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 베테랑의 도전…“떠났던 고객, 다시 불러오겠다”
역성장 끊는 원년 선포…과감한 매각·투자 동시 진행
유통공룡 홈플러스에게 지금 필요한 단어는 ‘선택과 집중’이다. 비대면 소비 확산으로 유통시장 주도권이 이커머스(온라인 쇼핑)로 넘어가고 있는 가운데, 오프라인 유통대기업들은 돌파구를 찾기 위해 분투(奮鬪)하고 있다. 이에 홈플러스의 ‘구원투수’로 불리는 이제훈 대표는 경영혁신에 속도를 내고 있다. 체험형 쇼핑을 확대하고 틈새시장을 넓히는한편 홈플러스만의 독특한 저가정책을 강화해 소비자 공략에 나서고 있다. 점포 매각을 통한 자산유동화 작업도 공격적으로 추진 중이다. (CNB뉴스=도기천 기자)
“취임식이 연기 됐다구요?”
이제훈 대표는 등장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그는 지난해 5월 돌연 취임식을 하루 미루고 홈플러스 스페셜 서울 1호점인 ‘목동점’을 깜짝 방문했다. 그곳에서 직원들과 격없이 대화를 나누고 점포 구석구석을 살폈다. 최고경영자(CEO)가 취임식도 하기 전에 현장을 먼저 찾은 사례는 업계에서 처음이다.
이 대표는 30여년간 유통·소비재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연세대 경영학과와 미국 와튼스쿨 경영학석사(MBA)를 졸업하고 ‘펩시’와 제약사 ‘쉐링 플라우’의 미국 본사에서 근무했다. 2000년부터 ‘피자헛 코리아’에서 CFO 겸 최고개발책임자(CDO), 최고운영책임자(COO)를 맡았으며, 편의점 체인인 ‘바이더웨이’와 ‘KFC코리아’의 CEO를 거쳐 작년 초까지 화장품 브랜드 AHC로 유명한 카버코리아 대표를 역임했다. 리테일, 유통, 소비재 부문의 CEO 경력만 17년째다.
홈플러스는 국내 대형마트 2위 업체지만 비대면 소비 추세가 확산하면서 최근 몇 년간 고전하고 있다. 2016년 영업이익 3090억원으로 정점을 찍은 뒤 이후 계속 감소 흐름이다.
이런 시기에 유통 분야 베테랑인 이 대표가 사령탑으로 등장했다는 점에서, 그는 처음부터 ‘구원투수’로 불렸다.
이 대표는 구원투수답게 역전의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을 받는다. 올해 초 전직원에게 유튜브로 생중계된 ‘2022년 경영전략 보고’에서 이 대표는 “반드시 역성장의 고리를 끊는 원년이 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매장 변신 본격화…대규모 투자로 ‘승부수’
그의 약속은 조금씩 현실이 되고 있다. 홈플러스는 오프라인 매장을 리뉴얼하고 온라인 배송을 강화해 다시 상승 궤도에 들어섰다. 특히 사회적 거리두기 종료와 리오프닝이 본격화된 지난 3월 이후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그가 꺼내든 카드는 ‘선택과 집중’이다. 오프라인 수요가 높은 식품 비율을 늘리고 비식품 비율을 줄인 ‘홈플러스 메가푸드마켓’으로 일부 점포를 리뉴얼했다. 매장 입구에 고객이 원하는 취향대로 골라 즐길 수 있는 델리 코너 ‘푸드 투 고(Food to go)’를 설치하고, 상온부터 냉장, 냉동 등 모든 간편식을 만나볼 수 있는 ‘다이닝 스트리트(Dining street)’와 수·축산 즉석 손질 서비스 ‘메이드 투 오더(Made to order)’를 도입했다.
그 결과 MZ세대(1980년대~2000년대초 출생자) 고객이 크게 늘어 매출이 껑충 뛰었다. 홈플러스 측에 따르면 리뉴얼 점포들은 이전에 비해 평균 10% 이상의 매출신장을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홈플러스는 연말까지 총 17개 점포를 리뉴얼할 계획이다.
온라인 부문도 상당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배송 차량을 대폭 늘리고 전문 피커들을 고용하는 등 물류 인프라를 강화하고 있으며, 먹거리·생필품 등 고객 수요가 높은 상품군을 1년 내내 합리적 가격으로 선보이는 ‘물가 안정 프로젝트’를 올해 초부터 시행하고 있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온라인 부문 매출이 전년 대비 20% 이상 늘고 있다.
홈플러스는 올해 말까지 2020년 대비 3배 이상의 비용을 투입해 매장과 상품, 온라인 인프라 구축, 조직 혁신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 대표는 최근 사내 회의에서 “올해 우리의 전략적 기조는 ‘고객수 회복을 통한 성장’”이라며 “기본으로 돌아가 우리의 모든 행동을 소비자의 눈으로 바라보고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투자가 필요한 곳에는 투자를 하고 경쟁력이 미흡한 부분에선 반드시 개선이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재무구조 개선하고 ESG경영 강화
이 대표는 홈플러스의 고질적 문제인 재무구조도 빠르게 개선하고 있다.
지난해 점포 매각으로 5353억원의 유동성을 확보한데 이어, 조만간 부산 해운대 점포 매각을 통해 4000억원대 자금을 추가로 확보할 계획이다.
홈플러스는 2020년부터 점포 매각을 통한 자산유동화 작업을 공격적으로 진행해왔다. 시화점과 울산점 및 구미점을 세일앤리스백(매각 후 재임차)로 바꿨고 안산점, 대전 둔산점, 대구점, 대전 탄방점, 부산 가야점, 동대전점 등을 매각했다. 2016년 142개였던 점포수는 현재 134개로 줄었다.
이 결과 홈플러스의 2021회계연도 말 기준 총 차입규모는 1조4349억원으로, 전년 대비 4444억원 줄었다. 해운대점 매각이 성공하면 차입금은 더 줄어들 전망이다.
이 대표는 ESG 분야에서도 두드러진 성과를 내고 있다. ESG는 환경(Environment)·사회(Social)·지배구조(Governance)의 머리글자를 딴 단어로, 기업활동에 친환경, 사회적 책임 경영, 지배구조 개선을 도입해 지속가능 경영을 하자는 글로벌 캠페인이다. 가치 경영을 통해 고객과 소통하고, 이렇게 맺어진 신뢰가 경쟁력의 원천이 된다는 점에서 ESG는 이제 글로벌 기업들의 핵심 성장 전략이 됐다.
이 대표는 취임 당시 △오프라인 경쟁력 재확보 △온라인사업 강화 △직원이 행복한 회사 만들기와 함께 ‘ESG(환경·사회·지배구조)경영 강화’를 4대 목표로 제시했다.
이에 따라 작년 8월 ‘홈플러스 ESG위원회’가 출범했고, 이 대표가 직접 위원장을 맡았다.
ESG위원회는 환경 부문 목표를 ‘건강한 지구를 만드는 폐기물 줄이기’로 정했다. 다양한 방식의 고객참여 캠페인을 통해 환경 인식을 개선하는 한편 플라스틱 폐기물 재활용과 장바구니 사용을 확대해 2025년까지 4만톤의 ‘플라스틱 줄이기’, 550톤의 ‘종이 줄이기’를 실천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또 모든 점포에 전기차 충전소 설치 등 친환경 에너지 인프라를 구축해 2025년까지 온실가스를 2016년 대비 15% 줄이겠다는 계획도 실천 중이다. 본사 임직원 1400여명에게 개인용 텀블러를 제공해 임직원들과 함께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는 ‘그린 캠페인’도 전개하고 있다.
실적과 가치경영…두 마리 토끼 잡기
매장 판매 제품에 있어서도 친환경 라인업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 7일부터 전국 모든 매장에서 판매하는 호주산 소고기 특수부위 6종을 국제삼림관리협의회(FSC) 인증을 받은 친환경 종이 포장재에 담아 판매하고 있다. 이를 통해 홈플러스는 연간 약 36만5000톤의 플라스틱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앞서 올해 초 설 명절때는 국내 최초로 MSC 인증을 받은 동원산업의 ‘ESG 참치세트’를 업계 단독으로 전국 모든 매장에 내놓기도 했다. MSC(Marine Stewardship Council: 해양관리협의회)는 지속가능수산물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글로벌 비영리기구다. 동원산업은 참치 조업에 대한 MSC 인증을 국내 최초로 획득했는데, 홈플러스가 동원과의 협업을 통해 ‘MSC 참치’를 선보인 것이다.
월드컵점, 합정점, 신도림점, 남현점 등 4개 매장에서 운영하고 있는 ‘제로마켓’도 주목된다. ‘제로마켓’은 리필 제품을 판매하는 자원 순환 거점이다. 이곳에서는 세제, 샴푸, 화장품 등 리필이 가능한 제품을 구매할 때 필요한 만큼만 무게를 재서 살 수 있다. 고객은 매장에 비치된 전용 용기 또는 개인이 가져온 다회용기에 제품을 담아 구매하면 된다.
홈플러스 측은 CNB뉴스에 “이제훈 대표가 리테일·소비재 분야에서 탁월한 경험과 전문성을 갖췄을 뿐 아니라 ESG경영에서도 큰 성과를 내고 있는 만큼, 홈플러스의 도약이 빨라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최근 경영전략 기조를 설명하는 자리에서 “고객이 홈플러스를 경험하는 모든 접점에서 긍정적인 평가가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해, 그동안 떠났던 고객들을 다시 불러오고 홈플러스를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고객층을 창출하겠다”고 강조했다.
(CNB뉴스=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