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는 우리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아픔과 슬픔을 남겼다. 왜 이 땅의 무고한 젊은이들이 그렇게 허무하게 생을 마감했는지 가슴이 찢어진다.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참변에 유가족들의 심경은 이루 말할 수 없고, 국민들은 넋을 잃었다. 그 어떠한 것으로도 희생자 가족들에게는 위로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애도하고 추모하며 남은 자들의 삶을 위해 기도할 뿐이다.
슬픔은 뼛속까지 체화되고 반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치밀어 올라오는 분노는 머리끝까지 팽창된다.
그 자리에 있었으되 참사를 피한 사람들은 국가가 보호해준 것이 아니라 순전히 운에 맡겨졌다. 이 무슨 현실인가. 국가는, 시스템은, 안전은, 보호는 없었다. 그저 안타까운 죽음만 있었다.
서울 한복판 그 자리 있었을 뿐이다. 그들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 잘못이라면 이를 내버려 두고 지켜주지 못한 국가와 정부에게 오롯이 그 책임이 있다.
그렇게 앗아간 꽃다운 생명 앞에 부재한 국가 시스템과 의사결정 권한을 지닌 실권자들에게 분노가 치민다. 왜 ‘압사’라는 끔찍한 참사를 당해야만 했는가. 가만히 있으며 작동되지 않은 지휘체계에 국민들은 울분을 터트린다.
하지만 이른바 실권자들의 행태는 가관이다. 주최자를 운운하는가 하면 참사를 사고로, 희생자를 사고자라며 애써 고집했다. 뒤늦게 정신 차려보니 엄청난 후폭풍이 두려워 본연의 의무를 축소하고, 자리가 흔들릴지 염려하는 모습만 보인다면 과장일까.
이는 흔히 봐오던 일반 기업에서의 사고 수습 과정과 묘하게 매칭된다. 위기가 닥치는 경우 회사 측은 일단 부정하고 본다. 그러나 부정하지 못할 사실이 등장하면서 꼬이기 시작한다. 허둥지둥 최대한 범위를 좁힌 가운데 급히 말 바꾸기에 나서지만 비난 여론이 득세, 마지못해 늦은 반성 순으로 사태를 외려 악화시킨다.
기업들에게서 자주 볼 수 있는 행태다. 그러나 최종 법적인 부문에 있어서는 대형로펌으로 무장하기에 일반 소비자들은 감히 대적하기 쉽지 않다.
국가는 사익을 추구하며 이같이 최악의 대응을 하는 기업이 아니다. 감히 꼼수는 있을 수도 없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무한책임으로 보장해야 한다. 국가의 역할을 하지 못해 비극적 참사가 일어났다. 석고대죄해도 모자랄 판이지만 그런 것은 없다.
도저히 이해를 못 하겠지만 그들의 입장으로 보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질 수도 있겠다. “법적으로 내가 다칠 상황은 없나”, “그러기에 내 잘못이 아니다”, “아랫것들이 일을 못 한 것이다”. 그뿐이다. 이태원 압사 발생 이틀 뒤에 작성돼 관계기관에 배포된 것으로 알려진 여론동향 문건은 비통한 대참사 앞에 혹여 정권에 부정적 기류가 흐를 것을 우선순위에 두고 있는지 오해를 불러일으킬만 했다. 개탄스럽다.
국민의 생명과 안위를 지켜주지 못한다면 그것은 나라가 아니다. 대한민국 헌법에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34조 6항)’고 적시돼 있다.
또한,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재난안전법)’에서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재난이나 그 밖의 각종 사고로부터 국민의 생명·신체 및 재산을 보호할 책무를 지고, 재난이나 그 밖의 각종 사고를 예방하고 피해를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발생한 피해를 신속히 대응·복구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시행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의 재난 컨트롤타워는 어디에 있는가. 그 누구도 나서지 않는다. 제3자 입장에서 꾸짖을 뿐이다. 국가에 대한 신뢰는 바닥에 떨어졌다.
이 정부는 대답하라. 다 살릴 수 있었다. 진심으로 국민을 위해 헌신하며 보살피는 리더들을 보고 싶다. 주어진 권한에는 책임이 뒤따른다. 국민을 두려워하며 그 직분에 맞는 권한과 책임을 철두철미하게 수행해야 할 것이다. 권력에만 눈이 멀어 맡은 책임을 회피하려는 자에게 요직은 가당치 않다.
발뺌하고 두리번거리며 대신 막아줄 일선 경찰 및 소방 등 내세울 사람을 찾지 말라. 시위소찬(尸位素餐)이다. 높은 자리에 앉아 책임은 다하지 않고 녹만 먹고 있다. 응당 책임은 물을 사람이 물어야 한다. 이를 회피하는 자 마땅히 끌어내려야 한다.
이태원 참사 그 후속처리에 국민들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지켜보고 있다. 어영부영 꼬리 자르기, 희생양이 될 원흉 찾기로 유야무야 제 몸, 제 식구 챙기기에만 혈안이 돼 있다면 응분의 국민적 철퇴가 가해질 것이다.
국정조사가 됐든 특검이 됐든 흑묘인지 백묘인지 가리지 말고 성역없는 철저한 진상조사와 규명 그리고 관련 책임자들을 일벌백계해야 한다. 더불어 너무나 당연하게도 재발 방지를 위한 국가의 지휘소를 제대로 갖춰야 한다.
국민들이 충분히 납득할 만한 진정성과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그렇게나 부르짖던 공정과 상식이 허공에서 맴돌게 될지 제대로 실현될지 국민은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