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분쟁, 일본 수출규제, 환율 불안 등으로 증시 침체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자구책 마련에 나선 증권사들이 이색 마케팅을 펼치고 있어 주목된다. 특히 전통적인 증권거래 수수료 수입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투자은행(IB) 시대가 도래한 만큼, 증권사들 간의 경쟁은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이에 CNB는 독특한 아이템으로 고유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있는 증권사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번 편은 트렌드를 담은 ‘보고서 제목’ 이야기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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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가 이색 마케팅①] 레스토랑·패션쇼·콘서트…“투심(投心)을 잡아라”
[증권가 이색 마케팅②] 골프·야구로 대동단결, 스포츠로 홍보한다
[증권가 이색 마케팅③] “2030 공략하라” SNS 개성열전
딱딱한 증시보고서, 변신 시도
표지제목 개성 넘치게 ‘네이밍’
맛집 소개 등 생활정보도 담아
증권가에 특이한 제목의 리포트 ‘네이밍(naming, 이름 짓기)’이 늘어나고 있다.
애널리스트들은 하루에도 수백개의 보고서를 쏟아낸다. 작년에 발표된 보고서는 4만4734건이었다. 대부분 기업 분석, 주식시황과 환율 동향 등에 대한 것이다. 경제학 이론과 시장상황을 담다보니, 딱딱한 그래프와 수치 등 머리 아픈 내용이 많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독특한 제목으로 투자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으려는 노력이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삼성증권은 최근 ‘유통업 엔드게임’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는 최근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끈 미국 마블스튜디오의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제목을 활용한 것이다. 한주기 연구원은 미국 아마존이 오프라인 시장에 진출하면서 생길 변화에 대해 분석했다. ‘유통 공룡’ 아마존의 변화로 온라인과 오프라인, 물류시스템, 빅데이터가 결합된 ‘뉴 리테일(new retail)’ 시대가 다가오는 것을 영화 ‘엔드게임’에 비유한 셈이다.
최근 유진투자증권은 ‘트노스의 엔드게임’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허재환 연구원이 작성한 보고서다.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에 등장하는 빌런(악당) 타노스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이름을 합성해, 트노스라는 가상의 존재를 만들었다. 타노스와 트럼프 대통령을 합성한 이미지를 표지로 채택했을 정도로 유머에 초점을 맞췄다. 미중 무역분쟁,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의 엔드게임에 대해 다루고 있다. 결론은 이 엔드게임의 생존자들이 누구인가 하는 점이다.
영화제목·노래가사 활용해 작명
SK증권도 재미있는 제목을 내놓았다. 안영진 연구원의 ‘금리야, 나 지금 떨고 있니’다. 글로벌 금리의 향방이 위험자산시장에 우호적이지 않으며, 유럽과 신흥국, 한국의 금리 변동에 다른 특성이 있지만 공통적으로 위험자산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다는 내용이다. 복잡하고 어려운 분석인데, 곽경택 감독의 영화 ‘친구’의 대사를 활용해 포인트를 줬다.
농담을 활용하기도 한다. 한국투자증권은 ‘자동차 부품사 - 바닥 밑에 지하실 있다’는 제목의 리포트를 공개했다. 우리나라 자동차 부품사들은 우리 완성차 기업이 중국에서 부진함에 따라 수요가 감소했고, 자율주행차와 친환경차 등 신기술이 부상하며 기술 측면에서 뒤처지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자동차 부품사들의 우울한 미래를 남성적인 농담 형태로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부드러운 말로 돋보이기도 한다. 교보증권은 ‘교보 애.세이’라는 코너를 운영하고 있다. ‘애널리스트 세이(say)’의 줄임말이다. 교보문고도 같은 계열이기 때문에, ‘에세이’와 발음이 비슷한 ‘애.세이’라는 말을 채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 증권사의 김형렬 리서치센터장이 증시 주요이슈를 한 페이지로 분석해준다.
대신증권도 특이한 제목을 선보였다. 이수빈 연구원의 페이퍼들이다. ‘너와는 미래가 보여(덕산네오룩스)’ ‘기다릴 수 있어(원익IPS)’ ‘곳곳에 네가 있어(솔브레인)’ ‘넓어지는 어깨에 기대도 좋아(SK머티리얼즈)’ ‘같이 걸을까(실리콘웍스)’ 등이다. 여자친구가 애인에게 보내는 연애편지 같은 느낌으로 통통 튀는 매력을 살렸다.
‘인터넷 언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이베스트투자증권은 ‘건설-나는 유노윤호다’로 주목을 받았다. 남성듀오 동방신기(SM엔터테인먼트 소속) 유노윤호의 이름을 활용했다. ‘유노윤호’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열정의 대명사로 사용되는 말이다. 유노윤호가 승부욕이 강한 연예인으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정하늘 연구원은 건설업종의 ‘유노윤호’로 현대건설을 추천했다. 국내 건설업계가 시장 포화와 지나친 규제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데, 이를 적극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종목이 현대건설이라는 점을 재미있게 표현한 셈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CNB에 “애널리스트 입장에서는 고객들이 리포트를 많이 읽어야 좋다”며 “많은 리포트들 속에서 투자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서는 특이하고 재미있는 제목을 만드는 게 유리하다”고 말했다.
체험형 보고서까지 등장
증권사 리포트는 다양한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맛집 추천 보고서도 등장했다. 증권가의 맛집 보고서는 기업을 중심으로 한다. DB금융투자는 ‘탐방 업데이트-6월의 숨은그림 찾기’를 공개했다. 애널리스트들이 기업에 대한 리포트를 작성하기 위해 탐방을 하면서 방문한 주변 맛집들을 정리한 것. 인텍플러스(대전 유성구 솔밭묵집), S&TC(창원 성산구 구복바다횟집), 노루페인트(안양 만안구 안양감자탕), 대창단조(경남 밀양시 단골집) 등의 맛집을 추천했다.
메리츠종금증권과 유진투자증권은 액상전자담배 ‘쥴(JUUL)’ 체험기를 리포트로 발표했다. 우리나라 액상전자담배 시장은 KT&G의 ‘릴’, 필립모리스의 ‘아이코스’, 브리티시아메리칸타바코의 ‘글로’가 3파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쥴’이 도전장을 내밀면서 시장 분화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메리츠종금증권 김정욱, 유진투자증권 주영훈 애널리스트는 직접 ‘쥴’을 피어보고, 사용감에 대한 내용을 친구에게 털어놓듯이 보고서를 작성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CNB에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경험한 감성적인 내용, 기업 탐방을 하면서 방문한 맛집 등 좋은 정보를 공유하기 위한 시도가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CNB=손정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