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디자인과 독특한 콘셉트를 가진 실물 카드들. 지하철이나 편의점, 마트 등 일상생활 속에서 이를 사용한다. 그런데 대부분 카드는 영어 이름을 갖고 있다. 우리말은 찾기 힘들다. 왜 그럴까. (CNB=손정호 기자)
신용·체크카드 명칭에 영문표기 봇물
글로벌화(化) 빨라지며 외래어가 대세
청년세대 모국어 소중함 잊을까 우려
#. 직장인 서영교(여·가명)씨는 코로나19로 집에서 영화를 보거나 인터넷으로 물건을 사는 일이 잦아졌다. 이에 서씨는 비대면(Uncontact) 소비에 적합한 새 신용카드가 필요했다. 여러 카드사 홈페이지를 둘러보던 서씨는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대부분 카드 이름이 생소한 외래어였기 때문이다.
CNB가 국내 전업카드사들의 홈페이지를 살펴본 결과, 각사별로 홍보하고 있는 신용·체크 카드의 명칭이 대부분 외국어였다.
먼저, 롯데카드는 라이킷(LIKIT), 로카(LOCA), 아임(I’m)이라는 브랜드를 갖고 있다. 프리미엄 라인도 다이아몬드(DIAMOND), 인피니트(INFINITE), 엘클래스(L.CLASS), 플래티넘(PLATINUM) 등이 있다.
삼성카드는 프리미엄으로 더(THE), 라움(RAUME) 시리즈와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골드(American Express Gold) 등이 있다. 탭탭(Tap Tap) 시리즈도 메인화면에 보인다.
신한카드는 더 베스트(The BEST), 더 프리미어 골드(The PREMIER GOLD), 더 클래식(The CLASSIC)이라는 프리미엄 카드를 갖고 있다. 욜로(YOLO), 예이(YaY), 헤이 영(Hey Young) 등도 보유하고 있다.
현대카드도 비슷하다. 프리미엄 라인은 더 그린(the Green), 더 레드(the Red), 더 블랙(the Black), 더 퍼플(the Purple)이라는 명칭이다. 최근에는 온라인 이용 혜택에 집중한 ‘디지털 러버(DIGITAL LOVER)’도 선보였다.
KB국민카드는 베브(BeV), 탄툼(TANTUM)이라는 프리미엄을 운영하고 있다. 이지(Easy) 시리즈도 있다.
한 카드업계 관계자는 CNB에 “카드 호칭은 상품에 담는 혜택을 쉽게 떠올릴 수 있도록 만든다”며 “소비자에게 카드 특징을 각인시키는데 외래어가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전부 카드 호칭에 전부 외래어만 사용되는 건 아니다. 우리말 이름도 있지만 비중이 높지 않다.
우리카드는 ‘카드의 정석’ 시리즈가 있다. 영어(카드)와 한글(정석)의 혼합 형태다. 또 ‘다둥이 행복’ ‘우리 사장님’ ‘우리 성당’ 등 한글로만 된 카드도 있다.
우리카드 관계자는 CNB에 “한글 이름에 대해 꾸준히 관심을 갖고 개발해왔다”며 “‘카드의 정석’은 최근에 700만장을 넘어서서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KB국민카드는 프리미엄 라인에 ‘가온’ 시리즈를 갖고 있다. 청춘대로 시리즈도 있다. 전업 카드사 중에서는 한글 이름이 많은 편이다.
KB국민카드 관계자는 CNB에 “가온은 세상의 중심이라는 순우리말이고, 청춘대로는 청춘세대가 원하는 대로 일이 잘 풀리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것”이라며 “영어 이름도 많지만, 상품의 콘셉트에 맞춰서 우리말을 사용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카드사들, ‘디지털 네이티브’ 취향에 맞춰
이처럼 카드에 영문 표기가 대세를 이루는 이유는 뭘까.
우선 영어 등 외국어 사용이 일상화됐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공용어는 세종대왕이 1446년에 공표한 한국어지만 미국과 유럽연합을 중심으로 영어가 글로벌 언어로 자리잡았다.
과거에 비해 해외여행이 크게 늘어난 점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국내·해외 겸용 카드가 늘면서 카드 명칭도 외래어가 대세를 이루게 된 것이다.
‘디지털 네이티브’가 소비주체로 부상한 점도 이유다. 디지털 네이티브는 1980년에서 2000년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컴퓨터와 스마트폰, 태블릿PC 등을 사용하는 데 익숙하다. 통계청에 의하면, 이 세대는 총 645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12.5%를 차지한다.
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영어 등 외국어 공부를 해온 세대인데다, 온라인 환경 자체가 영어 기반이라서 외래어가 낯설지 않다.
하지만 부작용도 우려된다. 카드가 온통 외래어라면 청년세대가 모국어의 소중함을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CNB에 “이름을 한국어로 할지, 영어로 할지 크게 고민하지는 않는다. 당시 이슈에 따라 결정하기도 한다”며 “영어 사용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지만, 고운 우리말을 보다 가까이해도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CNB=손정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