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모터스튜디오 고양'에서는 자동차의 태곳적 모습부터 완성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보고 듣고, 체험할 수 있다. (사진=이노션)
기업에겐 저마다 그루터기가 있다. 태동기에 그것은 구호 같은 말로써 부각되지만, 안정기에 접어들어 그것은 공간으로써 구체화 된다. 실체가 없어 사라지는 덧없는 말보다 시각적 잔상이 확실한 ‘장소’가 오늘날의 기업 그루터기다.
기술적 성과, 기업의 미래 등을 제시하는 것이 일반적 형태다. 과거와 현재를 톺아보고, 그간의 발전 과정을 소개하고, 따라서 달성할 수 있다는 소개와 제시의 장이다.
본보기가 있다. 국내와 중국, 러시아 등에 산재돼 있는 ‘현대모터스튜디오’이다. 이 중 경기도 고양에 있는 스튜디오는 현대자동차의 과거, 오늘, 미래를 잇는 총체라 할 수 있다. 철광석, 코크스 등 까끌까끌한 원료를 시발점으로 매끈한 완성차가 등장하는 장면까지 모두 공개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차의 속도에 미치는 바람을 직접 맞아보거나 에어백을 터트려보며 안전의 정도까지 체감 가능하니, 자동차 회사가 내보일 수 있는 모든 것이 집약됐다고 할 수 있다.
문화를 매개로 한 몇몇 변형도 있다. 주력 사업과는 별개로 사회적 영향을 고려한 시도다. 가령 제약회사가 운영하는 미술관, 극장이 개관한 도서관, 백화점 내 자리 잡은 갤러리 등이다.
한미약품이 설립한 한미사진미술관은 국내 첫 사진미술관으로서 의미가 크다.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의 아내이자 사진작가인 송영숙 관장이 이끌고 있다. 전시를 여는 것은 물론, 한미사진예술상을 제정해 사진작가들을 후원하고 있다. 관람과 메세나 활동이 잇닿아 있다. 롯데백화점은 10개 롯데갤러리를 마련해 작가에겐 전시 기회를, 방문객에겐 문화 향유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국내 1위 극장사업자 CGV는 2015년 CGV명동역점에서 가장 큰 182개석 규모의 상영관을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라는 이름의 도서관으로 리뉴얼해 열었다. 일반 서적과 함께 영화의 원작과 시나리오 등을 비치해 영화 보는 재미를 더했다. 지난해에는 부천점에 접근성이 한층 좋아진 도서관을 열었다. 도서 대여는 물론 청소년·청년 진로지원, 독서 문화프로그램을 운영해 인근 주민들이 반색하고 있다.
약(藥)과 미술, 영화와 책, 물건을 파는 백화점이 여는 전시회. 언뜻 개연성은 없어 보이나 이 또한 오늘날의 그루터기다. 사업과는 다른 내보이고 싶은 것, 이윤과 표출 간 상관관계의 벽이 다분히 허물어진 형태다.
'Culture & Biz'를 표방하는 CNB뉴스는 그동안 경제 기사의 새로운 틀을 제시해 왔다. 이야기 형식을 취해 심층보도하는 ‘뉴스텔링’, 기업의 사회공헌을 건조하기 않게 시각적 효과를 더해 소개하는 ‘문화가 경제’ 등 문화와 경제라는 이질적인 두 분야에서 접점을 찾아 멀지않음을 증명했다. 기성 언론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 작지만 의미있는 반향을 일으켰다. CNB뉴스의 원론적 그루터기는 혁신이다.
목련이 새하얗게 내려앉는 봄, 또 다른 시도인 ‘기업 그루터기’를 연재한다. 기업의 여러 현상이 담긴 공간들을 옹골지게 소개하겠다. 파릇파릇한 봄철 밥상처럼 싱그럽게 차려 내놓겠다.
(CNB=선명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