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사 소속 가상인간들, 게임 밖 세계 진출
스포츠·패션·엔터테인먼트…여러분야서 협업
인간 일자리 축소시켜…미래는 ‘동전의 양면’
국내 게임사들이 ‘버츄얼 휴먼(가상 인간)’ 육성에 나섰다. 인공지능(AI)과 그래픽 기술, 캐릭터 개발력 등으로 다져진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 가상 인간을 탄생시키는 중이다. 이들은 음반과 광고, 영화, 패션 등 영역에 등장하며 신사업의 주역이 되고 있다. 무궁무진한 그들의 활약을 들여다봤다. (CNB뉴스=김수찬 기자)
90년대 후반 등장한 사이버 가수 ‘아담’을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아담은 ‘버츄얼 휴먼’의 시초 격인 가상 인간으로, 실존 가수의 얼굴을 공개하지 않고 3D 그래픽으로만 마케팅해 큰 화제가 됐다.
20여년이 지난 현재, 기술적인 발전에 힘입어 버츄얼 휴먼의 숫자는 더욱 늘어났다. 게임사와 금융사, 유통사 등이 버츄얼 휴먼을 줄이어 개발했고, 그들은 음원, 광고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맹활약 중이다. AI 기술의 집약체로 불리는 게임업계는 버츄얼 휴먼을 통해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을까?
넷마블 ‘가상인간 리나와 걸그룹’…복합 인격체 지향
버츄얼 휴먼에 집중하고 있는 대표적인 게임사는 넷마블이다. 현재까지 넷마블이 공개한 버츄얼 휴먼은 ‘리나’와 올해 데뷔를 앞두고 있는 ‘4인조 걸그룹’이다.
넷마블에프앤씨의 자회사 메타버스엔터테인먼트에서 개발한 리나는 성격과 재능, 다양한 내러티브를 가진 복합적인 인격체를 지향한다. 지난 1월 제5회 NTP(넷마블 기자 간담회)와 넷마블 신작 PC게임 ‘오버프라임’ 영상을 통해 공개됐으며, 현재 인스타그램, 틱톡 등 소셜미디어 채널에서 활동 중이다.
실제 연예기획사와 계약을 체결하기까지 했다. 지난 3월 송강호, 비, 윤정희 등이 소속된 연예기획사 써브라임과 전속 계약을 맺고, 리나의 매니지먼트를 담당하게 됐다. 지난달에는 패션잡지 ‘나일론 코리’아의 디지털 화보 모델로도 발탁됐다. 가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버추얼 드림 걸 콘셉트로, 짧은 인터뷰와 함께 나일론 코리아 인스타그램에 게재됐다.
이외에도 리나는 넷마블에서 서비스하는 게임에 캐릭터로 등장할 뿐만 아니라, 메타버스엔터테인먼트와 카카오엔터테인먼트에서 선보일 다양한 메타버스 콘텐츠에서도 등장할 예정이다.
또 다른 버츄얼 휴먼인 4인조 걸그룹은 ‘K팝 버츄얼 아이돌’ 그룹을 목표로 있으며, 지난 1월 열린 NTP를 통해 멤버 제나, 시우가 처음 공개됐다. 메타버스엔터테인먼트가 그룹의 독자적인 세계관과 캐릭터를 만들고,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엔터테인먼트와 글로벌 인프라를 담당한다.
이들은 걸그룹 활동 외에도 신작 오버프라임과 모바일 게임 ‘그랜드크로스S’에 게임 캐릭터로 등장할 예정이다. 또한 본격적인 활동 전에 현대자동차그룹과 마케팅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넷마블에프앤씨는 버츄얼 휴먼의 기술력과 활동 반경을 넓히기 위해 다양한 회사와 협업 중이다. 지난 3월 전세계 AR·VR 콘텐츠 60%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는 ‘유니티’ 측과 MOU를 맺었으며, ‘키다리스튜디오’와도 파트너십을 맺었다. 키다리스튜디오는 레진코믹스, 봄툰, 델리툰 등 글로벌 웹툰·웹소설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는 업체다. 이번 협약으로 키다리스튜디오가 보유한 다양한 IP로 게임, 메타버스 콘텐츠를 개발할 예정이며, 이를 통한 버츄얼 휴먼과의 연계 사업도 예상된다.
넷마블 관계자는 CNB뉴스에 “개발 중인 디지털 휴먼들은 성격과 재능, 다양한 내러티브를 가진 복합적인 인격체를 지향하며, 다양한 콘텐츠에서 활동할 예정이다”며 “이들이 가진 내러티브들이 게임, 웹툰, 웹소설 세계관과 연계되고 융화되면서 차별화된 콘텐츠가 만들어 질 것”이라고 말했다.
스마일게이트 ‘한유아’, 엔터테인먼트 분야서 활약…IP 다각화 일환
스마일게이트에는 버츄얼 휴먼 ‘한유아’가 있다. 스마일게이트는 VFX, VR 등 특수효과 분야에 강점을 지닌 스튜디오 ‘자이언트스텝’과 손잡고 개발했다. 자이언트스텝의 ‘AI 기반 버추얼 휴먼 솔루션’과 ‘리얼타임 엔진기술 기반 실시간 콘텐츠 솔루션’을 통해 실제 사람 같은 한층 고도화된 모습이 특징이다.
대중들에게 처음 한유아의 존재를 선보인 건, 2019년 7월 VR 게임 ’포커스 온 유‘에서 주인공을 맡으면서부터다. 지난해에는 희망친구 기아대책 홍보대사로 선정됐으며, ’Y‘ 매거진 화보를 촬영하기도 했다. 올 2월에는 YG KPLUS와 전속 계약을 체결하고, 지난 4월에는 CJ ENM과 함께 데뷔 싱글 ‘I Like That’의 음원을 발매했다. 해당 음원의 뮤직비디오 유튜브 조회수는 700만회를 넘겼다.
한유아는 광동 옥수수수염차의 새 CF 모델로도 발탁됐다. 버추얼 아티스트가 차/음료 CF 모델로 활동하는 건 한유아가 국내 최초다.
스마일게이트는 한유아를 버추얼 셀럽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올해 말까지 연기, 음반 발매 등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활동을 계획하고 있으며, 유명 브랜드와 콜라보레이션도 추진할 예정이다.
또한, 게임 ‘크로스파이어’ IP 다각화를 통해 드라마 및 할리우드 영화 등을 제작하며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작업은 더욱 수월할 것으로 보인다.
후발주자 크래프톤, ‘애나(ANA)’, 솜털과 잔머리까지 표현
크래프톤은 다른 게임사에 비해 비교적 늦게 버츄얼 휴먼을 탄생시켰다. 지난 2월 사업 지출을 공식 선언한 이후 지난달에서야 ‘애나(ANA)’의 첫 번째 티저 이미지를 공개한 것. 크래프톤은 기획 단계에서부터 세계를 무대로 활동할 수 있고 누구에게나 호감을 줄 수 있는 버추얼 휴먼을 연구했으며, 자체 기술력으로 제작했다.
애나의 가장 큰 특징은 사실적인 비주얼이다. 애나는 언리얼 엔진 기반 하이퍼 리얼리즘 제작 기술로 피부의 솜털과 잔머리까지 극사실적으로 표현됐다. 최고 수준의 페이스 리깅 기술로 동공의 움직임, 미세한 얼굴 근육 및 주름까지 섬세하게 표현해냈으며, 신체 전체에도 리깅을 적용해 자연스러운 관절의 움직임을 보여준다. 여기에 고도화된 음성 합성 등의 딥러닝 기술을 더해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연기하고 노래할 수 있는 고유의 목소리도 입혔다.
향후 오리지널 음원 발매를 시작으로 엔터테인먼트, 이스포츠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할 예정이다. 이미지와 영상, 세계관 등 상세한 정보는 하반기 중 순차적으로 공개된다.
크래프톤이 내놓은 또다른 버츄얼 휴먼은 ‘위니(WINNI)’다. 위니는 크래프톤과 버추얼 인플루언서 제작사 ‘네오엔터디엑스’의 협업으로 탄생했다.
위니는 게임과 애니메이션, 댄스와 스포츠를 좋아하는 21세 공대생.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으며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으로 설정됐다. 지난달 3일 인스타그램 및 틱톡 계정을 개설하고 일상 사진과 댄스 커버 영상 등의 콘텐츠를 통해 소통해왔으며, 20여일 만에 팔로워 1만 명을 돌파했다.
위니 역시 애나와 마찬가지로 게임을 넘어 스포츠, 패션, 엔터테인먼트 등 여러 분야와 협업하며 다양한 활동을 펼쳐나갈 계획이다. 신석진 크래프톤 크리에이티브 본부장은 “크래프톤의 차별화된 기술력으로 탄생한 실제에 가까운 비주얼을 자랑하는 버추얼 휴먼”이라며 “향후 오리지널 음원 발매를 시작으로 엔터테인먼트, 이스포츠 등 다양한 영역에서 인플루언서로 활동을 넓혀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여러 가상 인간들이 앞으로 인류의 삶에 어디까지 관여할 지는 예측하기 힘들다.
다만 현재 버츄얼 휴먼의 수준으로 볼 때, 수십년전 공상과학 영화에서처럼 인조인간들이 인간(human being)과 전쟁을 벌이거나 인류를 지배하는 세상은 상상하기 힘들다.
하지만 마케팅·패션·엔터테인먼트 등에서 활동하면서 인간의 일자리를 축소 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동전의 양면’ 같지만 결국 동전을 손에 쥔 건 인간이다.
(CNB뉴스=김수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