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 주주총회 의결권 대리행사제도인 셰도우보팅이 폐지되면서 주총 분산 개최가 화두로 떠올랐다. 금융당국이 주총 분산 개최를 유도하고 있지만 제도 미비 등으로 아직 참여율이 저조한 것으로 조사됐다. 16일 서울 양재동 본사에서 열린 현대자동차 주총 모습. (사진=연합뉴스)
정부가 경영 투명화와 소액주주들의 주주총회 관심을 높이기 위해 의결권 대리행사 제도인 ‘섀도우보팅’을 폐지하고 ‘주총 자율분산’을 추진하고 있지만, ‘슈퍼 주총데이’가 여전한 것으로 파악됐다. 주총 분산 프로그램 참여율이 30%대에 머물고, 올해도 오는 23일 등 특정일에 주총이 집중적으로 개최된다. 이유가 뭘까. (CNB=손정호 기자)
‘주총 날짜 쪼개기’ 큰 효과 못봐
대주주 지분 높은 기업들 ‘시큰둥’
결산일 조정 등 제도개선 우선돼야
섀도우보팅은 정족수 미달로 주총이 무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참석하지 않은 주주들의 투표권을 인정하는 제도다.
가령 동일한 지분을 소유한 주주 100명 중 주총에 참석한 주주가 10명이고 이들 중 7명이 안건에 찬성하고 3명이 반대했다고 치자. 이 경우 실제로는 의결권을 행사한 지분이 10%(10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출석하지 않은 나머지 지분율 90%(90명)에 대해서도 똑같은 비율로 표결에 참여한 것으로 간주한다.
섀도우보팅은 1991년 도입됐지만 ‘대주주의 경영권 강화 수단으로 악용돼 소액주주들의 발언권을 왜곡한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자 국회는 2017년까지만 이 제도를 유지키로 관련 법안을 개정했다.
올해 주총부터는 섀도우보팅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주총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의결 정족수 25%를 충족해야 한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은 최근 ‘주총 자율 분산 프로그램’을 처음 시행했다. 주총 집중 예상일인 3월 23일과 29일, 30일을 피하겠다고 신청한 기업에 대해서 △불성실 공시 벌점 감경 △공시 우수법인 평가 가점 △지배구조 요건 미달에 따른 관리종목 지정 예외사유 고려 △전자투표 및 전자위임장 수수료 감경 등의 혜택을 주는 제도다.
하지만 참여율은 낮았다. 상장회사협의회와 코스닥협회에 따르면 해당 프로그램 참여율은 코스피와 코스닥 상장사를 합해 627곳으로 12월 결산법인 1950곳의 32.3% 수준이다.
여전히 기업들의 주총은 특정일에 몰려있다. 상장회사협의회 홈페이지에 공개된 기업들의 주총 일자를 보면, 코스피 상장사의 경우 3월 23일(296개), 16일(84개), 30일(77개), 28일(70개), 22일(52개) 순으로 주총이 집중돼 있다.
가장 많은 23일에는 삼성전자, 삼성SDS, 삼성SDI, 삼성전기, 삼성화재, 현대해상, 현대백화점, 현대산업개발, 한화테크윈, 롯데지주, 롯데쇼핑, 롯데손해보험, 롯데칠성음료, 우리은행, KB금융, 메리츠금융지주, 메리츠화재, 한국금융지주, 대우건설, 한진칼, 대한항공, 한국콜마, 농심홀딩스, 크라운제과, 하이트진로 등이 주총을 연다.
28일에는 현대미포조선, 현대리바트, SK하이닉스, 한화투자증권, 두산건설, 두산중공업, 두산인프라코어, 두산엔진, CJ CGV, 한전KPS, 대한해운 등이, 22일에는 삼성물산, 삼성중공업, 삼성카드, 삼성엔지니어링, 삼성바이오로직스, 현대홈쇼핑, SKC, 롯데정밀화학, 신한지주, 교보증권, NH투자증권, 대림산업 등이 주총을 갖는다.
30일에는 현대로보틱스, 현대상선, SK증권, 롯데하이마트, 두산, 넷마블게임즈, 금호산업, 한국전력공사, 아시아나항공, 쌍용자동차, 오리온, BGF리테일 등의 주총이 예정돼 있다.
앞서 16일에는 현대자동차, 현대건설, 현대글로비스, 현대제철, LG전자, LG화학, LG유플러스, LG생활건강, 메리츠종금증권, 신세계, 이마트, GS리테일, 아모레퍼시픽, 한샘, 금호석유화학 등이 주총을 개최했다.
코스닥 상장사도 비슷하다. 23일(242개), 30일(193개), 28일(190개), 27일(110개), 22일(101개), 26일(95개)에 주총이 집중적으로 열린다.
▲섀도우보팅 폐지에 따라 정상적인 주주총회 운영을 위해서는 표준정관의 회계결산 기준일을 회사 자율로 하도록 수정할 계획이다. 지난 1월 말 정부 서울청사에서 열린 ‘상장회사 주주총회 지원 TF’에서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대주주 지분 정족수 넘어
이처럼 ‘슈퍼 주총데이(특정일 집중)’가 여전한 이유는 뭘까.
우선 최대주주(특수관계인 포함) 지분율이 25%를 상회하거나 육박할 경우, 섀도우보팅 폐지에 따른 영향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소액주주나 외부 기관투자자의 주총 참석이 절실하지 않은 상장사들은 굳이 ‘슈퍼 주총데이’를 피해야 할 이유가 없다.
실제로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전자, 롯데지주 등 주요 대기업들은 모두 대주주 지분율이 높다.
삼성전자는 삼성생명(8.19%), 삼성물산(4.61%), 이건희 회장(3.84%) 등 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지분율이 20%다. 현대자동차도 현대모비스(20.78%), 정몽구 회장(5.17%), 정의선 부회장(2.28%) 등 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지분이 총 28.24%에 이른다.
LG전자는 지주사 LG가 지분 33.67%를 보유한 단일 최대주주이고, 롯데지주는 롯데알미늄(15.29%), 일본 롯데홀딩스(9.89%), 신동빈 회장(9.07%), 롯데장학재단(8.69%), 신격호 총괄회장(6.83%), 신동주 전 부회장(3.96%) 등 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지분이 63.05%다.
금융당국의 ‘상장회사 주주총회 지원 TF’ 활동이 너무 늦게 시작된 점도 한계로 꼽힌다.
한 재계 관계자는 CNB에 “외부 감사와 재무제표 작성 등 기업의 중요 일정을 고려할 때 아무리 늦어도 작년 11월에는 주총 분산 홍보를 시작했어야 했다”며 “올해 첫 시행됐음에도 32% 정도의 상장사들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것을 두고 적다고 할 수는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기업 입장에서는 사업보고서 제출과 법인세 신고 납부 등에 소요되는 기간이 있어 주총을 앞당기기는 힘들다”며 “주총 날짜가 자연스럽게 분산되려면 다른 제도들도 함께 개선될 필요가 있다. 기업에게만 (주총일 집중의) 책임을 돌리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설명했다.
주총 날짜를 쪼갤 대책은 없을까. 재계에서는 우선 회계결산 기준일이 개선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상법에 의하면 주주 명부를 작성한 결산 기준일로부터 3개월 이내에 주총을 열어야 한다. 상장사들에 제시하는 표준정관에 결산 기준일이 12월 31일이어서 상장사들의 정관에도 결산 기준일이 같은 날로 되어 있다. 3개월 이내인 3월 말까지 주총을 열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에 금융당국은 정관을 수정할 예정이다. 주총 기준일을 결산기말인 12월 말로 일률적으로 정한 것을 회사 자율로 하고, 결산기말로부터 3개월 이내 주총을 열게 돼 있는 규정도 폐지할 예정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CNB에 “올해 주총 시즌이 끝나면 분산 프로그램이 효율적으로 운영됐는지 검토할 것”이라며 “상장사 정관에 대부분 3월 말까지 주총을 마치게 되어 있어서 상장사협의회를 통해 표준정관 개정을 유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CNB=손정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