 혜택을 줄이겠다고 하는 것은 본말을 전도한 것이다.
건강보험 보장성은 절대 후퇴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는 최종 가계 소비 중 의료비 본인 부담 지출 비율이 5.3%로 OECD 평균 3.1%보다 높다. 국가가 지출하는 의료비의 GDP 대비 비율은 4.8%로 OECD 평균 6.6%에 크게 못 미치며, 건강보험 보장성은 OECD 평균이 74%나 우리나라는 61%에 그치고 있다.
과도한 의료비로 고통받는 서민들이다. 가족 구성원이 중병에 걸리면 가계는 휘청거리며 빈곤은 이어진다. 돈이 없어서 병원을 가지 못한다는 것만큼 가슴이 찢어지고 막막한 일도 없다.
국민 건강권은 1순위로 존중받아야 하며, 정치적 이념과 이해득실 및 여·야가 따로 없다. 건강보험은 전 국민의 의료보장이다. 손대려거든 의료공공성을 살리고 제대로 국민 복지가 확대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