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시민문화관은 집이면서 공원이자 또 갤러리다. 조각품이 있는 정원 뒤에 집이 있다. (사진=선명규 기자)
금호아시아나그룹 창업주인 고 박인천 회장의 광주 자택에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 지난달 이곳이 무료로 개방되자 인근 주민은 물론이고 전국 각지에서 일부러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문화재 등록을 추진 중인 고택의 정취와 도심 속 청량한 숲이 무수한 발걸음을 이끌고 있다. 개관 한 달을 맞은 박 회장의 자택 ‘금호시민문화관’에 CNB가 다녀왔다. (CNB=선명규 기자)
개방 후 주민·관광객 하루 500명 찾아
‘고택+현대적 설계’로 문화재 등록 추진
박삼구 회장 “광주의 자랑으로 만들 것”
지난 18일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 지하철 금남로4가역 3번과 4번 출구 사잇길로 올라가자 낮은 회색 담벼락 길이 시작됐다. 담장 위로는 가지런히 정돈된 활엽수와 침엽수들이 고개를 내밀었다. 까치발을 들어 안을 봤다. 울울창창(鬱鬱蒼蒼)한 숲의 정취가 눈과 코에 전해졌다. 그길 끝의 모퉁이를 돌자 ‘금호시민문화관’이란 현판이 보였다. 지난달 4일 일반 시민에 개방된, 박인천 금호아시아나그룹 창업주와 이순정 여사 부부가 살던 집이다.
활짝 열린 문을 통과해 들어가자 소담한 정원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가운데를 차지한 너른 들판 주변으로 잎의 모양이 다른 나무들이 빼곡하게 감싸고 있었다. 담장 뒤로 한껏 치솟은 빌딩숲이 보이는 탓에 더욱 고즈넉하게 느껴졌다.
▲본채와 그 뒤로 보이는 사랑채 (사진=선명규 기자)
안으로 서른 걸음 정도 들어가니 나무들 사이로 집 두 동이 모습을 드러냈다. 단층 본채와 2층짜리 사랑채다. 여느 주택처럼 내부는 방과 거실, 부엌으로 나뉘어 있고 식탁과 탁자 등 가구들도 남아있었다. 집 주변에는 아궁이와 장독대, 빨랫줄 같은 거주의 흔적이 선연히 남아있었다. ‘맨발로 들어오시오’란 경고문도 없는데 방문객들은 애써 신발을 벗고 들어갔다. ‘집’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문 앞에는 ‘손님’들의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이 집의 나이를 짐작케 하는 것은 본채를 받치는 나무 대들보. 지금의 건축기법이 섞인 외관 안에서 세월을 떠받들고 있었다. 박 회장 부부의 자택은 면적 5523.6㎥(약 1700평) 부지에 1931년 한옥 형태로 지어졌고, 1952년 이후 몇 차례 증축과 개축을 해 지금의 모습이 됐다. 지난해 기준 개별공시가격이 58억1000만원으로 광주에서 가장 비싼 단독주택이기도 하다. 고택의 풍모와 현대의 주택설계가 조화를 이룬 사랑채의 경우, 근대건축물로 문화재 등록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금호시민문화관은 집이면서 동시에 공원이자 또 미술관이다. 마당 곳곳에 예술작품이 설치돼 있다. 조각 등 작품 10여점이 선녹색 수풀과 얽혀 있다. 풀숲에서 개성있는 작품 하나하나를 찾는 재미가 있다. 관상용 예술품뿐만 아니라 공원이 갖춰야할 편의시설도 들어서 있다. 나무정자, 벤치, 음수대 등이 설치돼 있고, 작은 연못과 분수도 있어 편안한 휴식을 돕는다.
방문객도 많다. 정문에 주로 상주하는 금호시민문화관 관리인 오경근 씨는 하루 천 번 정도 인사한다. “안녕하셔요? 또 오셔요잉~” 환영하고 환송하느라 입과 허리가 쉴 틈이 없다. 광주는 물론이고 다른 지역에서도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그렇게 매일 약 500명이 드나든다고 한다.
오 씨는 “주말에는 평소보다 더 많이 찾아오시고 밤에도 방문하는 사람이 많다”며 “번잡한 동네에 이런 공원이 생기니 주민들, 특히 노인분들이 좋아한다”고 말했다. 문화관은 유동인구가 많은 충장로거리와 대인시장 사이에 있다.
실제로 취재를 위해 방문했을 때, 평일 점심시간이었는데도 꽤 북적였다. 편한 운동복 차림의 인근 주민부터 단체 관광객까지 다양했다. 전북 남원에서 친구들과 온 70대 박선옥 씨는 CNB 기자에게 “‘회장님’ 집은 어떻게 생겼나 궁금해서 왔다”며 “으리으리한 대저택을 상상했는데 생각보다 소박한 느낌이라 정겹다”고 말했다.
▲지난 18일 작은 연못과 벤치가 있는 금호시민문화관에서 산책하는 시민들 (사진=선명규 기자)
앞으로의 문화관 운영 목표는 예향(藝鄕) 도시의 상징으로 발돋움시키는 것이다.
지난달 열린 개관식에서 박인천 회장의 3남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금호시민문화관이 예향 광주의 자랑스러운 문화예술 공간으로 자리매김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문화관 이용시간은 시기에 따라 차이가 있으니 방문 전 미리 확인하는 것이 좋다. 매주 월요일 쉬지만 공휴일과 겹치면 월요일에도 연다. 오전 10시에 문 여는 것은 동일. 5~8월에는 오후 9시, 3~4월과 9~10월에는 오후 8시, 1~2월과 11~12월에는 오후 6시에 닫는다.
(CNB=선명규 기자)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은 1946년 고 박인천(1901~1984) 창업주가 전남 광주에서 포드 35년형, 내쉬 33년형 등 중고 택시 2대를 구입해 광주 황금동에 ‘광주택시’란 상호로 사무실을 열면서 시작된 기업이다. 이후 박 창업주는 금호고속을 설립했으며, 타이어 확보에 어려움을 겪다 직접 타이어를 생산하기 위해 1960년 ‘삼양타이야’를 세웠다. 1975년엔 국내 최초로 항공기용 타이어를 개발했으며, 2000년대 들어서는 중국·미국·베트남 등에 잇달아 해외 생산기지를 구축했다. 타이어 사업과 함께 운송·건설사업도 크게 번창했다. 그룹의 모(母)기업인 금호산업은 60~70년대 경부선과 호남선 고속버스 사업에 뛰어들어 ‘금호 신화’를 창조했다. 현재는 토목·건축, 항공·물류시설, SOC, 환경, 주택 등 건설 전 분야에서 사업을 펼치고 있으며, 아시아나항공을 비롯해 금호홀딩스, 금호산업, 금호고속, 금호리조트 등 24개사를 계열회사로 두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