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국산 신약들의 해외 진출이 활발해지고 있다. CJ헬스케어의 신약 ‘케이캡’과 동아에스티 신약 ‘슈가논’ 등을 선두로, 국산 신약들이 블록버스터 목록에 연이어 이름을 올리고 있다. 과거에는 ‘신약 개발’ 자체에 의미를 두었다면 이제는 ‘실제로 돈이 된다’는 분위기다. 향후 전망을 짚어본다. (CNB=이동근 기자)
투자 비해 낮은 약가, 개발 걸림돌
거듭된 실패…‘돈 될 약’만 만들어
소비 트렌드 집중…줄줄이 해외로
국산 신약들이 과거에는 ‘개발 자체’가 화제가 됐다면 이제는 ‘경제적 가치’에 업계와 소비자들의 관심이 몰리는 분위기다. 특히 올해는 다수 약물이 수출 성과를 올릴 전망이어서 주목된다.
가장 최근 성과를 발표한 곳은 CJ헬스케어의 위식도역류질환 신약 ‘케이캡정’(테고프라잔)이다. 이 약은 지난달 멕시코 라보라토리오스 카르놋 사와 멕시코 등 중남미 17개 국가에 독점 공급하는 8400만 달러 규모의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국내개발 30호 신약인 케이캡정은 개발 완료 전인 2015년 중국 뤄신사에 9529만달러(한화 1143억원)규모의 기술 수출을 성사시켰으며, 지난해 베트남 비메디멕스사와 기술 수출 계약을 맺은 바 있다. 이 약물은 ‘P-CAB’(potassium competitive acid blocker, 칼륨 경쟁적 위산분비 차단제) 기전 약물로는 국내 최초로 허가 승인을 받았다.
동아에스티의 당뇨 치료제 ‘슈가논정’(에보글립틴) 역시 올해 수출 성과를 기대할만하다. 이 약은 국산신약 26호이자 DPP-4저해제 중 국내 자체 기술로 개발한 두 번째 신약이다.
슈가논은 임상개발 중인 지난 2012년 인도 알켐사와 인도와 네팔, 2014년과 2015년 브라질 유로파마사와 브라질과 중남미 17개국, 2015년 러시아 게로팜사와 러시아,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와 개발과 판매에 관한 라이센싱 아웃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특히 지난해 인도에서 임상3상이 완료돼 허가취득을 완료했으며, 러시아와 브라질에서도 임상3상이 완료돼 올해 안에 원료 수출을 통한 매출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동아에스티는 2016년 3월 슈가논을 국내에 발매했으며, 5월 메트포르민과의 복합제인 슈가메트 서방정도 발매한 바 있다.
동아에스티 관계자는 CNB에 “한국인을 대상으로 진행한 임상결과에서 나타난 우수한 효과와 안전성, 복용 편의성을 토대로 국내 당뇨병치료제 시장에서 매출을 확대해 왔다”며 “지난해부터 실시한 CJ헬스케어와의 공동판매를 강화해 올해 시장점유율 확대 및 블록버스터 제품으로 성장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보령제약 고혈압치료제 ‘카나브’(피마사르탄)도 올해 수출 성과가 기대되는 신약이다. 국내개발 15호 신약인 카나브는 의약품 시장조사 기관 유비스트 기준 처방실적이 2017년 543억원, 2018년 668억원을 기록해 국산 신약 중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꼽힌다.
해외에서의 성과도 기대된다. 지난해 동남아와 러시아에서 카나브가 발매돼 매출이 발생하고 있으며, 올해 카나브 계열의 약물인 듀카브가 출시된다. 특히 원료나 기술 생산이 아닌 완제품 수출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 강점이다.
보령제약 관계자는 CNB에 “현재 51개국 약 5억달러(4억7426만원)규모의 라이선스 아웃계약을 체결하고, 한국의 비롯해 18개국에서 발매허가를 받았다. 지난해에는 중남미를 넘어 러시아, 동남아사아 13개국 중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에서 출시되어 처방이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선택과 집중’ 핵심전략 선회
국산 신약이 이처럼 해외에서 큰 성과를 냈거나 기대할 수 있게 된 것은 몇 년 되지 않았다. 과거에는 큰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개발했다는데 의의를 두는 경우가 많았다.
국산신약 1호로 2000년 개발된 SK제약의 ‘선플라주’ 이후 30호 ‘케이캡정’까지 30개의 신약이 개발됐지만, 업계에서 ‘블록버스터’ 기준으로 꼽는 연매출 100억원을 넘는 약은 그리 많지 않았다.
선플라주는 현재 생산 실적이 없고, 국산 신약인 3호 동화약품 ‘밀리칸’, 7호인 CJ헬스케어 ‘슈도박신’ 등은 아예 품목허가가 취하됐다. 24호인 동아에스티 ‘시백스트로’도 국내에서는 아예 생산이 안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블록버스터가 하나, 둘 등장하면서 국산 신약도 잘 만들면 돈이 된다는 것이 점차 입증되고 있다.
이제까지 의미 있는 매출 성과를 낸 약들을 돌아보면 동아에스티의 ‘자이데나·슈가논’(국산 신약 10호, 25호). 대원제약 ‘펠루비’(12호), SK케미칼 ‘엠빅스’(13호), 보령제약 ‘카나브’ (15호), 일양약품 ‘놀텍·슈펙트’(14호, 18호), LG화학 ‘제미글로’(19호), 종근당 ‘듀비에’(20호) 등이 있다.
1~9호까지는 의미 있는 성과를 낸 약이 드물었지만 그래도 10호 이후부터는 약 절반 정도는 괜찮은 성과를 낸 것으로 보인다.
올해 매출액이 100억원을 넘을 것으로 전망되는 약은 보령제약 ‘카나브’, LG화학 ‘제미글로’, 종근당 ‘듀비에’ 등이다. 의약품 통계 전문기관 아이큐비아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까지 제미글로 제품군은 약 522억원, 카나브 제품군은 420억원, 듀비에는 약 93억원의 원외처방액을 기록했다. 수출액까지 포함하면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낮은 약가, 여전히 ‘발목’
다만 국산 신약들이 넘어야 할 산은 아직 높아 보인다. 특히 낮은 약가가 문제다.
예를 들어 동아에스티의 ‘시벡스트로’ 같은 경우 국산 신약임에도 국내에서 시판되지 않고 해외로 판권이 넘어갔다. 기존 항생제에 내성이 생긴 환자에게 처방되므로 사용량이 많지 않을 것으로 보임에도 보험 약가가 너무 낮게 책정됐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혁신신약(first in class)이 없다는 점도 아쉬움으로 꼽힌다. 현재 개발된 신약들은 기존에 사용되지 않았던 새로운 성분을 사용한 의약품은 있지만, 약이 적용되는 원리(기전)까지 새로운 약은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혁신신약 개발이 워낙 어렵고, 기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쉬운 것은 아니지만, 해외에서까지 인정받으려면 대체 불가능한 혁신신약의 개발이 필요하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제약업계 관계자 A씨는 “국산 신약이 과거에는 ‘만들기 용이한 약’을 목적으로 했다면 이제는 ‘돈이 될 만한 약’으로 목표가 바뀌고 있다”며 “만성질환 치료제(카나브, 제미글로 등)나 발기부전 치료제(자이데나, 엠빅스 등) 들이 시장에서 좋은 성과를 낸 것이 증거”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신약은 개발 타이밍과 마케팅도 중요하다. JW중외제약의 ‘제피드’가 같은 발기부전 치료제인 자이데나, 엠빅스에 비해 성과를 못 낸 것은 타이밍을 못맞춰서이고, 제미글로가 발매된 뒤 매출이 썩 시원치 않다가 대웅제약에서 공동 판매를 시작한 뒤 매출이 확 올라간 것이 주요 사례”라고 덧붙였다.
(CNB=이동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