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구조 개혁 통해 실질적 오너로 등극
특유의 M&A 본능 부활, 통큰 투자 예고
‘청년 김남정’의 꿈…글로벌 기업 눈앞에
국내 최대 수산기업인 동원그룹이 동원산업을 지주회사로 재편하며 대대적인 지배구조 개혁에 나섰다. 이를 통해 김남정 부회장이 실질적인 그룹 ‘지배주주’로 등극함으로써 동원그룹 후계 승계 과정이 사실상 마침표를 찍게 됐다. ‘40대 젊은피’ 김 부회장은 투자와 인수합병, 신사업 등 그간 준비해온 청사진에 속도를 낼 전망이다. (CNB=도기천 기자)
동원그룹은 최근 지주회사인 동원엔터프라이즈와 중간 지배회사 역할을 하는 동원산업의 합병을 추진한다고 공시했다.
이는 지배구조를 단순화해 경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동원그룹은 그동안 지주회사인 동원엔터프라이즈가 동원산업을 비롯해 동원F&B·동원시스템즈 등 자회사 5개를 지배하고, 중간 지배회사인 동원산업이 스타키스트·동원로엑스 등 종속회사 21개를 보유하는 다소 복잡한 지배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합병 작업이 완료되면 지주사 동원엔터프라이즈가 동원산업에 흡수돼 동원산업이 동원그룹의 실질적 지주사가 된다. 스타키스트·동원로엑스 등 손자회사였던 계열사들은 자회사로 지위가 바뀐다. 지주사 대표이사는 동원산업 이명우 사장과 동원엔터프라이즈 박문서 사장이 각각 사업 부문과 지주 부문의 각자 대표를 맡는다.
이렇게 되면 김 부회장의 그룹 지배력은 더욱 공고해진다. 김 부회장은 동원엔터프라이즈 지분 68.3%를 보유한 최대주주인데, 동원산업과의 합병 비율을 고려하면 합병 후 김 부회장의 동원산업 지분율은 절반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다 3년전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창업주 김재철 명예회장(김 부회장의 부친)의 지분까지 합치면 오너 일가 지분율이 60%를 넘는다.
이는 김 부회장을 축으로 하는 그룹 승계 작업이 사실상 완료됐음을 의미한다. 김 명예회장은 2004년 그룹을 동원금융과 동원산업으로 계열분리하는 과정에서 동원금융은 장남인 김남구 현 한국투자금융지주 회장, 동원산업은 김 부회장에게 맡겼다. 이같은 후계 구도가 이번 지배구조 재편으로 18년 만에 일단락되는 것이다.
잔뼈 굵은 현장 출신… 영토 확장 ‘속도’
김 부회장은 부친으로부터 호된 경영수업을 받아온 현장 출신 기업인이다.
대학 졸업 직후인 1996년 동원산업 영업사원으로 입사해 26년 간 생산·영업·기획·재무·마케팅 등 여러 분야를 두루 거치며 후계자로서의 경영 능력과 입지를 구축했다. 2004년 동원F&B 마케팅전략팀장, 2006년 동원산업 경영지원실장, 2008년 동원시스템즈 경영지원실장, 2009년 동원시스템즈 건설부문 부본부장 등을 역임하다 마흔살이 되던 2013년, 동원그룹 부회장에 올라 부친을 보좌하며 그룹경영을 이끌었다. 그러다 부친이 2019년 4월 경영일선에서 물러나자 그룹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해왔다.
김 부회장은 본격적인 ‘위드 코로나’ 시대를 맞아 공격적인 사업확장을 예고하고 있다. 이미 과거부터 과감한 도전으로 그룹을 성장시켜 온 만큼, 이번 지배구조 개혁은 그에게 더 큰 자신감을 안기는 계기가 되고 있다. 동원그룹 관계자는 CNB에 “이번 합병으로 지배구조를 단순화해 빠르게 변화하는 외부 환경에 기민하게 대응하고, 투자 규모도 대폭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 부회장은 업계에서 참치 가공·공급에 주력하던 원양회사인 동원을 수산, 식품, 포장재, 물류를 4대 중심축으로 하는 종합식품기업으로 성장시킨 주역으로 평가받는다. 실제 김 부회장이 본격적으로 경영에 참여한 2014년 이후부터 동원그룹의 사업영역이 크게 확장되기 시작했다. 최근 7~8년새 김 부회장 주도로 인수합병한 기업만 9곳에 달한다. 한진피앤씨, 테크팩솔루션, 탈로파시스템즈 등을 인수하며 포장재 사업을 강화했으며, 2016년에는 스타트업 더반찬을 인수하며 온라인 사업을 확대했다.
김 부회장의 과감한 도전 행보는 실적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 동원산업의 경우, 코로나 이전인 2019년 매출액이 2조6826억원이었는데, 코로나 시기인 2020년과 지난해 오히려 매출이 늘어 2조8000억원 규모로 성장했다.
‘수산기업→종합식품→첨단산업’ 도전의 끝은?
김 부회장은 앞으로 더 빠르게 사업 영토를 확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국내 최대 종합 포장재 회사 동원시스템즈를 첨단 소재기업으로 키운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동원시스템즈는 지난해 3월 2차전지용 캔 제조업체인 엠케이씨(MKC)의 지분 100%를 156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 2차전지용 캔 사업에 진출하면서 첨단 소재기업으로의 변신에 속도를 내고 있다. 동원그룹은 배터리 캔 수요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올 상반기 내 라인을 추가로 증설하는 등 2차전지용 캔 제조 사업규모를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또한 동원시스템즈의 기존 영역인 포장재 사업에서도 글로벌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동원시스템즈의 포장재 사업은 지난 2012년까지만 해도 연 매출 1천억 원대에 불과한 수준이었지만, 국내외에서 과감한 인수합병(M&A)을 통해 알루미늄, 캔, 병, 종이, 산업용 필름 등 소비재 전반의 포장재를 생산하는 국내 1등 종합 포장재 기업으로 성장했다.
동원그룹은 수산업에 이어 축산업 분야에서도 조금씩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2015년 국내 최대 축산물 유통업체인 ‘금천’을 동원F&B가 인수한데 이어, 지난해 7월에는 B2C 축산물 가공 전문기업 ‘세중’을 인수했다. 이를 바탕으로 지난해 9월 금천사업부와 세중을 통합해 계열사인 동원홈푸드 산하에 축육 부문을 신설했다. 동원홈푸드는 금천사업부가 가진 유통망과 물류시스템에 세중의 가공∙유통 노하우를 접목해 사업 시너지를 창출할 계획이다.
동원그룹이 공들이고 있는 벤처투자도 활기를 띨 전망이다. 지주사인 동원엔터프라이즈는 지난 2월 자본금 100억원 전액을 출자해 벤처투자사인 동원기술투자를 자회사로 설립했다. 이는 지난해 12월 공정거래법 개정으로 일반지주회사의 기업형 벤처캐피탈(CVC) 보유가 허용된 이후 지주사로서는 첫 사례다. 동원기술투자는 관계자는 “벤처기업 및 신기술사업자와 상생하는 방향으로 적극 투자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밖에도 장기적으로는 ‘잡는 어업’에서 ‘기르는 어업’으로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동원산업이 추진하고 있는 ‘필(‘必)환경 스마트 육상 연어 양식 단지’가 대표적 사례다. 2030년까지 강원도 양양군 3만5천평 부지에 2000억원을 투자해 육상 연어 양식 단지를 건립한다는 계획이다. ‘해수 순환(Flow Through System-Reuse)’ 기술과 첨단 스마트 공법이 함께 도입된 최첨단 시설로 건설할 예정이다. 연어는 전 세계적으로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지구 온난화로 인해 어획량이 감소하고 있는 어종이다. 양식 단지 조성은 연어를 육상에서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생산하게 됐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
김 부회장은 이처럼 여러 분야에 걸친 새로운 도전을 통해 동원을 종합식품기업에서 벗어나 첨단 기술 분야까지 아우르는 글로벌 생활산업그룹으로 성장시키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이번 지배구조 혁신(지주사 합병)은 그가 꿈을 현실로 실현하는데 있어 변곡점이 되고 있다. 1996년 대학 졸업 직후 부산의 참치캔 공장에서 통조림 포장과 창고 야적일로 수산업에 뛰어든 ‘20대 청년 김남정’의 도전이 이제 세계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