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터면 그냥 보낼 뻔했다. 창밖에 머물다 어렴풋이 흘러가던 봄이 전시장에서 소생했다. 최근 봄의 면면을 담은 전시가 잇따르며, 올해 한번뿐인 이 계절에 미련 남은 이들에게 희소식을 전하고 있다. 대체로 벙근 꽃처럼 춘삼월의 상징물들이 작품 속에 흐드러져 관람과 동시에 상춘하는 맛도 느낄 수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에서 번진 ‘계절적 거리두기’의 아쉬움을 달랠만한 네 가지 전시회를 소개한다. (CNB=선명규 기자)
봄 주제로 전시 연 롯데갤러리
GS건설 로비엔 자연의 향연이
영화와 만나는 KT&G상상마당
#1 계절의 여왕처럼 화려하게
봄은 두 번 찾아온다. 소리로 먼저, 그리고 시각적으로.
서울 동대문구 롯데갤러리 청량리역점 들머리에 다가서면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부터 들린다. 겨우내 잠들어 있던 들녘을 깨우는 음성처럼 데시벨이 낮다. 그 기상의 신호에 이끌려 내처 전시장으로 들어가면 식물로 빚어진 황홀경이 펼쳐진다.
양귀비, 순무 등이 공중에 빼곡히 매달려 보는 눈을 산란하게 만든다. 양지윤 작가가 한지와 종이로 만든 모빌들이다. 전통 채색화의 번짐기법(담채)으로 색을 내어 은은하다. 한 공간에 모빌이 빽빽하게 걸려있지만, 산만하지 않은 이유가 이런 자연스러운 색감 때문이다.
그 사이를 약간만 속도 높여 걸으면 일렁이는 바람 탓에 작품들이 생명력을 얻은 듯, 산뜻하게 출렁인다. 전시장을 배회하는 것만으로도 산책하는 기분이 들어 어느새 콧노래를 흥얼거리게 된다. 봄을 주제로 열리는 이번 전시의 제목이 ‘랄랄라’(lalala)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오는 26일까지.
#2 다시 찾아온 사랑스런 봄
“엄마 찍어줄래?”
지난 13일, ‘마법의 숲’ 전이 진행 중인 롯데갤러리 인천터미널점에 마련된 포토존 ‘꽃밭’에서 이경숙 씨(49)가 대학생 딸에게 말했다. 그녀가 앉은 뒤로는 만개한 꽃 다섯 송이가 커다랗게 자리하고 있었다. 이 씨는 “올해 벚꽃축제들이 전부 취소되는 바람에 꽃구경을 못해 아쉬웠는데, 이렇게나마 만나니 대리만족이 된다. 상춘객이 된 기분”이라고 했다.
이번 전시에는 프랑스 작가 나탈리 레테의 원작, 판화, 도자기, 설치 등 100여점이 나왔다. 방대한 작품들을 잇는 연결고리는 동심. 새, 강아지, 곤충, 밤비가 주인공이거나 호기심을 자극하는 서커스의 장면 장면을 옮긴 그림이 많다. 전체적으로 색감이 자극적이지 않고 따스해 동화책 한 페이지에 욱여넣어도 이질감이 없다.
전시장은 이상한 나라의 숲속처럼 꾸며졌다. 관람객이 걸을 수 있는 아기자기한 모형 숲길이 조성돼 있고, 구획된 전시 공간 벽면에는 큰 창이 나있어 다음에 마주할 작품들을 비밀스럽게 관망할 수 있다.
이 전시를 요약하는 것은 명쾌한 한 문장. 온통 꽃으로 도배된 벽을 지나야 들어갈 수 있는 공간으로 시선을 옮기면 이런 문구가 눈에 확 들어온다. ‘it is spring again / spring is so lovely'. 그럼에도 다시 찾아와 만난 봄은 사랑스럽기만 하다. 19일까지.
#3 빌딩 로비에 들어온 꽃밭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GS건설 로비 한쪽엔 채광 좋은 창이 있다. 오후가 되면 이 창을 통해 강렬한 햇살이 건물 내부로 스며든다. 그 빛이 고이는 곳에 있는 GS건설 갤러리 ‘시선’에선 지금, 자연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
공모기획전으로 나온 박혜원, 정현성 작가의 그림 20여점이 눈부신 자연광을 받은 채 오는 24일까지 관람객을 맞는다. 박 작가는 시각화한 유토피아의 풍경을, 정현성 작가는 ‘내 인생은 꽃밭’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푸르른 표정의 그림들이 봄날 식물 생육하듯 꿈틀댄다. 대개 들판에 동물과 식물이 어우러진 서정적인 작화들이 많아 어린 아이들이 보기에도 좋은 전시이다.
누구나 부담없이 관람 가능한 작품을 중심으로 선보이는 건, 이 갤러리가 추구하는 점이기도 하다. GS건설 관계자는 CNB에 “전시공간이 회사 내에 있고, 건물에 유아원도 있기 때문에 이미지가 잔혹하거나 선정적인 작품은 공모 시 출품이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공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4 극장 대신 전시장
올봄, 코로나19 여파로 개봉 연기 등 극장가가 얼어붙은 가운데 영화팬들의 아쉬움을 덜어주는 전시회도 있다. 서울 마포구 KT&G(케이티앤지) 상상마당에서 진행 중인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의 오리지널 전시 ‘영원이 된 기억’이다.
초상화를 주요 소재로 지난 1월 개봉해 숱한 마니아들을 낳은 영화 속 ‘얼굴’들을 만날 수 있다. 프랑스 화가 엘렌 델마르가 그린 원화 7점, 디지털로 인쇄한 그림 2점에 두 주인공 엘로이즈와 마리안느가 입은 드레스가 내걸렸다. 영화서 본 장면들과 대조해서 보면, 보다 생생함을 느낄 수 있는 전시. 관람료는 무료이며 오는 26일까지 열린다.
(CNB=선명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