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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역사민속박물관, ‘광주철도 100년’ 기획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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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박용덕기자 |  2022.06.30 15:37:31

송정리역(일제강점기) 송정리역은 대전~목포를 잇는 호남선 개통 1년 전인 1913년에 영업을 시작했다. 당시 송정리역은 호남선 20여 통과역 중 목포역과 이리역 다음으로 컸다.(사진=광주시)


7월7일∼8월21일, 송정리역 등 역사건물 재현·철도 관련 자료 전시

광주역사민속박물관은 광주시내에 철도가 들어온 지 100년을 맞아 오는 7월7일부터 8월21일까지 ‘광주철도 100년’ 기획전시회를 개최한다.

광주에는 지난 1922년 7월 당시 호남선 송정리역과 대인동의 동부소방서 자리의 광주역 사이 15㎞에 철도가 처음 개통됐다.

이번 전시는 3부로 나눠 지난 100년 광주철도를 대표해온 호남선, 광주선, 경전선을 소개하고, 해당 철도노선을 대표하는 송정리역, 광주역, 남광주역 등 3개 역사 건물을 재현한다. 희귀한 철도 관련 자료 130여 점도 함께 전시한다.

제1부 ‘1913년 송정리역’에서는 철도가 황룡강변의 작은 마을이던 송정리가 교통의 거점이자 광주의 관문으로 변모해온 과정을 소개한다. 일제의 수탈 도구라는 생각에 초기 철도는 배척의 대상이었지만 점차 국권회복과 철도를 나눠 생각하는 것으로 인식이 바뀌는 과정을 다룬다.

당시 불린 ‘호남철도가’를 소재로 제작한 영상을 통해 이러한 철도에 대한 인식의 변화과정을 보여준다. 또한 이전까지 공개된 적이 없던 송정리역의 초기의 모습을 담은 자료도 발굴, 소개한다.

 

광주역(1930년대) 1922년 광주역은 동구 대인동의 동부소방서 자리에서 영업을 시작했고 1969년 지금의 자리인 중흥동으로 이전했다.(사진=광주시)

 

제2부 ‘1922년 광주역’에서는 송정리역과 광주시내를 잇는 철도가 필요했던 이유와 그것이 광주역사에 미친 영향을 소개한다. 통칭 ‘광주선’으로 부른 이 노선은 걸어서 3시간 거리이던 송정리~광주시내 간을 30분 거리로 좁히면서 하나의 생활권으로 묶는 촉매역할을 했다.

또한, 반경 수십㎞의 열차통학권을 형성해 광주가 근대 교육도시로 발돋움하는 계기도 마련했다. 열차통학은 매일 한국인과 일본인 학생들이 충돌하는 공간이었고, 이로 인해 광주학생독립운동에서 운암역, 나주역, 광주역이 등장하는 것이 우연이 아니었다. 제2부에서는 일제강점기 통학열차를 끌던 증기기관차를 재현한 길이 4m, 높이 2m의 대형 모형도 전시한다.

제3부 ‘1930년 남광주역’에서는 광주가 전남 동부와 서부를 잇는 철도 교통의 요충지로 발전하는 과정을 다룬다.

 

남광주역(1930년대) 남광주역은 1930년부터 2000년까지 70년 간 운영됐다. 남광주역이란 이름은 이곳이 조선시대 광주읍성의 남문 밖인데서 유래했다.(사진=광주시)


1930년 지금의 경전선의 전신인 ‘광려선’이 개통되면서 이틀거리이던 광주~여수 간 여행거리는 한나절 거리로 바뀌게 된다. 이 노선의 광주 쪽 관문인 남광주역은 이후 역 주변에 시장이 생기면서 지금의 남광주 풍경을 만들어냈다.

남광주역 내부는 곽재구 시인의 작품 ‘사평역에서’에서 모티브를 얻어 옛 간이역의 대합실로 꾸며 철도에 얽힌 추억을 담금질할 수 있도록 조성했다.

신현대 박물관장은 “지난 100년 철도는 일제의 수탈과 징용의 수단, 개발독재시절 호남선의 더디기만 했던 복선화 사업 등 어두운 그림자와 함께 광주의 위상을 높이고 도시공간과 일상에까지 많은 영향을 끼치는 등 빛을 선사했다”며 “이번 전시가 이러한 철도의 역할, 나아가 현대문명에 대한 인문학적 고민과 성찰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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