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증권 직원의 전산 조작 실수가 증권업계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이번 사태와 관련해 주식 매매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공매도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청와대 청원이 20만건을 넘어섰다. 삼성증권에 붙은 사과문 모습. (사진=연합뉴스)
삼성증권 직원의 전산 조작 실수에서 시작된 공매도 사태가 증권업계 전체를 흔들고 있다. 금융위원회 자본시장조사단은 자사주를 매도한 삼성증권 직원과 선물 투자 세력의 연계 가능성까지 의심하고 있다. 이참에 공매도 제도 자체를 폐지하자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CNB가 그동안 발생한 굵직한 공매도 폐해 사례와 대안을 짚어봤다. (CNB=손정호 기자)
공매도 천태만상, ‘큰손’들 잔치
셀트리온‧카카오 등 피해 잇따라
감시강화 및 규모·금액 제한 필요
삼성증권 직원이 우리사주를 가진 직원들에게 주당 1000원(배당금)을 입금해야 하는데 주당 1000주로 잘못 입력하면서 시작된 이번 사태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입력된 주식이 전산상에만 존재하는 ‘유령주식’으로 알려졌고, 이 유령주식을 직원들이 앞 다퉈 내다팔았다는 점에서 작전세력 개입설까지 나오고 있다. 금융위는 삼성증권 직원들과 작전세력이 공모해 ‘하락’에 선물 베팅한 뒤, 자사주를 대규모로 시장에 내다팔았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설령 작전세력이 개입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번 사태의 본질이 허술한 공매도(주식이나 채권을 소유하지 않은 상태에서 매도 주문을 내는 것) 시스템에서 비롯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로 인해 청와대 청원게시판에는 공매도 폐지 청원이 20만건을 넘어섰다. 청원이 20만건을 넘으면, 청와대가 공식 답변을 내놓아야 한다.
청원인들은 “주식을 보유하지 않은 사람에게 주식을 대차해 공매도할 수 있는 시스템은 자본력을 가진 기관과 외국인 투자자가 자전거래 등으로 주가를 조작하도록 방기하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사실상 거대 자본과 정보력, 조직력을 갖춘 기관과 외국인 투자자만 공매도 제도를 활용해 수익을 낼 수 있기 때문에, 대형 공매도 세력으로 인해 주가가 하락할 경우 평범한 개미 투자자들은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셀트리온은 공매도 세력에 의한 주가 하락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대표적 사례다. 셀트리온은 공매도로 인한 주가 하락 문제로 코스닥에서 코스피로 이전 상장했지만, 여전히 공매도 거래량이 적지 않다. 작년 9월 김형기 셀트리온 대표가 임시 주주총회에서 코스피 이전 상장 결정을 발표하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유령주식’ 오랜 역사
이러한 공매도의 공정성 문제는 증권업계의 ‘오래된 논란거리’로 그 역사가 길다.
최근 셀트리온은 공매도 세력에 의한 주가 하락 때문에 코스닥에서 코스피로 이전 상장했지만 공매도 문제가 사라지지 않았다. 코스피로 이전 상장한 2월 9일부터 3월 14일까지 셀트리온의 공매도 거래량은 683만4908주, 누적 공매도 거래대금 2조2801억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셀트리온의 주가는 3월 5일 1년 내 최고점인 39만2000원을 기록한 후 지속적으로 하락세다. 현재(4월 13일 종가 기준) 29만원까지 떨어졌다.
카카오도 지난 1월 공매도 논란이 일었다. 카카오는 당시 싱가포르에서 1조원 규모의 해외주식예탁증서를 발행했는데, 유상증자 발표 후 공매도가 집중돼 16만원대이던 주가가 13만원대까지 하락했다.
유상증자 기업에 대해 공매도를 걸어 주가가 하락하고 신주 가격이 낮아지면, 이 과정에서 발생한 차익으로 빌린 주식 값을 갚는 방식이었다. 이로 인해 상당수 개미투자자들이 피해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도 공매도로 의심되는 사례가 시장을 흔들었다. 당시 두 회사 합병 때 미국의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는 보유 중이던 삼성물산 지분 4.95%를 주식매수청구권을 통해 매각했다. 주식매수청구권은 합병과 양도 등 주주총회의 중요한 결의가 있을 경우, 소유 주식을 정당한 가격에 회사가 매수하도록 청구할 수 있는 권리다.
당시 엘리엇은 합병비율 문제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반대했고, 삼성물산 주식 매입 때보다 손실을 감수하고 보유 주식을 매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엘리엇이 공매도나 파생상품 거래를 통해 해당 손실을 보전했을 것이라는 분석을 제기하고 있다. 헤지펀드의 특성상 해외투자에서 손실을 입고 떠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것.
SK그룹은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할 것이라는 풍문이 돌았을 2015년 11월에도 공매도 의혹이 일었다. 이날 대우조선해양의 주식은 장중 한 때 28% 급등했고, SK는 17%까지 하락했다가 반전해 5.58% 하락으로 장을 마감했다.
건설업계에는 지난 2015년 5월 ‘공매도 주의보’가 발령됐었다. 삼성물산과 대우건설, GS건설, 현대건설 등 주요 건설사들의 해외실적이 모두 전년 동기대비 부진한 것으로 나타나자 공매도 세력이 이를 악용한 것. 이로 인해 건설사들의 주가가 2015년 4월 20일부터 5월 1일까지 10거래일 동안 평균 10% 떨어졌다. 당시 증권가에서는 건설사들의 해외 원가율이 정상화되고 있는 추세임에도, 공매도 세력이 일부 해외 부실 수치만 부각시키며 주가를 끌어내렸다고 봤다.
▲삼성증권 직원의 우리사주 배당 입력 실수로 인해 현행 공매도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대책 마련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9일 원승연 금융감독원 부원장이 서울 여의도 금감원에서 삼성증권 배당 입력 착오에 대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해결책은 공매도 금지?
한편 이번과 같은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여러 제도의 개선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자금력 측면에서 일반투자자는 소규모 공매도만 가능하지만 기관투자자는 대규모 공매도가 가능해서 시장을 교란시킬 수 있다. 이 피해는 고스란히 일반투자자의 몫이 되는 구조다. 따라서 기관투자자의 공매도에 대한 감시기능을 강화하는 쪽으로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게 금융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업계 관계자는 “공매도 제도는 그 자체가 자본력이 작은 일반투자자들에게 불리한 제도이므로 공매도 자체를 금지하거나 기관의 공매도를 엄격하게 감시하고, 공매도 금액과 횟수에 제한을 두는 등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CNB=손정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