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제천 시내 한 교차로에 화재 참사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도기천 기자)
“말이 시(市)지, 서울의 한 개 동네만한 데가 제천이예요. 한다리만 건너면 누구나 다 아는 사람들이지요. 자주 가던 슈퍼마켓의 사장님도 돌아가셨어요” (제천역 앞 상인 한모씨)
화재 참사가 발생한지 1개월 되던 날인 지난 20일, 제천 시내는 여전히 침묵에 잠겨 있었다.
당시 참사가 고장 난 안전체계에서 비롯된 인재(人災)로 밝혀지고 있는 가운데, 유족들이 진상 규명에 나서면서 그날의 악몽은 시민들의 뇌리에서 좀체 가시지 않고 있다.
제천시 인구는 13만 6천여명이다. 여기서 읍·면지역을 빼면 시내 인구는 더 줄어든다. 서울의 1개 구(區) 인구가 40~50만명 정도 되니 서울 기준으로 보면 ‘동네만한 곳’이 제천인 셈이다. 이렇다보니 화재 참사 희생자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제천시민이 절반 이상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태백산 눈꽃축제’ 기간임에도 제천역사가 한산하다. 중앙선, 태백선, 충북선이 만나는 제천역은 눈꽃축제 환승 인파로 붐비는 곳이지만, 이번에는 화재 참사 영향으로 썰렁하다. (사진=도기천 기자)
붐비던 역사, 태백 축제에도 ‘한산’
CNB 취재진은 화재가 발생한 제천 하소동 스포츠센터와 2킬로미터 가량 떨어진 제천역사 부근을 둘러봤다. 역 앞에는 제천 최대 재래시장인 한마음시장과 중앙시장이 자리 잡고 있다.
시장에서 22년째 해장국집을 운영하고 있는 오모씨는 “가뜩이나 경기가 좋지 않아 매출이 예전만 못한데, 그(화재) 사건 이후 손님이 절반은 줄어든 것 같다”며 한숨을 쉬었다. 기자가 ‘화재’ 얘기를 꺼내자 손을 저었다. 그날의 충격과 슬픔은 지역민들에게 큰 정신적 상처를 남긴 것 같았다.
제천역은 중앙선과 태백선이 만나고 충북선도 탈 수 있는 철도교통의 요지다. 서울역에서 강원도 철암으로 가는 중부내륙순환열차(O-train)도 제천에서 정차한다.
특히 기자가 방문한 지난 20일은 국내 최대 겨울 축제인 ‘태백산 눈꽃축제’가 시작된 첫 주말이었다. 50만명 이상이 찾는다는 이 축제장에 기차편으로 가려면 제천역을 거쳐야 한다. 그래서 태백산 축제 기간이면 제천역은 전국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로 붐볐다. 역 앞 재래시장을 둘러보는 일은 이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여행코스였다.
하지만 상인들은 올해 관광객은 예년의 절반 수준도 안된다고 전했다. 화재 참사 영향 탓에 사람들은 제천에서 환승하지 않고 곧장 태백으로 가고 있다.
▲제천 최대 재래시장인 한마음시장. 주말인데도 한산하다. (사진=도기천 기자)
겨울 한파가 한풀 꺾인 날씨인데도 시장통은 한산했다. 점심시간에도 식당에는 빈 테이블이 넘쳤고, 상인들만 분주히 오가며 각종 재료를 나르고 있었다.
거리에도 인적이 드물었다. 중앙시장 앞 교차로에는 ‘화재 참사 희생자들을 명복을 빈다’고 적힌 현수막이 겨울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길에서 만난 한 시민은 “그날(화재참사) 이후 사우나를 가지 못하고 있다. 불안해서이기도 하지만 (돌아가신) 그분들이 떠오를 것 같다”고 말했다.
▲제천역 앞 거리 풍경. (사진=도기천 기자)
제2의 세월호? 의문 ‘눈덩이’
제천 시민들의 고통은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세월호 참사 때 희생자들이 살았던 경기도 안산시가 오랜 세월 동안 슬픔에 잠긴 이유는 사건 자체의 충격도 컸지만,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제천 화재 또한 진상이 밝혀질 때까지 분노와 슬픔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29명의 희생자를 기리고 있는 제천 화재 합동분향소 벽에는 속절없이 떠나보낸 희생자를 그리워하는 글들이 빼곡히 붙어 있다.
유족들은 이번 사건이 ‘제2의 세월호’와 다름없다며 진실 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구조대가 제때 진입하지 못한 이유, 공개되지 않고 있는 무전 기록, 건물유리창을 깨지 못한 이유 등 의문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충북소방본부장 등 소방당국 지휘부 4명이 직위 해제된 가운데, 정부와 국회는 제2의 화재 참사를 막기 위한 관련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