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 아들 신분 숨기고 통조림 공장일
창업주 뒤이어 ‘제2의 동원 신화’ 선언
온라인몰 강화하고 친환경 수산 ‘올인’
‘잡는 어업’서 ‘기르는 어업’ 변화 시도
업계최초로 ‘착한 소비’ 담은 MSC 인증
본격적인 2세 경영 3년차를 맞은 동원그룹이 온라인몰 강화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양대 축으로 사업혁신에 나서 주목된다. 국내 최대 수산기업으로서 해양생태계 보호에 앞장서는 한편 급변하는 소비 트렌드에 부응해 이커머스 쪽으로 점차 중심축을 이동시키고 있는 것. 그 중심에는 2년전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창업주 김재철 명예회장의 뒤를 이어 그룹을 이끌고 있는 40대 젊은리더 김남정 부회장이 있다. (CNB=도기천 기자)
김남정 부회장은 부친 김재철 명예회장으로부터 호된 경영수업을 받아온 현장 출신 기업인이다. 대학 졸업 직후인 1996년 동원산업 영업사원으로 입사해 마케팅실과 기획실에서 일했다. 그러다가 미국으로 날아가 2003년 미시간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2004년 동원F&B 마케팅전략팀장, 2006년 동원산업 경영지원실장, 2008년 동원시스템즈 경영지원실장, 2009년 동원시스템즈 건설부문 부본부장 등을 두루 거쳤다. 마흔살이 되던 2013년, 동원그룹 부회장에 올라 부친을 보좌하며 그룹경영을 이끌었다.
김 부회장이 신입사원 시절 부산의 참치캔 공장에서 생산직으로 일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당시 참치캔 포장과 창고 야적 등의 일을 했는데, 공장에서는 오너 2세가 일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하지만 김 부회장이 워낙 열심히 일해 아무도 정체를 알아채지 못했다고 한다.
김 부회장은 부친이 2019년 4월 경영일선에 물러나면서 동원그룹의 선장이 됐다. 지난해 전세계를 덮친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도 비상경영체제로 전환해 위기를 무난히 넘겼다는 평을 받는다. 올해는 코로나로 잠시 움츠렸던 모습에서 벗어나 공격적인 사업확장에 나서고 있다.
온라인사업 확장의 기반은 ESG
김 부회장은 우선 흩어져 있던 온라인 조직을 하나로 통합해 시너지 효과를 높이고 있다.
그룹의 대표 온라인식품몰 ‘동원몰’은 한때 국내 1위 온라인식품몰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새벽배송서비스를 앞세운 경쟁사들에게 다소 밀린 상태다.
이에 김 부회장은 지난 4월 각 계열사와 사업부로 분산 운영되던 온라인 조직을 통합, 동원몰 운영을 전담하는 동원디어푸드를 신설했다. 동원몰은 식품 전문 쇼핑몰인 동원몰, 온라인 장보기 마켓인 더반찬&, 국내 최대 축산 온라인몰인 금천미트 등 동원 계열사가 생산, 판매하는 모든 제품을 취급하고 있다. 온라인몰의 기반이 되는 PC와 모바일 앱 등 디지털 환경도 대대적으로 리뉴얼했다.
동원그룹은 동원디어푸드를 통해 인력과 마케팅 중복투자를 방지하고 의사결정 과정을 간소화해 급변하는 시장 변화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코로나가 가져온 언택트 쇼핑 문화 정착, 전업주부의 축소 및 직장맘의 증가 ▲대형마트 의무 휴무 규제 ▲온라인 식품에 대한 신뢰도 상승 등으로 시장의 중심축이 급속히 온라인으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 부회장은 이같은 온라인 중심의 ‘식품 선도기업’이 되기 위한 핵심기반으로 ESG를 내세우고 있다.
ESG는 환경(Environment)·사회(Social)·지배구조(Governance)의 머리글자를 딴 단어로, 기업활동에 친환경, 사회적 책임 경영, 지배구조 개선을 도입해 지속가능한 투명경영을 하자는 의미다.
이는 곧 기업의 실적과도 직결된다. 오너 리스크와 경영권 다툼 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소비자 및 협력사와의 소통을 중심에 놓기 때문이다.
김 부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고객에게 제공하는 제품과 서비스는 물론 고객과의 소통 방식, 일하는 방식과 업무 절차, 나아가 사업의 구조까지 전반적으로 혁신해 경영의 격을 높이겠다”고 선언했다. 한마디로 ESG를 통한 경영혁신을 선포한 것이다.
‘1위 수산기업’답게 해양보호 앞장서
동원그룹의 ESG는 특히 친환경 분야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국내 1위 수산기업의 위상에 맞는 사회적 책무를 다하기 위해 ESG가 전 세계적 화두가 되기 이전부터 수산식량 자원과 해양 생태계 보호에 앞장서며 수산업계 지속가능경영을 이끌어왔다.
그룹의 모(母)기업인 동원산업은 수산업계 지속가능경영을 논의하는 글로벌 회의체인 SeaBOS(Seafood Business for Ocean Stewardship)의 창립 구성원이기도 하다. 플라스틱 사용 저감, 온실가스 배출량 저감, 추적가능성과 투명성 개선 등 10가지 주요 의제를 실천하고 있다.
동원산업은 2019년부터 3년간 총40척의 자사 원양어선에서 사용하는 플라스틱 소모품 양을 65.4% 절감할 계획이다. 이 기간 동안 사라지는 플라스틱 양은 약 2680톤으로 500㎖ 플라스틱 생수병으로 치면 1680만개에 달한다.
동원산업은 이를 위해 수산기업으로는 이례적으로 TPO(Total Plastic officer, 토탈 플라스틱 오피서)라는 직책을 신설해 전사적인 플라스틱 절감 운동을 펼치고 있다. 조업에 사용하는 집어장치(FAD)를 기존 플라스틱 소재에서 나무와 천연섬유 소재로 생분해가 가능한 바이오 집어장치로 변경하고, 수산물 보냉재인 아이스팩도 100% 물과 생분해성 소재를 사용한 친환경 아이스팩으로 전량 교체해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동원산업은 한국능률협회컨설팅이 주관한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수산 부문에서 7년 연속 1위에 올랐다. 또 지속가능수산물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글로벌 비영리기구인 해양관리협의회(Marine Stewardship Council, MSC)로부터 어업방식에 대한 지속가능성을 인정받아 MSC 인증을 획득했다. 동원산업이 지난 명절 때 출시한 ‘MSC 참치회 선물세트’는 국내 수산기업 최초로 MSC 인증 마크를 달아 출시한 제품이다.
동원그룹은 또 미래 수산자원 확보를 위해 ‘잡는 어업’에서 ‘기르는 어업’으로의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강원도 양양군 3만5000평 부지에 10년간 단계적으로 2000억원을 투자해 대규모 육상 연어 양식 단지를 만들 계획이다.
‘노(No) 플라스틱’ 친환경 제품 출시
동원그룹의 종합식품계열사인 동원F&B도 최근 김재옥 대표이사를 비롯, 사내이사 3명과 사외이사 1명 등 총 4인으로 구성된 ESG 위원회를 신설해 사회적 책임경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ESG 위원회는 △친환경 제품 매출 1000억원 달성 △연간 플라스틱 사용량 15% 절감 △산업안전 보건경영 확립 등을 올해 3대 핵심목표로 선정했다. 이를 위해 위원회 산하에 분야별 실무조직을 구성해 이행 내역과 성과를 관리하고 있다.
친환경 제품 매출 1000억원 달성을 위해 무라벨 생수 ‘동원샘물 라벨프리’와 무라벨 차음료 ‘에코보리’를 최근 출시했으며, 아이스팩 대용으로 얼린 샘물 보냉재 ‘동원샘물 프레쉬’를 확대하고 있다.
또 제품에 사용되는 플라스틱 포장재를 지속적으로 줄이고 있다. 플라스틱 트레이를 없앤 ‘양반김 에코패키지’를 출시했으며 샘물 제품의 페트병 경량화에 노력 중이다. 플라스틱 포장재를 완전히 없앤 ‘노 플라스틱(No Plastic)’ 선물세트도 늘릴 계획이다.
상생의 시작은 ‘나와 너’
이밖에 사회적 가치 경영에 방점을 둔 ‘상생’에도 힘쓰고 있다.
협력사와의 상생 협약을 통해 지속가능한 기업활동을 함께 실천하고, 위법사례 감시 시스템을 운영하며 윤리경영을 강화하고 있다. 전 사업장에 ISO45001 인증을 도입하는 등 산업안전 시스템도 확립했다. 최근에는 전국 ‘동원샘물’ 대리점에 폐페트병으로 만든 친환경 유니폼을 배포했는데, 현장 대리점들이 ESG 경영에 동참하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실종아동 찾기’ 캠페인도 눈길을 끈다. 동원F&B는 국내 오프라인 매장과 온라인 쇼핑몰에서 판매되는 ‘리챔’ 통조림 묶음 제품 포장지에 실종아동 정보를 넣었다. 실종아동의 사진과 이름, 성별, 실종일자, 실종장소, 신체특징 등이 자세히 담겨있다.
동원그룹 사정에 밝은 업계 관계자는 CNB에 “동원의 ESG경영은 김남정 부회장 체제가 본격 출범한 시점과 맞물려 미래 핵심전략으로 자리 잡았다”며 “소비자 신뢰가 필수요건인 식품전문기업인만큼 플라스틱 제로 운동, 친환경 먹거리 개발 등에 회사의 명운을 건 것”이라고 설명했다.
동원그룹 관계자는 CNB에 “ESG는 전세계적으로 기업의 생존과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며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사회필요기업으로서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ESG 활동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