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지 않는다.”
거대한 병마(病魔)에 맞선 산업계의 분투가 벼랑 끝에 몰린 한국경제에 작은 빛줄기가 되고 있다. 코로나19의 여파로 통상과 내수 모두 꽁꽁 얼어붙었지만, 언 땅을 깨고 솟아나는 들풀처럼 나눔의 물결이 고통 받는 서민들을 위로하고 있다. 이에 CNB는 국가적 재난 가운데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우리 기업들의 모습을 기획연재하고 있다. 네번째 편은 바이러스로 균열이 간 사회를 기부와 후원으로 잇대는 재계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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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위기돌파③] 생업전선 바뀐다…‘사회적 거리두기’ 나선 기업들
연대로 종식 소망 품은 ‘페스트’처럼
‘함께’라는 인식에서 기부·후원 이어져
코로나 최전선 ‘TK 지역’에 특히 집중
의료진, 결식우려 아동 등 폭넓게 지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다시금 회자 중인 카뮈의 소설 ‘페스트’에는 역병에 맞서 싸우기 위해 시민들이 ‘보건대’를 조직하는 장면이 나온다. 일종의 의료봉사대인 이들은 환자를 나르거나 의사들의 왕진을 돕는 역할을 하며 ‘종식’이란 희망에 성큼 다가선다. 직업도 나이도 다른 사람들이 팔 걷고 나서 방울땀을 흘린 이유는 하나였다. 전대미문의 위기상황을 다 같이 극복하고자 하는 연대 의식이다.
‘함께’라는 인식이 필요한 지금, 인간애를 기저로 한 나눔 물결이 재계를 중심으로 요동치고 있다. 직원들이 쓰던 시설물을 치료시설로 내놓거나 생필품, 마스크, 방호복 등을 의료진과 지역사회에 전하는 것으로 성원하고 있다.
용도 바뀐 연수원, 치료시설로 탈바꿈
삼성은 코로나19 경증환자들이 격리된 상태에서 치료받을 수 있도록 삼성인력개발원 영덕연수원을 이달 초부터 제공하고 있다. 직원들의 명상교육 및 힐링센터로 활용되던 곳이다. 숙소 300실에 220명이 동시에 이용 가능한 식당을 갖췄다.
장소 제공에 그치지 않았다. 삼성서울병원, 강북삼성병원, 삼성창원병원의 의사와 간호사로 꾸려진 의료진도 이곳에 파견했다. ‘재난 현장에서 의술로 봉사하겠다’며 나선 자원자들이다. 이들은 사태가 마무리될 때까지 2주 단위로 돌아가며 순환 근무할 예정이다.
LG는 확진자가 집중된 대구·경북 지역의 병상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 구미 LG디스플레이 기숙사와 울진 LG생활연수원의 문을 열었다. 각각 383실, 167실 규모. 구미 기숙사의 경우, 원룸 형태 267실과 방 두개가 있는 아파트 형태 116실을 갖추고 있어 최대 499명을 수용할 수 있다. 해당 시설들은 경증환자들이 격리된 상태에서 의료진의 관리를 받을 수 있는 치료센터로 사용된다.
현대자동차그룹도 경북지역에 위치한 연수원 두 곳을 이 지역에서 자가격리 중인 경증환자들이 치료받는 공간으로 제공했다. 경주인재개발연수원(193실)과 글로벌상생협력센터(187실)다. 여기에는 숙박시설에 더해 강의실과 식당 같은 편의시설도 들어서 있다.
한화그룹은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한화생명 라이프파크 연수원을 개방했다. 한화생명의 디지털 전문금융인력 양성을 목적으로 운영되던 이곳에는 침대, 화장실, 샤워시설 등을 구비한 객실 200개가 있다. 한화 측은 “서울, 경기 등 수도권 경증환자의 격리 치료를 위한 생활치료센터 수요가 있을 것으로 보고 선제적으로 제공키로 했다”고 설명했다.
“함께 극복하자” 기부 물결 넘쳐
물품 후원도 요원의 불길처럼 번지고 있다. 대상을 특정해 필요한 품목을 전달하는 점이 두드러진다.
SK그룹은 도시락을 배달 중이다. 배송지는 대구·경북 지역, 수신인은 결식 우려가 있는 어린이들이다. 지방자치단체로부터 1500명을 추천 받았다. 학기 중이라면 학교에서 점심급식을 이용했겠으나, 개학 연기로 끼니를 거를 가능성이 있는 아이들이다. 대구지역 사회적기업인 동행과 (주)서구웰푸드, 강북희망협동조합이 제조와 배달을 함께 하며, SK 구성원들도 자원봉사자로 참여하고 있다.
SK그룹 측은 “도시락 제공시한은 코로나19 확산 추이 및 휴교 연장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삼성은 코로나 예방의 필수품인 마스크 28만4000개를 전국재해구호협회를 통해 대구지역에 기부했다. 삼성전자, 삼성물산, 삼성디스플레이, 삼성생명, 삼성화재, 삼성카드, 삼성증권 등 계열사의 해외 지사와 법인을 활용해 캐나다, 콜롬비아, 중국, 홍콩 등에서 확보한 것이다. 이와 별도로 삼성전자는 중국의 한 반도체 고객사가 직원들을 위해 사용해 달라며 보낸 마스크 5만개를 대구광역시의사회에 다시 기증하기도 했다.
병마와 싸우는 이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물품뿐 아니다. 코로나가 야기한 또 다른 문제는 혈액 수급이다. 최근 들어 헌혈 빈도가 현저히 줄어들자, 현대자동차 노사는 소매를 걷어 올리며 막힌 혈을 뚫고 있다. 지난 9일부터 사내 주요 거점 별로 차량을 배치해 헌혈을 실시하고 있는데, 사전 신청자만 800명을 넘어서며 성황을 이루고 있다.
이번 사태의 최전선인 대구·경북지역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의료진을 응원하는 도움 행렬도 이어지고 있다.
LG는 각 계열사의 역량을 모았다. 먼저 LG상사, LG전자, LG디스플레이 등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수급한 의료용 방호복 1만벌과 방호용 고글 2000개, 의료용 마스크 10만장을 전했다. LG생활건강은 소용량 생수와 휴대용 세면도구, 소독제품을 이달 내내 매주 공급할 계획이다. LG전자는 잦은 세탁이 필요한 의료가운이나 수술복을 빨리 건조시켜 착용할 수 있는 건조기와 건강관리 가전제품을, LG유플러스는 임대폰 100대와 통신요금을 지원했다.
포스코는 ‘조금 특별한 응원 키트’ 2000개를 제작했다. 종합비타민 등 건강식품과 마스크, 손세정제, 세면도구, 면도기, 여성용품 등을 친환경 소재로 만든 가죽 백팩에 담아 전달하는 것으로 힘을 보탰다.
포스코그룹 관계자는 CNB에 “의료진들이 포스코의 응원키트를 받고 더욱 힘을 내어 하루 빨리 코로나 위기를 극복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함께 ‘희망의 군불’ 지펴
재계의 ‘코로나 지원 시계’는 상황이 심화되던 지난달 말부터 본격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국내 확진자 수가 1000명을 넘어서던 시점이다.
그때 삼성은 의료용품과 생필품 등을 포함한 총 300억원, LG는 성금 50억원과 현물 10억원 상당을, 현대자동차그룹은 50억원, SK그룹은 54억원, 포스코그룹은 50억원을 발 빠르게 조성해 내놓았다. 공통적으로 위난(危難)을 함께 극복하자는 취지였다.
사회 각계의 노력에도 코로나19의 여파가 여전한 가운데, 기업들은 전염병이 완전히 사그라질 때까지 지원의 고삐를 늦추지 않을 전망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CNB에 “국가적 재난 상황인 만큼 물품 후원, 기부 등 여러 지원책을 계속해서 강구할 계획”이라며 “고난이 끝날 때까지 기업의 사회적 책무를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CNB=선명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