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현대부엌은 1930년대 개량부엌이 등장한 게 시초인 것으로 알려진다. 개량부엌은 입식 조리대와 개수대, 부뚜막이 함께 공존하는 형태로 땔감을 통해 취사와 난방을 동시에 하면서 발생하는 위험한 환경과 안방에서 식사와 침실의 기능을 다른 가족과 공유하는 문제를 해결했다. 뒤이어 50년대 후반부터 가스레인지, 상수도가 도입되며 개수대와 조리대가 등장했다.
70년대부터는 아파트가 보급되면서 처음으로 입식 부엌이 등장했다. 부엌이 공적인 공간에 포함됐고 조리와 난방이 분리됐으며, 주방이라는 단어가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80년대에는 경제 여건이 개선되고 정부 정책으로 아파트가 대량 공급되면서 ‘시스템 키친’이 생겨났다. 시스템 키친은 준비대, 개수대, 조리대, 가열대, 배선대를 일체화해 가사노동에 소요되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게끔 했다.
90년대에는 시스템 키친이 아파트의 대량 보급에 따른 개성 없는 부엌 양산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주부의 개성, 가족 특성 등이 반영된 ‘인텔리전트 키친’이 출현했다. 인텔리전트 키친은 부엌의 기능을 과학적 설계로 자동화해 가사 시간을 더욱 줄여줬다.
2000년대에는 부엌 제품이 하나의 인테리어 패션 아이템이라는 인식이 확산돼 집안을 아름답게 꾸미기 위한 인테리어 소비 개념의 ‘밀레니엄 키친’이, 2010년대에는 부엌이 단순히 식사를 하는 공간을 넘어 개개인의 라이프스타일을 대변하는 삶의 공간인 ‘프리미엄 키친’으로 변모했다.
오늘날에는 부엌 특성이 개개인의 라이프 스타일에 더욱 세밀하게 맞춰져 하나의 살롱으로 소개되고 있다. 지난달 30일 찾은 한샘리하우스에는 넉넉한 수납공간을 제공하는 빌트인 수납장, 식사 외 학습·근무 등 다양한 활동을 병행할 수 있도록 돕는 스타일의 좁은 조리대와 넓은 식사공간 스타일의 ‘유로’ 신제품들이 비치됐다.
한샘리하우스 관계자는 “부엌에는 물, 불, 바람 등 모든 것이 혼재하기에 집 인테리어에 있어 가장 손길이 많이 가는 공간”이라며 “매장을 찾는 중년부부와 30대 초중반의 신혼부부를 대상으로 ‘유로’ 제품들을 전시 중”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부엌은 시대를 흘러오며 식사와 조리를 위한 공간에서 가족들이 함께 조리함은 물론 대화도 하는 ‘거실형’, 영유아 교육용 ‘놀이터형’, PC, 서적 비치 등을 통해 자기계발을 하는 ‘서재형’, 각종 주류를 전시하고 바깥손님들과 대화하는 식의 ‘카페형’ 등으로 나날이 진화해가고 있다.
또 여성들에게는 가사노동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사회활동에 보다 적극적으로 임할 수 있는 기회를, 남성들에게는 ‘금남의 구역’이라는 기존 정서를 타파하고 관심 있는 요리를 직접 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주부의 전용 작업장에서 모두의 안식처로 변화해가고 있는 셈이다.
요즘 추세는 1인 가구 증가다. 1인 가구는 큰 비용 지출에 대한 부담이 상당한 젊은 세대에 국한되는 게 아니라 경제력이 뒷받침되는 3~40대 등 다양한 연령대에 걸쳐 형성되고 있다. 2000년대에 접어들어 1인 가구가 꾸준히 늘고 있으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 장기화로 시중에는 이들을 겨냥한 각종 재화, 서비스, 이벤트 등을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다.
부엌이라고 예외일 리 없다. 더불어 부엌은 가정 내 소통 장소로의 역할과 동시에 개인의 개성을 반영한 생활공간으로서의 면모도 부각되고 있다. 이에 맞춰 1인 가구 등을 위한 부엌 전시가 보다 활성화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