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문을 연 ‘이케아 고양점’과 ‘롯데아울렛’의 지난 31일 모습.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에 따르면 아울렛은 의무휴업대상이고, 이케아는 적용을 받지 않는다. (사진=도기천 기자)
신세계의 초대형 복합쇼핑몰 ‘스타필드 고양’이 지난 8월 개장한데 이어, 10월에는 ‘이케아 고양점’과 ‘롯데 아울렛’이 스타필드와 3㎞ 떨어진 곳에 문을 열면서 이 일대가 유통대기업들 간 경쟁 열기로 달궈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케아는 새로 강화될 유통산업발전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반면, 신세계와 롯데는 규제 대상에 포함돼 형평성 논란이 일고 있다. CNB가 지난 31일 이곳을 찾아가 문제점을 짚어봤다. (CNB=도기천 기자)
패스트푸드·음식점·커피숍…놀이시설까지
인형·완구·그릇도 가구? 사실상 변칙영업
시민들 “외국기업이라 특혜 줬나?” 의문
“이케아도 쉬어야 한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지난 8월 ‘스타필드 고양’ 개장식장에서 정부의 복합쇼핑몰 규제 방침에 대한 생각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케아를 향해 돌직구를 날렸다. 사실상 쇼핑몰이지만 가구전문점으로 분류돼 법망을 피하게 된 이케아를 언급하며 불만을 나타낸 것. 정 부회장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열심히 하는 게 기업의 사명이지만 이케아가 쉬지 않는 점은 아쉽다”고 말했다.
CNB가 직접 가서 보니 정 부회장의 심정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경기 고양시 덕양구에 위치한 이케아 고양점은 부지면적 총 5만2000㎡, 연면적 16만6600㎡ 규모로 단일 매장 기준 세계 최대다.
총 주차대수 2400대인 지하주차장에서 롯데아울렛이 연결돼 있고 아울렛을 거쳐야 이케아로 이동할 수 있다. 롯데는 지하1층과 2층을, 이케아는 지상1층과 2층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두 곳은 전혀 구분된 느낌이 들지 않았다.
롯데아울렛에는 총 120여개 브랜드가 입점해 있으며, 이케아와의 시너지 효과를 위해 상품군 구성비를 일반 도심형 아웃렛의 두 배 수준으로 늘렸다고 한다.
▲이케아는 가구 외에도 2만여 점의 생활용품을 판매하고 있다. 또 푸드코트(맨 아래 사진)에는 전문음식점들과 커피숍, 레스토랑 등이 입점해있다. (사진=도기천 기자)
아울렛을 둘러보다 자연스럽게 에스컬레이터에 몸을 맡기면 이케아의 ‘쇼룸’이 나타난다. 30여평 넓이의 아파트 내부를 그대로 옮겨놓고 침실과 거실, 화장실, 드레스룸, 주방과 식당을 이케아의 맞춤형 ‘홈퍼니싱’ 제품들로 장식한 일종의 가구전시관이다. 인테리어 소품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가구류로 구성됐다는 점에서 ‘이케아 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공간을 벗어나면 일반쇼핑몰과 거의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 이케아 2층에 자리잡은 식당가(푸드코트)에는 패스트푸드, 전문음식점, 커피숍 등 다양한 식음료업체들이 입점해있었다. 주문대 앞에는 평일인데도 줄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또 기존 광명점처럼 스몰란드(어린이 놀이공간), 레스토랑 등 가족형 휴게공간도 갖추고 있었다.
1층의 ‘홈퍼니싱 액세서리’ 코너에서는 가구 외에도 수십 종류의 인형과 완구를 비롯, 욕실용품·밀폐용기·텀블러·식기류·후라이팬·타올·조명기기 등 생활용품 일체를 판매하고 있었다. 무려 2만여 점에 이른다고 하니, 사람이 실내에서 사용하는 모든 도구를 팔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듯했다.
▲이케아 고양점과 같은 건물 내에 입주해 있는 롯데아울렛. 유통산업발전법이 개정되면 롯데아울렛은 의뮤휴무일에 문을 닫고 이케아는 영업을 하게 되는 이상한 모양새가 된다. (사진=도기천 기자)
전체적인 느낌은 신선식품을 취급하지 않는다는 점만 제외하면 백화점, 마트와 흡사해 보였다. 아래층의 롯데아울렛과 구분이 안 될 정도였다.
이곳에서 만난 주부 곽모(36) 씨는 CNB에 “가구 뿐 아니라 다양한 주방용품을 구경할 수 있고 먹을거리도 많아 (개점 이후) 벌써 3번째 이곳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롯데아울렛은 의무휴업일 적용이 예정된 상태며, 이케아는 적용대상이 아니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29일 기존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에 국한된 월2회 의무휴업을 스타필드, 아울렛 등 대형쇼핑몰(매장면적 3000㎡ 이상) 전체로 확대하는 내용의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당정은 문재인 대통령의 골목상권보호 공약에 따라 홍 의원이 낸 개정안을 적극 검토 중이다.
하지만 이케아는 쇼핑몰이 아닌 ‘가구 전문점’으로 분류돼 이런 규제의 칼날을 피하게 됐다.
▲이케아는 가구전문점으로 등록해놓고 푸드코트와 레스토랑(사진) 등을 운영하며 사실상 변칙영업을 하고 있다. (사진=도기천 기자)
스타필드에 입점한 한샘은 규제 대상
유통업계는 이케아가 다양한 생필품을 판매하고 있는 만큼 동일하게 의무휴업을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롯데·신세계·현대백화점 등 유통기업들은 이 지역에 공들인 결실을 이케아가 독차지할까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이케아와 롯데몰, 스타필드 등이 위치한 고양시 덕양구에는 2만2000여 세대가 들어선 삼송원흥지구가 조성돼 있으며, 바로 옆에서는 8700여 세대의 향동지구, 8900여 가구의 지축지구가 개발이 한창이다. 개발이 완료되는 2020년 무렵에는 인구 10만 여명 이상이 거주하는 신도시가 형성될 예정이다.
유통기업들은 이 지역에서 치열한 각축을 벌이고 있는데, 상대적으로 의무휴업 규제를 받지 않는 이케아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지형이 된다는 것이다.
이케아 측은 ‘홈퍼니싱’라는 특정 분야에 특화돼있어 쇼핑몰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주장하고 있다. 홈퍼니싱(home-furnishing)은 가구나 조명, 인테리어 소품 등으로 집안을 꾸밀 수 있는 제품을 일컫는다. ‘가구’의 범위를 넓게 봐달란 얘기다.
형평성 논란이 일자 중소벤처기업부는 최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가구, 전자제품, 식자재 등 대규모 전문점에 대한 영업규제 필요성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시민들도 이케아만 규제에서 제외되는 건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케아에서 만난 주부 최모(45) 씨는 “의무휴업규제에 찬성하는 편은 아니지만 외국기업(이케아)에게 특혜를 주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며 “굳이 규제를 강화한다면 당연히 공평하게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신세계의 ‘스타필드 고양’. 이케아 고양점은 이곳으로부터 3㎞가량 떨어져 있다. (사진=도기천 기자)
국내 가구업체와의 형평성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스타필드 고양점에 입점해 있는 한샘의 한 관계자는 CNB에 “의무휴업을 하게 되면 입점업체도 해당일에는 쉬게 되는데, 그리되면 같은 가구업체인데도 우리는 문을 닫고 이케아는 문을 열게 된다”며 “유통규제가 일괄 적용돼야 골목상권 보호라는 취지도 살릴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한샘은 최근 스타필드 고양점에 3600㎡(약1100평) 규모의 매장을 오픈해 가정용가구와 생활용품, 부엌가구, 리모델링 관련 제품들을 판매하고 있다.
한편으론 의무휴업 규제의 실효성 자체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전 한국유통학회 회장)가 최근 국회 세미나에서 발표한 분석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전통시장에서의 소비금액은 의무휴업 도입 전인 2010년보다 3.3% 줄었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쇼핑몰인 이케아에 의무휴업을 적용하는 건 당연한 이치며, 이 문제와 별개로 정부가 쇼핑몰규제에 대한 정책을 원점에서 검토해주길 바란다”며 “규제일변으로 가다 보면 재래상권, 유통기업 할 것 없이 전부 침체의 늪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