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수들, 각양각색 메시지 전달
정의선·정용진, 상식 넘는 연출
구광모, 첨부터 끝 “오직 고객”
신동빈, ‘촌철살인’식 비유·인용
“주저않는 도전의 해” 한목소리
국내 주요 대기업들이 신년사를 통해 던진 화두는 ‘변화와 혁신’이었다. 여전한 팬데믹 상황 속에서 산업의 새 패러다임을 개척하기 위해서다. 새로운 도전에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이에 CNB가 기업·산업별로 신년사에 담긴 의미를 분석해 연재하고 있다. 이번 편은 주요 그룹 총수들의 메시지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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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KB·신한·하나·우리금융…새해 키워드는 ‘디지털 혁신’
새해 재계 신년사에서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언중유골의 말잔치가 벌어졌다. 코로나에 갇혀있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 격언을 활용한 깊숙한 의미 전달, 목표점을 확실히 드러내는 촌철살인의 한 마디 등 임인년을 헤쳐 나갈 목소리가 조목조목 흘러나왔다. 2022년을 새로운 도약의 원년으로 삼겠다는 기조는 대체로 일치하나 저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다. 넘쳐나는 일성을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등장부터 남다르게 ‘개성파형’
가상의 도시. 스타벅스, 스타필드 등 낯익은 간판 사이로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나타나 새해 계획을 밝힌다. 힘찬 어조만큼이나 손짓도 화려하다. 중요한 대목에서 검지를 치켜세우고, 어조가 고조되면 팔을 크게 휘젓기도 한다. 말의 이해를 돕기 위한 그래픽은 프레젠테이션처럼 적재적소에서 흐른다. 종합해보면 세계적 강연 플랫폼 TED와 비슷한데, 이는 지난 3일 정 부회장이 ‘신세계그룹 뉴스룸’을 통해 발표한 신년사 영상의 주요 장면이다.
올해 신년사는 이처럼 메시지만이 두드러진 것이 아니었다. 톡톡 튀는 전달 방식도 눈길을 끌었다.
정 부회장이 강연자의 모습처럼 연단에 올랐다면,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전혀 다른 세계로 올라탔다. 많은 기업들이 미래 먹거리로 점찍은 3차원 공간 메타버스(Metaverse)이다.
정의선 회장은 지난 3일, 현대차그룹이 자체 구축한 메타버스의 ‘라이브 스테이션’ 무대에서 영상을 통해 등장했다. 이 회사의 신년회 자리였다. 세계 각지의 임직원들은 이 가상세계에 가상의 나(아바타)로 모여들었다.
‘아바타 직원들’ 앞에 선 정 회장은 “어려운 글로벌 경영환경 속에서도 최선의 노력을 다해주신 임직원 여러분들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며 새해 인사를 건넸다. 물리적 거리를 뛰어넘은 범지구적 만남이 정초에 성사된 것이다.
고객만 본다 ‘해바라기형’
외치고 또 외쳤다. 그 이름은 고객이다.
삼성전자 한종희 대표이사 부회장과 경계현 대표이사 사장은 지난 3일 공동 명의의 신년사를 내면서 “고객을 지향하는 기술의 혁신은 지금의 삼성전자를 있게 한 근간”이라며 “이제는 한발 더 나아가 고객이 우리의 가장 중요한 가치가 돼야 하고, 최고의 고객 경험을 전달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기술 변혁기에 글로벌 1등으로 대전환을 이루었듯이 가치 있는 고객 경험을 통해 사업의 품격을 높여 나가자”며 “최고로 존중 받는 임직원 경험을 통해 임직원의 자부심을 회복하자”고 강조했다.
지난 2019년 취임 후 첫 신년사에서 “LG가 나아갈 방향은 고객”임을 천명한 구광모 LG 대표의 지향점은 올해도 변함이 없다.
구 대표는 지난달 20일 임직원에게 ‘안녕하십니까, 구광모입니다’라는 제목의 디지털 영상을 메일로 보내며 새해 인사를 건넸는데, ‘고객’만 십여 차례 외칠 만큼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지금까지 LG는 양질의 제품을 잘 만드는 일에 노력해 왔지만, 요즘 고객들은 그 이상의 가치를 기대한다”며 “고객은 제품/서비스 자체가 아니라 직접 경험한 가치 있는 순간들 때문에 감동한다”고 진단했다.
또 “고객이 느끼는 가치는 사용하기 전과 후의 경험이 달라졌을 때,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것을 느꼈을 때 만들어진다. 우리가 고객에게 전달해야 할 것도 바로 이런 ‘가치 있는 고객 경험’ 이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구 대표는 “고객이 감동할 사용 경험을 지속적으로 만들어 가는 게 중요하다”면서 “우리의 생각과 일하는 방식도, 여기에 맞게 혁신해 가야 한다”고 임인년에 나아갈 방향을 명확히 밝혔다.
로봇을 다루는 기술인 로보틱스를 필두로 미래 모빌리티를 그려나가겠다는 목표를 세운 현대차그룹의 정의선 회장이 강조한 것 또한 고객이다.
정 회장은 “고객들이 가장 신뢰하고, 만족하는 ‘친환경 톱 티어(Top Tier) 브랜드’가 되기 위한 기반을 확실하게 다지겠다”며 “미래 가능성을 고객의 일상으로 연결하기 위한 노력들이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모든 임직원들의 부단한 노력과 역량이 결집되어야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서는 “전 그룹에 걸쳐 가장 기본이 되는 디테일한 품질 관리 및 확보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실패 없는 성공 없다 ‘도전형’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길어지는 지금, 더는 움츠러들지 않겠다는 강경한 메시지도 다수 흘러나왔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2021년의 마지막 날, 전체 구성원에게 이메일로 “코로나 팬데믹과 기후 위기 등이 중첩된 경영환경에 대처하기 위해 도전정신으로 충만한 ‘프런티어’(개척자)가 되자”며 분명한 의지를 드러냈다.
최 회장은 SK의 주요 사업이 글로벌 패권 경쟁의 한 복판에 서 있는 현실을 언급한 뒤 “지정학적 갈등이 경제적 발전을 이렇게 위협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며 “과거 경험에 안주하지 말고 전략적 유연성에 기반해 창조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체 새해 메시지를 함축하는 지론은 말미에 밝혔다. “기업의 숙명은 챔피언이 아니라 도전자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안주하지 않는 끝없는 모험심을 한마디에 담은 것이다.
도전정신과 함께 올해를 새 출발의 도약대로 삼은 기업들도 있다.
올해 창립 70주년을 맞는 한화그룹의 김승연 회장은 “100년 한화의 미래를 향한 도약의 한 해를 만들어가자”는 신년 메시지를 띄웠다.
김 회장은 “2022년은 우리 사회가 침체된 분위기에서 벗어나 일상을 회복하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중요한 한 해가 될 것”이라며 “이런 시기를 맞아 우리 한화는 일상의 회복을 넘어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는 대전환의 발걸음을 재촉해야 한다. 오늘을 걸어가는 우리의 발걸음 하나하나가 한화의 빛나는 미래를 만든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더욱 과감한 혁신과 도전에 나서야 할 때“라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추진 중인 신사업의 성과를 앞당기고 지속적으로 신규 사업을 발굴하여 미래 한화를 구현해 나가자”고 당부했다.
지주사 전환을 추진 중인 포스코그룹 최정우 회장은 "올해는 포스코그룹에 있어 새로운 출발의 해로 기억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구체적으로 “저탄소 친환경 시대로의 대전환, 기술혁신 가속화, ESG 경영 강화 등 급변하는 경영환경 하에서 100년 기업을 향한 그룹의 지속성장과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 지주회사 체제로 첫발을 내딛고자 한다”며 “우리가 추진하고 있는 지주회사 체제는 그룹차원의 균형 성장을 견인할 가장 효율적인 선진형 기업지배구조 모델”이라고 소개했다.
최 회장은 “철강사업을 포함한 각 사업회사는 본업의 전문성 강화에 집중하고 지주회사는 그룹 성장전략의 수립과 미래사업 포트폴리오 개발, 그룹과 시장 전체 관점의 새로운 시너지 기회를 발굴함으로써 그룹차원에서 더 크고 견실한 성장을 실현해 나갈 것”이라며 청사진을 내보이기도 했다.
손경식 CJ그룹 회장은 3일 사내방송을 통해 “격변하는 경영환경을 극복하고 미래 성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냉엄한 현실을 엄중히 인식하고 CJ의 대변혁을 시작해야 할 때”라고 밝혔다.
손 회장은 “지난해 중기 전략에서 각 계열사가 비전을 새로 수립하고 신성장 동력을 구체화한 만큼 최고 인재들이 충분히 실력 발휘를 할 수 있도록 인사제도와 문화를 혁신적으로 바꾸어 나가야 할 때”라고 당부했다.
CJ그룹 측은 “지난해 11월 이재현 회장이 직접 발표한 그룹 중기비전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하며 이를 달성하기 위해 최고 인재가 일하고 싶어하는 글로벌 일류 기업으로의 변화와 혁신이 절실하다고 역설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말에 뼈를 담은 ‘격언형’
이렇게 공교로울 수가 없다. 롯데와 신세계, 두 유통 라이벌의 말끝에 같은 이름이 등장했다. 아이스하키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꼽히는 웨인 그레츠키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웨인 그레츠키의 “시도조차 하지 않은 슛은 100% 빗나간 것과 마찬가지다”라는 말을 인용하며 “실패는 무엇인가 시도했던 흔적이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창조적인 도전 문화가 정착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역시 같은 문장을 언급하며 “아무리 좋은 계획도 한번의 실천이 없다면 무용지물”이라며 “실패해도 꾸준히 실천할 것”을 당부했다.
‘검은 호랑이의 해’인 만큼 용맹한 의지를 피력하는 비유에도 눈길이 간다.
“바람이 거셀수록 활시위를 더욱 강하게 당겨야 한다. 그 어떤 바람도 우리의 원대한 꿈과 도전을 막을 수는 없다”는 김승연 회장의 메시지는 새해를 맞는 누구나 기억해볼만한 말이다.
(CNB=선명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