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뉴스=도기천 편집국장)
언제는 위기가 아니었냐마는 지금 위기는 과거와 결이 다른 것 같다. 경제와 정치, 양쪽 모두에서 빨간불이 켜졌다는 점에서 그렇다. 과거 외환위기, 금융위기 때는 여야가 함께 돌파구를 찾는 시늉이라도 했지만 지금은 ‘정치’가 보이지 않는다. 우선 현 상황을 보자.
쓰나미 왔지만… 대책이 없다
경제 분야에서는 고금리·고환율·고물가 이른바 ‘3고(高)’ 현상이 한국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전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은 소비를 둔화시키고 기준금리 인상 압력을 키우고 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0%대였던 기준금리는 현재 2.5%까지 올랐다. 연말이면 최소 3%가 예상된다.
미국이 사상초유의 빅스텝·자이언스스텝을 단행하고 있어 내년에도 금리상승 흐름이 이어질 전망이다. 금리가 올라가면 기업이든 개인이든 돈 빌리기 어렵기 때문에 투자와 소비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한국경제의 한축인 무역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달러화 강세(원화 약세),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수입 가격 상승으로 무역수지 적자 폭이 커지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7월 기준 수입 물가지수는 원화 기준으로 1년 전보다 27.9% 상승했다. 반면 같은 기간 수출은 한자릿수 증가하는데 그쳤다.
이에 따라 부동산, 주식, 코인 등 자산시장이 가파른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한때 3000을 넘나들던 코스피지수는 2000선이 무너질라 걱정하는 처지다. 하늘 높은 줄 몰랐던 부동산 시장도 거품붕괴 초입에 들어갔다. 물가상승과 대출이자상승 이중고에 직면한 서민들은 지갑을 닫고 있다.
일부 학자들은 인플레를 넘어 이미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상승) 초기단계에 진입했다고 본다. 혹독한 겨울이 오고 있다.
이 판국에 ‘집 나간 정치’
상황이 이런데도 정치는 실종됐다. 한국경제호가 침몰하고 있지만 선장은 사태파악을 전혀 못하고 있고, 항해사와 조타수는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다.
정치사에 유례없는 여권 내홍이 얘기다. 지난 대선 때부터 노골적으로 권력암투를 벌이더니 급기야 대통령이 ‘윤핵관’을 시켜 젊은 당대표를 쳐내고 비상대책위를 만들었다. 이에 그 당대표는 법원에 비대위의 위법성을 호소했고 법원은 “비상상황이 아니다”며 사실상 비대위 해체를 주문했다. 그러자 그 비대위는 당헌을 고쳐 인위적으로 비상상황을 만들어 다시 비대위 부활 수순을 밟고 있다. 비상상황은 예기치 않게 발생하는 것인데 ‘인위적 비상상황’이라니 말 자체가 모순이다. 젊은 당대표는 전국을 돌며 ‘헌법 유린’이라 외치고 있다.
이 사태의 원인제공자인 대통령은 딴세상에 사는 분 같다. “당내 일에 대통령실이 관여하는건 부적절하다”며 모르쇠 내지 유체이탈 화법을 구사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전(前) 정권 파헤치는 데는 당정(黨政)이 한마음으로 정말 열심이다.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탈북 어민 북송, 탈원전 평가조작 의혹, 산업부 블랙리스트 등 문재인 정부와 관련된 여러 사안들을 샅샅이 뒤지고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 등 야권 주요인사들에 대한 수사·조사도 줄줄이 예고돼 있다.
한마디로 대통령은 과거에 연연하고, 집권당은 자중지란으로 갈피를 못잡고 있다.
상황이 이쯤되니 ‘무정부 상태’라는 말이 나온다. 정부의 역할에 의문을 갖는 국민들이 늘고 있다.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30% 안팎에 머물고 있다.
정부·여당이 지금 주력할 일은 과거 사건들을 들춰내고, 전임정부가 펼친 주요정책들을 뒤집고, 당권투쟁을 벌이는 게 아니다.
물가를 잡고 환율을 방어하고 치솟는 금리 앞에 속수무책인 서민을 보호할 특단의 대책을 내놓아도 모자랄 판이다. 당장 무엇이 크게 바뀌지는 않겠지만, 서민들이 이 팍팍한 현실 속에서 한가위 보름달을 보며 작은 희망이라도 품게 해달라. 그게 정부의 존재목적 아닌가.
“뭣이 중헌디? 이재명 잡기 전에 물가부터 잡아라!”
(CNB뉴스=도기천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