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짜배기’로 불리는 인천-울란바토르(몽골) 운수권의 추가 배분을 앞두고 항공업계에 묘한 기류가 감돌고 있다. LCC(저가항공사) 대 아시아나항공의 대결구도에서 대한항공이 끼어들면서 LCC·대한항공의 공동 전선이 형성된 것. 이런 상황은 ‘이례적’이라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얼핏 보기에 기존에 독점권을 행사해 온 대한항공 입장에서는 굳이 양자의 경쟁에 끼어들 이유가 없기 때문. 그럼에도 왜 이런 상황이 된 걸까. (CNB=이동근 기자)
아시아나의 민간외교, 노선 확대 ‘한몫’
길 닦아 놓으니…LCC-대한항공 카르텔
인천-울란바토르 노선은 1991년 한국과 몽골이 항공협정을 맺으면서 개설, 대한항공이 28년간 독점해 왔다. 양국이 1인 1항공사 체제 운영에 합의하면서 한국의 대한항공과 몽골의 미아트항공만이 이 노선을 오갈 수 있어서였다.
그러던 중 1990년대 몽골과의 교류가 늘고, 인기 여행지로 떠오르면서 항공 수요가 매년 11%씩 증가하면서 이 노선이 ‘알짜배기’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지난해 인천에서 울란바토르를 찾은 인원만 약 33만명에 달했고, 성수기 탑승률은 90%가 넘는, 그야말로 ‘뜨기만 하면 돈이 되는 노선’이 됐다.
이에 따라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17일, 한-몽골 회담을 통해 주 6회(1656석)였던 몽골 노선에 3회 운항을 추가하기로 합의했다. 주 9회가 되면 운항 가능 노선은 844석이 늘어나 총 2500석이 된다.
이처럼 늘어난 좌석을 두고 아시아나와 저가항공사(LCC) 사이의 경쟁이 시작됐다. LCC는 저렴한 가격을, 아시아나는 ‘좌석 활용도’를 각각 장점으로 내세웠다.
아시아나는 늘어난 844석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1회당 281석 이상을 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아시아나는 290석 수준의 중형기 A330을 보유하고 있지만, LCC는 189석 수준의 중소형기만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LCC가 주 3회 운항할 경우 소화할 수 있는 승객수가 567석에 불과해져 277석이 사실상 버려진다는 것이 아시아나 측의 지적이다.
아시아나는 20여년에 걸친 민간외교도 장점으로 들고 있다. 아시아나는 20여년간 몽골 총리, 장관 등 주요 인사를 30회 이상 면담하며 좌석 공급 증대를 요청해 왔다.
아시아나 왕따? 저가항공·대한항공 ‘윈윈’
여기에 변수가 된 것이 대한항공이다. 대한항공이 최근 국토부에 조원태 사장 명의로 “기종과 좌석 수에 상관없이 몽골 노선을 운항할 수 있게 해 달라”며 ‘게임 체인저’ 역할을 자임했기 때문이다.
‘기종과 좌석수와 상관없이’ 라는 뜻은 현재의 6회의 운항 횟수는 그대로 유지하되 더 큰 비행기를 띄워 더 많은 좌석을 실어 나를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다.
현재 울란바토르 공항은 중형기만 오갈 수 있지만, 현재 건설 중인 제2공항이 완공되면 대형기가 오갈 수 있게 된다. 즉, 대한항공은 더 많은 승객을 나를 수 있게 된다. 대한항공이 보유하고 있는 A380의 경우 407석이다. 6회 운항이 가능해지면 이론상 최대 2442석(407×6)까지 소화가 가능하다.
대한항공의 청을 국토부가 들어주면 이론상 LCC가 소화 가능한 567석(189×3)만 소화하더라도 자리는 남게 된다. LCC가 나머지 3회 운항만 소화하더라도 2500석을 다 소화하지 못하는 경우는 없어진다. 사실상 대한항공이 LCC에 힘을 실어주는 형국이 된다. 이로 인해 LCC 측도 내심 대한항공의 주장을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LCC가 소화 못하는 물량은 대한항공이 그대로 가져올 수 있다. 대한항공 입장에서는 독점을 더 강화할 수 있게 된다. LCC가 567석을 모두 가져가더라도 대한항공이 보유한 좌석수는 현재 확보한 1656석에서 최소 1933석으로 늘어난다. 전체 좌석 수의 약 77%에 달하는 좌석수를 독점하게 된다.
업계 관계자는 “어차피 항공법에 따르면 5회 운항에서 운항 횟수가 늘어나면 증가분은 타 항공사에 넘겨야 한다. 몽골 노선이 특이한 경우였다”며 “LCC가 추가 배분 분량을 획득하게 되면 대한항공은 좌석수를 더 확보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복잡한 이해관계가 대한항공과 LCC가 ‘윈윈’하는 배경이 되고 있다는 얘기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사실상 대한항공이 LCC의 백기사로 등장한 셈”이라며 “대한항공은 높은 항공료를 유지할 명분을 얻게 되고, LCC는 아시아나보다 대한항공과 협력하는게 낫기 때문에 서로의 셈법이 맞아 떨어진 셈”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 같은 대한항공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항공료 인하 효과는 거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는 점이다.
그동안 대한항공은 성수기에 100만원이 넘는 수준의 가격을 제시하며 같은 시간(약 3시간 30분)을 비행하는 다른 노선에 비해 비싼 운임을 받아왔다.
아시아나가 경쟁사가 되면 더 이상 이 같은 가격을 받기 어려워진다. 신규 취항하는 아시아나가 공격적으로 가격을 인하하면 대한항공은 ‘울며 겨자 먹기’로 운임을 내릴 수밖에 없다.
반면 서비스 품질이나 기재 경쟁력에서 비교가 안되는 LCC가 같은 항로에 취항하게 되면 가격을 내릴 필요가 없다. 이미 대부분 좌석을 독점한 상태가 되므로 굳이 운임을 인하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대한항공, 과거에도 독점 논란
사실 대한항공의 몽골행 독점은 과거부터 논란이 돼왔다.
지난 2012년 공정거래위원회는 대한항공과 미아트 몽골항공이 인천-울란바토르 노선의 신규 경쟁사 진입을 방해하기 위해 몽골 정부에 부당한 방법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기로 합의하고 이를 실제로 실행한 행위를 적발, 같은 행위를 반복하지 않도록 촉구하는 시정명령을 내린 바 있다.
공정위는 신규 노선 취항을 막기 위해 대한항공과 미아트몽골 항공이 노력하자는 내용의 문서, 대항항공의 내부 보고서, 우리 정부와 몽골 정부 간 협상 결렬 이후 공동작업의 성공에 대해 자평한 보고서 등 증거자료를 확보했다. 또 대한항공이 2010년 몽골 항공 관료 등 20명의 제주도 관광경비 1600만원을 대주는 등 부당한 편의를 제공한 사실도 밝혀냈다.
공정위는 이같은 사실을 국토해양부(현 국토교통부)에 통보하고, 몽골과의 항공회담 때 활용하도록 권고했다.
당시 공정위는 “인천-울란바토르 노선의 성수기 운임은 지난해 8월 32만 6173원으로 운항 시간(3시간30분)이 유사한 인천-홍콩, 인천-심천, 인천-광저우 노선보다 최소 5만원에서 최대 7만원 가량 비쌌다”고 지적했다. 또 2005년부터 2010년까지 인천-울란바토르 노선의 이익률은 20%대(19~25%)로 같은 시기 -9~3%에 그친 국제선 전체 노선 평균 이익률을 크게 웃돌았다고 밝혔다.
이같은 공정위의 지적이 이후 한-몽골 회담에서 몽골 노선을 확대키로 합의하는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CNB=이동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