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맹점 수수료의 지속적인 인하로 카드사들이 위기를 겪고 있다. 한때 2%를 웃돌던 수수료는 최근 수년간 계속 내려가 현재는 평균 1% 중반대에 머물고 있다. 여기에다 삼성페이, 토스, 신세계 ‘SSGPAY(쓱페이)’, 롯데 ‘L.pay(엘페이)’, 현대백화점 ‘H몰페이’ 등이 플라스틱 카드를 대신하면서 카드사들의 설 자리를 좁히고 있다. 이에 카드사들은 이색 마케팅을 통해 위기 돌파에 나서고 있다. 첫 번째는 현대카드의 ‘그린 스니커즈’ 이야기다. <편집자주>
단편영화 ‘내 꿈은 컬러꿈’ 공개 후
공연·전시·레스토랑…‘컬러’ 이벤트
색깔별로 의미 담아 ‘감성 마케팅’
이태원 거리가 형광빛의 녹색으로 물들었다.
현대카드는 이태원 한쪽에 있는 문화공간인 ‘바이닐&플라스틱’에서 그린 스니커즈를 전시하고 있다. 이 회사가 운영하는 ‘바이닐&플라스틱’은 국내외 LP와 CD를 판매하는 음반매장이다. 방문하는 사람들은 음반을 선택해서 들을 수 있다.
지하철 이태원역에서 ‘바이닐&플라스틱’으로 걸어가는 길, 상점 유리창문에 신발의 밑바닥 부분이 녹색으로 칠해진 그린 스니커즈를 알리는 포스터가 붙어있다. ‘the Green X coco capitan’이라는 문구가 눈길을 잡았다. 푸르스름한 밤하늘에 초록색 달이 떠 있는 ‘THE GREEN MOON’이라는 포스터도 인상적이다.
‘바이닐&플라스틱’ 본건물에도 평면의 그린을 바탕으로 ‘the Green X coco capitan’이라는 글씨가 커다랗게 쓰여 있다. 이곳의 문을 열고 들어가도 녹색으로 가득하다.
문 바로 옆에는 밑바닥이 녹색인 그린 스니커즈 수십 켤레가 진열돼 있다. 그리고 운동화가 들어있는, 반투명의 초록색 비닐백 10여개가 천장에 걸려 있다. 이 운동화에는 ‘Who was the first king?’ ‘To kill the hero’라는 심오한 의미를 담은 문구가 낙서를 한 것 같은 서체로 프린트돼 있다. 이 신발을 디자인한 코코 카피탄이라는 아티스트의 아이디어다.
이 진열장 앞에는 초록색의 상하의 옷을 입은 스태프들이 자리해 있다. 스태프에게 발 사이즈를 말하면 맞는 운동화를 가져다준다. 이 신발을 신고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서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해시태그(#현대카드, #현대카드코코카피탄, #thegreen, #그린스니커즈)와 함께 올리면 코코 카피탄이 디자인한 마스킹테이프(날카로운 곳을 가리거나 실내장식을 위해 사용하는 것)를 제공한다.
이는 프리미엄 카드인 ‘그린’을 알리기 위한 마케팅이다. 운동화 진열대 옆으로는 반짝이는 초록색 지갑과 설명서, 녹색의 작은 플레이트 카드가 놓여 있었다.
바이닐&플라스틱 관계자는 CNB에 “많은 사람들이 이 신발을 사거나 스마트폰 인증샷을 올리기 위해 찾아왔다”며 “단편영화 속에 등장하는 운동화라 호기심을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린·레드·퍼플·블랙 속으로
이 운동화는 ‘내 꿈은 컬러꿈’이라는 단편영화에 등장하는 소품이다. 올해 현대카드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한 작품이다. 회사명이 등장하지 않는 언브랜디드 필름(Unbranded film)으로, 이 회사의 프리미엄 라인인 그린, 레드, 퍼플, 블랙 컬러가 모티브다. 4편의 단편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한 셈이다.
이 영화는 동영상플랫폼인 왓챠플레이에서 감상할 수 있다. 현대카드의 유투브 계정에서는 숏필름 버전과 예고편을 볼 수 있다. 이 계정의 구독자 수는 16만4000명이며, 예고편 조회수는 704만에 달한다. 개별 옴니버스 영상인 ‘the Green Moon’ ‘the Red Door’ ‘the Purple Rain’ ‘the Black Jean’의 숏버전은 각각 176만, 98만, 75만, 94만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전체 구독자보다 몇 배 많은 사람들이 영상을 클릭했다는 얘기다.
이 운동화는 ‘the Green Moon’이라는 짧은 영상 속에서 등장한다. ‘그린 카드’를 갖고 있는 회원에게만 이 신발을 판매했다. 한정판인 이 신발을 사기 위해 수천명의 사람들이 이태원 ‘바이닐&플라스틱’ 주변으로 길게 줄을 서는 풍경이 발생하기도 했다. 현재 인스타그램에서 ‘그린 스니커즈’라고 검색하면 644개의 게시물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다.
현대카드는 그린 외에도 다양한 컬러 마케팅을 추진하고 있다. 18일에는 현대카드의 이태원 공연장에서 ‘the Red Door’ 속에 등장하는 바를 현실공간에 마련했다. 일명 ‘the Red Bar 시크릿 파티’다. ‘레드 카드’를 갖고 있는 사람들만 참여할 수 있다. 카더가든, 양다일, 닐로, 자이로 등 유명 뮤지션들의 공연도 펼쳐진다.
퍼플 레스토랑도 운영 중이다. 서울 중구에 있는 레스케이프호텔의 레스토랑 ‘라망시크레’가 그 장소다. 10월 동안 단편영화 ‘the Purple Rain’에 나오는 ‘퍼플 플레이트’ 요리를 제공한다. ‘퍼플 카드’ 소지자들만 이 보라색 음식을 맛볼 수 있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CNB에 “국내 프리미엄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이번 단편영화를 제작했다”며 “그린, 레드, 퍼플, 블랙 등 4가지 색상이 추구하는 바를 보여주는 개성있는 브랜딩 프로젝트다”고 말했다.
프리미엄 카드는 연회비가 일반카드에 비해 비싼 편이다. 블랙(250만원), 퍼플(80만원), 레드(30만원), 그린(15만원) 등으로 연회비가 높은 만큼 다른 카드에 비해 차별화된 혜택이 많다. 우량회원들이 많이 사용해 연체율이 상대적으로 낮다. 회사 입장에서는 수익성이 높고 안정적인 사업군이라고 볼 수 있다. 높은 연회비를 내는 우수회원들을 위해 컬러별로 매력적인 이벤트를 제공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카드를 소지한 사람들만 이벤트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은 조금 아쉽다. 컬러별로 소유한 사람들만 사용할 수 있는 폐쇄적인 이벤트와 함께,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오픈형 행사’를 기획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CNB=손정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