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약개시시점 접속하면 ‘먹통’…깜깜이 서비스
무늬만 공공예약…여행사들 ‘티켓 싹쓸이’ 의혹
패키지 상품으로 둔갑…웃돈 얹어 버젓이 거래
관광공사 ‘강 건너 불구경’…알고도 입 닫았나?
한국관광공사가 운영하는 공공체육시설인 제주 중문CC의 예약 티켓이 여행사들의 패키지 관광상품으로 둔갑해 거래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마치 개인이 한강시민공원 축구장 이용권을 판매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행위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CNB가 내막을 단독취재했다. (CNB=도기천 기자)
제주도 서귀포시 중문관광로에 위치한 중문CC는 28만평 규모의 18홀 대중제 골프장(퍼블릭)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기관인 한국관광공사가 직접 운영하고 있는 공공체육시설로, 도보 5분거리에 롯데호텔·신라호텔 등 고급 숙박시설들이 즐비하고 제주 바다와 맞붙어 있어 인기가 높은 편이다.
이곳은 100% 공공예약제로 운영된다. 매월 1일 오전 9시 정각부터 다음달 예약이 시작된다. 가령 8월 5일에 한 타임을 잡으려면 7월 1일 9시가 돼야 가능하다. 예약 방식은 온라인(홈페이지) 50%, 전화 50% 비율이다.
문제는 예약 개시 시점에 접속해도 예약이 안된다는 것. 매월 1일 오전 9시 정각에 접속했지만 연이어 실패했다는 이수현씨(가명)는 CNB에 “정확히 8시 50분부터 마우스를 부여잡고 있다가 9시 정각에 (예약날짜를) 클릭했는데 컴퓨터 화면이 먹통(다운)이 됐다. 몇초 후 정상으로 돌아온 뒤 보니 모든 날짜 예약이 끝나 있었다. 5월부터 3개월째 이런 일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씨의 경우 5월 1일, 6월 1일, 7월 1일 각각 오전 9시 정각에 접속했는데, 전부 예약에 실패했다고 한다. 예약전화도 마찬가지로 불통이었다.
이에 대해 중문CC 관계자는 CNB에 “야외의 너른 공간을 이용하는 골프장이 코로나 감염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하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최근 예약자가 폭증해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이라며 “1~2초 사이에 예약이 마감되고 있어 접속자의 컴퓨터 사용환경, 인터넷 속도 등이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속도가 느린 컴퓨터를 사용하거나, 사용자가 마우스 클릭을 한 박자 놓치면 그 사이에 부킹이 끝난다는 얘기다.
작전세력 먹잇감 된 중문CC
하지만 이처럼 ‘하늘에 별따기’ 같은 예약권이 여행사들의 패키지 상품으로 버젓이 팔리고 있었다.
8월분 예약이 시작된 지난 1일, CNB가 제주관광전문 여행사 3곳에 문의하니 모두 “호텔숙박이나 항공권을 이용하는 전제로 8월에 중문CC 이용이 가능하다”고 답했다. 또 모든 패키지 상품은 ‘4명 한팀’ 기준으로만 판매한다고 밝혔다.
가격은 숙박시설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었는데, 관광호텔급 숙소에서 1박(2인 1실 기준) 뒤 중문CC를 이용하는 ‘1박2일 패키지’의 경우, 평일은 1인당 20만원, 주말·공휴일은 30만원 안팎 수준이었다. 4명이 토요일에 중문CC에서 골프를 즐긴다고 가정하면 120만원 정도가 소요된다는 얘기다.
중문CC의 인터넷 예약 그린피(이용료)는 1인당 평일 9만원, 주말·공휴일 12만원이다. 숙박료를 감안하더라도 여행사 입장에서는 상당한 이윤을 챙기게 되는 셈이다.
이는 마치 개인이 한강시민공원 야구장 이용권을 웃돈을 얹어 판매하는 것과 다름없는 행위다.
이에 대해 한국관광공사 홍보실 관계자는 CNB에 “100% 온라인·전화 예약제라 단 한개의 티켓도 따로 빼낼 수 없다. 관광공사 사장이라 할지라도 일반인과 똑같이 매월 1일 9시에 전화·인터넷으로 예약하는 방법 외에는 없다”며 “따라서 여행사들이 9시 정각에 접속해 상당수 예약권을 가져가 재판매했을 것으로 짐작된다”고 말했다.
일반인은 특정세력 들러리?
관광공사의 해명대로라면 일반인은 아무리 노력해도 전화·인터넷 예약이 힘들다는 얘기가 된다. 여행사가 IT 전문가 도움을 받아 고사양 컴퓨터와 최상의 인터넷 접속환경을 만든 뒤 여러 명이 동시접속 하는 방식으로 ‘작전’을 펼칠 경우, 예약권을 싹쓸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능성을 중문CC 측도 일부 인지하고 있었다. 중문CC 운영과 관계자는 CNB에 “오래전에 도입한 예약시스템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라 서버 용량 등 기술적 한계가 있을 수 있다”며 “여론을 수렴해 개선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CNB는 여행사들의 ‘싹쓸이’ 가능성을 검증하기 위해 관광공사 측에 ▲매월 오전 9시 정각에 예약완료된 티켓(이용권)의 개수 ▲당시 동시접속자수 현황 ▲서버 용량 등에 관해 수차례 문의했다.
하지만 공사 측은 “영업상 기밀이라 공개할 수 없다”고 일축했다. 관광공사 관계자는 “예약 물량과 접속자수 등이 언론에 공개되면 오히려 특정집단이 이를 악용할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예컨대 특정세력이 이런 정보를 해킹 등에 활용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전문가들 “요즘 시대에…이해하기 힘들어”
IT전문가들은 공사 측의 해명이 납득하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한 예약시스템 구축업체 관계자는 CNB에 “예약이 완료된 날짜에 마우스를 갖다대면 예약자의 전화번호 일부가 나타나거나 ‘홍**’ ‘*도*’ 라는 식으로 예약자의 이름이 한두 글자는 공개되는 것이 일반적이며, 수만명이 동시접속해도 홈페이지 기능이 마비되는 경우는 드물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예약물량의 규모 등을 공개하고, 특정 부킹타임이 언제 예약완료 됐는지가 화면에 나타나게 하는 등 최소한의 조치가 필요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아예 운용시스템 자체를 공공에 맡겨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가령 서울시의 경우, ‘서울시공공서비스예약’을 통해 모든 공공시설물 예약을 통합관리하고 있다. 체육육시설 뿐 아니라 전시관람·문화행사 등의 예약이 이 홈페이지에서 이뤄진다.
한 지자체 공무원은 CNB에 “요즘 같은 시대에 공공체육시설의 예약정보를 일체 알 수 없는 깜깜이 예약이 있다니 의아하다”며 “여러 의혹을 불식하기 위해서라도 정부나 지자체에서 직접 예약서비스를 운영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조언했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