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서울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카운터테너 안드레아스 숄과 바로크 고음악 연주단체인 ‘잉글리시 콘서트’가 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한화그룹)
염천(炎天)이 엄습하기 전인 지난 6월. 한국을 찾은 세계적 카운트테너 안드레아스 숄은 국내 관객에 찬사를 보냈다. ‘한화클래식’ 무대에 오른 그는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을 정도로 에너지가 넘치고 적극적이며 음악을 즐기는 모습이 감동적"이라며 치켜세웠다. 숄을 흥분시킨 객석의 뜨거운 열정은 예견돼 있었다. 일찌감치 매진을 기록한 것은 물론, 유례없이 높은 유료티켓 판매율을 보였기 때문이다. 매년 객석 점유율 90% 이상을 기록하는 한화클래식이지만, 올해는 숄의 인기로 어느 해보다 관심이 컸다는 게 한화그룹 측의 설명. 질 높은 공연에 대한 갈증과 좀체 보기 힘든 스타와의 만남이 폭발력을 일으킨 셈이다.
기업 메세나가 일으킨 변화 중 하나를 꼽는다면, 다양한 예술 장르를 보다 친숙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가령 클래식의 장벽을 높이는 몇 가지 선입관이 있다. 밤에만 열리는 ‘야행성’이라는 생각도 그중 하나다. 벌건 대낮에 열리는 마티네 콘서트는 이런 생각을 허문다. 평일 오전에 열리는 ‘일동제약과 함께하는 마티네콘서트’의 경우 매회 약 600명이 찾을 정도로 대중적인 공연이 됐다. 밤보다 낮이 여유로운 이들의 응답이다. 클래식 콘서트는 대도시의 대극장에서만 열린다는 편견도 있다. 매일유업이 개최하는 ‘매일클래식’의 슬로건은 “따뜻하게 찾아가고, 초대하는 음악회”이다. 구호처럼 지난 2003년부터 전국 60곳을 돌며 클래식 공연을 열었다. 공연에 해설을 더해 이 장르를 보다 가깝게 만들었다는 평가도 듣고 있다. 기업이 여는 클래식 공연은 대체로 저렴한 편이라 티켓값이 고가라는 편견 해소에도 일조하고 있다.
미술 분야도 마찬가지다. 전시장이 일상의 동선에 들어오면서 관심 갖는 이들이 늘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전국 지점에 갤러리와 잠실에 대규모 전시장인 에비뉴엘아트홀을 운영하고 있다. 홍지윤, 서기환, 신모래 등 각자 분야에서 이름 높은 작가들이 그동안 전시를 열었다. 롯데에비뉴엘아트홀에서 만난 한 남성은 “나이 70 넘어서 미술관이라는 데를 처음 와봤다. 일부러 찾을 생각은 못해봤는데, 백화점에 미술관이 생기니 이런 호사를 다 누려본다”며 웃었다.
문화가 대중 가까이 스며드는 추세에 제동 걸리는 파열음이 최근 들렸다. 지난달 한국메세나협회가 발표한 ‘2017년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 현황 조사’를 보면 작년 국내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 규모는 1943억1000만원으로 전년 대비 4.1% 감소했다. 2013년 1602억7000만원을 기록한 이후 계속 증가하다 6년 만에 감소세로 돌아섰다. 지원 건수도 1415건으로 전년보다 3.3% 줄었다. 협회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 일명 김영란법)로 인한 협찬 활동 위축과 ‘미르·K스포츠재단’ 사태 이후 기부금 집행 기준 강화 등을 원인으로 분석했다.
기업 메세나 활동은 사회공헌의 일환이다. 마케팅 효과도 무시할 수 없지만 대체로 일방적인 투자에 가깝다. 거두는 수익이 미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화예술에 대한 지원이 줄면 예술인도 시민도 많은 기회를 잃는다. 관객과 만날 자리, 70 평생 처음 겪어볼 미술관의 공기. 기업의 문화예술 후원 감소를 우려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노년에 찾아온 예술의 맛이 농익기도 전에 시들지 않기를 바라본다.
(CNB=선명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