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톤이 임명한 대표이사 수백억 횡령 의혹
라임 부사장과 공모해 CB자금 빼돌리다 덜미
사모펀드 허술한 경영관리, 개미주주 큰 피해
수많은 금융피해자를 양산한 라임 펀드 사태에 사모펀드 키스톤PE(프라이빗에쿼티)가 관여된 사실이 CNB 취재결과 확인됐다. 키스톤은 코스닥 상장사 2곳을 인수해 이모 씨를 대표이사로 세웠고, 이씨는 라임자산운용으로부터 약 1천억원을 투자유치해 이중 수백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됐다. 페이퍼컴퍼니와 인수합병(M&A), 투자와 횡령 등 얽히고설킨 사모펀드 복마전을 CNB가 단독 추적했다. (CNB=도기천 기자)
키스톤PE(이하 키스톤) 전직 임원이었던 A씨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등에 따르면, 키스톤은 반도체 제조업체 네패스신소재(현 에스모머티리얼)를 2018년 4월, 화장품 제조기업인 에스엔피월드(현 블러썸엠앤씨)를 같은해 12월 각각 인수했다.
당시 키스톤은 네패스신소재 인수를 위해 키스톤하이테크제1호라는 특수목적법인(SPC)을 세웠다. 이 법인을 통해 네패스신소재 주식 90만주(31.47%)를 229억원에 인수, 최대주주가 된 뒤 이씨를 대표이사에 선임했다.
공인회계사로 알려진 이씨는 대표이사 취임 직후인 2018년 5월 ‘제이앤씨아이’라는 자본금 5천만원짜리 페이퍼컴퍼니(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기업)를 상대로 300억원 규모의 전환사채(CB·일정 조건에 따라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채권)를 발행한다.
CB는 발행 당일 라임자산운용이 전액 매수했다. 같은해 9월과 10월에도 550억원 규모의 CB를 잇달아 발행했는데, 이 역시 일부는 라임이 가져갔다.
이씨는 이렇게 들어온 자금 중 454억원 가량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똑같은 수법 반복…키스톤은 몰랐나
키스톤은 에스엔피월드도 유사한 방식으로 인수했다. 키스톤엔젤스제1호라는 SPC를 세워 에스엔피월드 지분 51%(약400만주)를 341억원에 사들여 경영권을 장악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키스톤이 이 회사도 이씨에게 맡겼다는 점이다. 이씨는 키스톤의 주식인수가 완료된 2018년 12월 20일 대표이사에 선임됐다.
이씨는 네패스신소재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수상한 금융거래를 벌인다. 취임 직후인 작년 1월 자본금 1000만원의 소호기업인 피앤엠씨를 상대로 500억원 규모 CB를 발행했는데 이 중 320억원어치를 라임자산운용이 사들였다.
금감원 공시 등에 따르면 이씨가 CB발행 등을 통해 회사로 들어온 자금 중 횡령 의심을 받는 규모는 389억원에 달한다.
라임 펀드 사기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은 지난 5월 이씨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혐의로 구속했고, 이에 따라 코스닥 상장사인 에스엔피월드와 네패스신소재는 지난 5월 29일부터 거래중지됐다. 검찰은 이씨가 라임으로부터 투자받아 횡령한 돈의 일부를 리베이트 명목으로 전 라임 부사장 이모(수감 중) 씨 등에게 건넨 것으로 보고 있다.
키스톤 해명 앞뒤 맞지 않아
이런 앞뒤 상황으로 볼 때, 논란의 핵심은 키스톤이 이씨의 횡령 사실 또는 이에 준하는 중대 결함을 알고도 이씨를 밀어줬을 가능성이다.
법인등기부등본을 보면, 이씨가 네패스신소재 대표로 재직한 기간은 2018년 4월 18일부터 12월 4일까지며, 이 기간에 횡령 의혹이 발생했다.
그런데 키스톤은 이씨가 네패스신소재를 퇴직한 날로부터 불과 16일만에 이씨를 에스엔피월드 대표에 임명했다. 이씨는 2018년 12월 20일부터 이듬해 6월 1일까지 이 회사 대표이사를 맡았다.
키스톤이 이씨의 네패스신소재 횡령추정액이 454억원에 이르는 상황에서 다시 에스엔피월드 대표에 선임한 것은 선뜻 이해하기 힘들다.
이에 대해 키스톤은 지난 9월 29일 KMH와 관련한 공시를 통해 “네패스신소재의 2020년 5월 거래정지 및 9월 상장폐지 등은 키스톤PE의 완전한 투자회수 이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 뒤 새로운 대주주 및 경영진 때문에 발생한 사안”이라고 밝혔다. 이후 10월 5일 정정공시를 통해 “네패스신소재의 2020년 5월 거래정지 및 9월 상장폐지 등은 키스톤PE의 완전한 투자회수 이후 상당한 시간이 경과된 뒤 발생한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씨의 횡령 혐의는 그가 대표이사로 재직하던 2018년 4월 18일부터 12월 4일 사이에 발생했고, 이 시기는 키스톤이 네패스신소재의 최대주주로서 회사를 경영지배하고 있을 때다. 키스톤이 네패스신소재 보유지분을 전량 매각한 때는 2019년 3월경이다.
사모펀드의 기업인수, 심사 강화해야
물론 키스톤이 이씨의 횡령 의혹을 눈치채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 키스톤의 허술한 경영관리가 지적될 수 있다. 키스톤이 두 회사를 인수하는데 사용한 펀드가 ‘경영참여형 사모펀드’였다는 점에서다. 사모펀드(PEF)는 일명 헤지펀드로 불리는 ‘전문투자형 사모펀드’와 회사의 인사 및 경영에 직접 참여하는 ‘경영참여형 사모펀드’로 분류된다.
실제 키스톤이 두 회사를 직접 경영했다는 정황은 곳곳에서 확인된다.
금감원 전자공시를 보면 키스톤이 이씨를 네패스신소재 대표이사에 임명한 것 외에도, 키스톤의 현직 임직원이던 남모 씨와 장모 씨를 이사진에 앉혔다.
에스엔피월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씨를 네패스신소재 대표에서 에스엔피월드 대표로 이동시키고, 네패스신소재 사업총괄을 맡고 있던 송모 씨를 에스엔피월드 사장에 임명했다. 네패스신소재 이사였던 키스톤 직원 장모 씨를 다시 에스엔피월드의 이사로 선임하기도 했다.
이런 점으로 볼 때, 설령 키스톤이 이씨의 횡령 혐의를 몰랐다 하더라도 당시 두 회사를 사실상 경영관리하고 있었던 만큼 책임을 면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키스톤은 여전히 이 부분에 대해 제대로 된 해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키스톤 관계자는 CNB에 “이 대표가 유명 회계법인을 운영하는 등 경험이 풍부한 공인회계사라는 점에서 네패스신소재와 에스엔피월드의 대표를 연달아 맡긴 것은 사실이다. 이후 라임 쪽에서 CB를 집중 매입하는 것이 수상해서 네패스신소재의 지분을 전량 매각하고 손을 털었다. 하지만 이 대표와 라임자산운용 간의 관계에 대해서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고 밝혔다.
결국 이씨의 800억원대 횡령 의혹의 배경에는 사모펀드의 주먹구구식 기업인수와 경영, 금융당국의 부실한 관리감독 등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런 틈을 비집고 라임의 대규모 사기성 투자 행각이 펼쳐진 것이다.
라임자산운용은 지난해 10월 약 1조7000원 규모의 펀드의 상환·환매를 연기해 수많은 펀드 투자자가 피해를 입었다. 또한 이씨와 라임 간의 부정한 거래로 인해 키스톤이 인수한 에스엔피월드와 네패스신소재가 거래중지 되면서 애꿎은 소액주주들이 큰 피해를 봤다. 키스톤처럼 직·간접적으로 라임에 연루된 금융사는 신한금융투자, KB증권, 한국투자증권, 우리은행, 하나은행 등 수십 곳에 달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금융전문가는 CNB에 “키스톤 사례에서 보듯, 처음부터 나쁜 의도를 가진 세력들이 사모펀드의 LP(유한책임사원)로 참여해 직간접적으로 회사를 경영해 인수기업을 망가뜨리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자본시장법을 개정해 사모펀드가 기업을 인수할 경우, 금융당국이 사모펀드에 투자한 LP에 대한 심사를 강화하고 필요하다면 자료를 공개할 필요가 있다. 이는 인수된 기업의 노동자와 소액주주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책”이라고 강조했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