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 신에너지정책…한산 인수 추진
한산 최대주주 자총, 일방적 인수 반대
정규직·비정규직 문제 섞여 매각 ‘난항’
“다시 공기업이 되라고요?” 민영화됐던 한전산업개발이 한국전력공사의 계열사로 다시 돌아가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현재 한전산업개발의 최대주주는 자유총연맹인데, 한전에서 이 지분을 인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왜일까. (CNB=손정호 기자)
최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인 이성만 의원(더불어민주당)은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 민 한전산업개발(이하 한산)의 최대주주인 자유총연맹(이하 자총)과 비공개 회의를 가졌다.
올해 초 한전은 계열사인 5개의 발전소(남동·남부·동서·서부·중부발전)와 함께 자총의 한산 지분(31%, 3월말 기준)을 매입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하지만 한전과 자총의 의견 차이로 인해 추진이 더뎌지자, 국회 해당 상임위에서 중재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한전은 한산의 지분 29%를 가진 2대주주다. 한전 외에는 소액주주(40%), 우리사주조합 (0.45%) 등이 지분을 갖고 있다. 한전이 자총의 지분을 매입하면 최대주주로 올라서게 된다. 이 경우 2003년 민영화됐던 한산은 18년만에 다시 공기업이 된다.
이성만 의원실 관계자는 CNB에 “최근 한산의 재공영화와 관련된 사람들이 모여서 논의를 진행했다”며 “한전과 자총의 입장 차이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어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김용균 희생이 촉매 역할
한산의 재공영화가 이슈가 된 이유는 안전성 때문이다.
한산은 발전설비의 유지와 보수 등을 담당하는 기업이다. 2018년 12월 충청남도의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노동자 김용균 씨(당시 24세)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후 발전 5사는 통합 노·사·전문가협의체를 구성했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데 의지를 모았다. 발전 5사의 비정규직을 한산으로 몰아주고, 한산을 재공영화해 이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다.
정부의 장기적인 에너지 전환 정책도 이유로 볼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오는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하는 목표를 세웠다. 탄소 중립은 온실가스 배출량과 제거량이 같아져 순배출량이 ‘0’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화력 발전을 신재생 에너지로 대체하는 계획도 세웠다.
한산이 한전의 자회사로 다시 편입되면, 에너지 공기업의 수직 계열화가 이뤄진다. 실제 한산은 화력발전소 유지·보수 외에, 하암태양광발전소도 운영하고 있다. 이 경우 화석연료 고갈에 따른 장기적인 에너지 전환 정책 로드맵에 따라, 변화를 이뤄가기에 수월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한산 측은 매각의 ‘주체’가 아니라 ‘객체’이기 때문에 특별한 입장이 없다고 설명했다. 자총 측은 답변을 피하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고 있다.
보수단체 대표격 자총, 文정부 요구에 곤혹?
정작 매각의 당사자인 한산의 최대주주 자총이 머뭇거리는 이유는 뭘까.
먼저 실무 협상 과정에서의 이견이 걸림돌이다. 자총은 한전이 매입의향서에 매입가를 적어서 제시하고, 이 안이 이사회를 통과해야 다음 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한전은 공기업이라서 실사를 하기 전에는 예상 매입가를 적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산이 ‘알짜’ 기업이라는 점도 이유로 볼 수 있다. 한산은 지난해 매출 3293억원, 영업이익 190억원을 기록했다. 실적이 좋기 때문에 몸값을 올려받기 위해 일단 입을 다물고 있을 수도 있다.
에너지 전환 정책이 이르다는 지적도 이유로 꼽힌다. 문재인 정부는 탄소 중립과 신재생 에너지로의 전환, 탈원전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신재생 에너지 기술의 발전 속도가 빠르지 않아서, 현재의 목표를 시기 안에 달성하기 힘들다는 지적도 있다.
이밖에 보수성향 단체인 자총이 문재인 정부와 정치적 코드가 맞지않다는 점도 이유로 꼽힌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한전과 자총의 입장 차이가 커서, 이견을 좁히는 데에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논의가 부진해지자 한산의 비정규직 인원만 분리한 계열사를 설립하고, 이 계열사만 한전이 인수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한산은 비정규직의 비중이 높은 편이라서 ‘플랜B’가 이뤄질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남은 대주주의 이익이 크게 줄어들기 때문이다.
한전도 무리하게 서두르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전이 자총의 지분 31% 대신에 소액주주 지분 40%를 매입할 수도 있지만, 정부는 이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자칫 적대적 인수합병(M&A)으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유진투자증권 황성현 연구원은 CNB에 “한산의 재공영화는 문재인 정부 들어서 추진된 에너지 분야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정책의 일환”이라며 “에너지는 기간산업이라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데 중요하고 신재생 에너지로 전환하는데는 약120조원의 자금이 필요하기 때문에 섣부르게 진행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CNB=손정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