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란 말이 무색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떨어트리고 있다. 행여 비말이라도 튈까 서로에게 면이 안 선다. 정부와 전문가가 권고하는 ‘사회적 거리두기’는 이제 필수 지침이 됐다. 집밖이 두려워 ‘집콕’하는 이들이 느는 것은 당연지사.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온전히 고립되어 살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잘 찾아보면 비대면이 미덕인 ‘코로나 시대’를 영리하게 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래서 준비했다. 이른바 ‘슬기로운 거리두기 생활’. 로봇이 음식을 나르는 식당, 백화점의 매장 생중계 서비스를 이용하는 등 ‘최소 대면’으로 하루를 보내봤다. (CNB=선명규 기자)
백화점 생중계로 물건 구매
로봇 서빙하는 식당서 식사
조카들과 증강현실로 놀아줘
활동 제한적…활용법은 많아
‘18일 0시 현재, 총 누적 확진자수는 8413명’
습관적으로 질병관리본부 홈페이지에 접속해 숫자부터 살폈다. 전날보다 93명 늘었다. 이 사태는 언제 종식되나, 한숨이 나와 고개를 숙였더니 깊은 숨 내쉬는 존재가 또 있었다. 5년째 동고동락한 운동화가 끝내 실밥을 터트렸다. ‘발가락을 보여줄까?’하는 표정으로 수명이 다해가고 있었다. 당장 새 신을 구해야겠는데 매장을 찾자니 제약이 많다. ‘△△백화점 □□점 확진자 방문, 동선 파악 중, 임시 휴점 결정’
온라인으로 구매하면 간단하겠지만, 의심병이 클릭을 더디게 했다. 발볼은 넓은지, 실측 사이즈는 어떤지, 실제 촉감은 어떤지 따위. 대안을 찾던 끝에 코로나가 낳은 신통한 서비스를 발견했다. 상품을 시청하고 점원과 소통까지 하는 ‘백화점 LIVE’다.
매일 오후 12시와 3시. 롯데백화점이 운영하는 온라인 쇼핑몰 ‘롯데프리미엄몰’에 들어가면 매장을 생중계해준다. 진행자가 TV홈쇼핑처럼 백화점에서 현재 판매하고 있는 상품을 소개한다.
운동화를 판매하는 시간에 맞춰 채널을 켰다. 채팅창엔 질문이 쏟아졌다. “소재는 뭔가요?” “세탁은 어떻게 하나요?” 빠르게 올라오는 물음에 사회자는 속사포 같은 말로 답변을 이어갔다. 혹여 방송이 끝날세라 신기함은 내려놓고 얼른 궁금한 걸 물었다. “정사이즈로 선택하면 될까요?” 볼이 좁게 나온 편이라 한 치수 큰 걸 추천한다고 했다. 밑창을 자세히 보여 달라거나 아까 그 색상을 다시 꺼내 달라는 등의 여러 요구에도 응했다. 쉼 없이 말하고 눈앞에서 부단히 움직여도 껄끄러울 것은 없었다. 화면이 가로막고 있는, 소통형 방송일 뿐이니까.
롯데백화점 측은 이 서비스에 대해 “최근 코로나19 확산으로 오프라인 매장 방문은 꺼리지만 쇼핑에 대한 니즈가 있는 고객들에게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밝혔다.
‘로봇’과의 조우, 감염 우려 없지만…
이날 오후. 때 놓친 끼니를 챙기고자 대면이 적고 ‘특별한 종업원’이 근무하고 있다는 식당을 찾았다.
CJ푸드빌이 운영하는 서울 중구 제일제면소 서울역사점에선 주문도 테이블에 비치된 태블릿PC로 한다. 직원과의 만남을 원하면 호출을 터치하면 된다.
메뉴 중 우동을 선택하자 이윽고 면식(面識)이 있는 듯한 이가 음식을 품고 왔다. 스타워즈의 R2D2를 닮았는데, 차이가 있다면 날씬하다. 마스크도 쓰지 않고 면식(麵食)을 가져왔지만 꺼림칙하진 않았다. 침샘 없는 로봇이니까.
LG전자와 CJ푸드빌이 지난 1월 이 매장에 도입한 ‘LG 클로이 서브봇(LG CLOi ServeBot)’의 정위치는 주방 앞. 음식이 나오면 최대 4개의 칸에 실어 손님 앞으로 운반한다. 직원이 로봇 화면에 테이블 번호를 입력하면 목적지로 향한다. 배송을 마치면 원래 자리로 돌아온다.
실내 자율주행 및 장애물 회피 기술을 탑재하고 있어 요리조리 매끄럽게 이동한다. 움직임이 계산돼 있어 서빙이 능숙하다. CJ푸드빌 관계자는 “손님들이 서브봇을 재밌게 지켜보고 신기해하는 편”이라고 했다. 이날도 여러모로 깔끔한 자태에 사방에서 연신 카메라 셔터음이 들렸다.
같은 날 저녁. 퇴근 후 의외의 복병을 만났다. 코로나19로 개학이 연기된 초등학생 조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유투브를 보여주는 것으로 회피기동을 시도했지만 잠시뿐. 놀아달라며 매달리고 옷깃을 잡아채는 완력에 육아에 육자도 모르는 삼촌은 10분 새 10년은 늙었다.
생존의 묘수를 찾으려고 휴대전화를 뒤졌다. 아이들의 활동력은 유지하면서 유익함은 놓치지 않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이내 예전에 취재를 목적으로 깔아둔 앱이 눈에 들어왔다. 포켓몬고처럼 증강현실을 이용해 동물을 찾는 일종의 놀이, SK텔레콤이 내놓은 ‘점프 AR’이다.
탐험하는 재미에 조카들은 금세 빠져들었다. 단순한 조작도 흡인의 요소. 카메라를 비추고 여기저기 걷다 보면 레서판다, 웰시코기 같은 동물이 나타난다. 발견하는 성과를 거두면, 그 장면을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남겨 다른 이용자와 공유할 수도 있다. 경쟁이 붙어 서로 하나라도 더 찾으려고 난리치는 통에 집안에서 놀이터에 데려간 효과를 누렸다.
비단 우리 집만의 일은 아니다. 사진을 올리는 ‘AR 오픈갤러리’에는 출시 2주만(3월 12일 기준)에 사진 3000여장이 올라왔다고 한다. SK텔레콤 측은 이 서비스가 “코로나19 대문에 집밖에 나가지 못하는 어린이들의 가상 놀이터로 인기를 끌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대미문의 사태가 사회적 이격(離隔)을 일으킨 지 두 달 남짓. ‘최소 대면’으로 하루를 보내고, 마지막 위기인 녹초가 된 아이들을 재우고 나서 되짚어보니 영화 ‘인터스텔라’의 대사가 떠올랐다.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
(CNB=선명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