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곡지구 중심부인 마곡역 인근의 17일 오전 풍경. (사진=도기천 기자)
‘마곡(麻谷)’은 삼을 많이 일궜던 곳이라는 데서 유래된 마을 이름이다. 서울 강서구 마곡지구(마곡동 308번지 일대)는 십여년 전 서울시가 택지개발지구로 지정해 첫 삽을 떴다. 지금은 최첨단 미래도시로 빠르게 탈바꿈하고 있다. 수만 세대의 아파트와 오피스텔, 1백여 개의 기업 사옥, 아시아 최대 규모의 식물원 등으로 상전벽해(桑田碧海)를 이루고 있는 이곳을 CNB가 17일 다녀왔다. (CNB=도기천 기자)
최첨단 빌딩숲…곳곳엔 공사 한창
100여개 기업 ‘거대산업단지’ 이뤄
인근 상암DMC와 시너지효과 기대
서울 연희동에 자리 잡은 CNB사옥에서 마곡지구까지는 채 30분이 걸리지 않았다. 양화대교에서 올림픽대로를 타고 김포방향으로 달리다 가양대교 밑에서 강서구로 접어드니 마곡지구 초입이 보였다.
‘서울의 마지막 노른자위 땅’이라 불리는 마곡지구의 규모는 축구장 513배 크기(366만5000㎡)다. 여의도 전체 면적(290만㎡) 보다도 휠씬 크다.
부지 곳곳에 건축자재를 가득 실은 덤프트럭들이 분주히 오가고 있었으며, 여기저기 공사가 한창이었다. 온전히 제 모습을 갖춘 빌딩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이제 막 터파기를 시작한 곳도 여럿 있었다.
아파트 단지는 이미 완공돼 거대한 콘크리트 숲을 이루고 있었다. 이곳에는 총 16개 단지 1만201가구가 예정돼 있는데, 이미 14개 단지 9715가구는 입주를 끝냈다. 나머지 2개 단지도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다. 오피스텔 수십개 동도 완공돼 2015년 3107실, 2016년 7238실, 올 상반기 3377실이 주인을 만났다고 한다.
빌딩 숲들 사이에 자리 잡은 넓은 녹지공간들도 인상적이다. 서울시는 마곡지구에 공원 16곳과 녹지 56곳을 조성해 전국에서 가장 공원이 많은 ‘힐링타운’을 실현할 계획이다.
한쪽에선 여의도공원 두 배 크기(50만4000㎡)의 ‘서울식물원’이 제모습을 갖춰가고 있었다. 열린숲공원, 식물원, 호수공원, 습지생태원으로 조성될 이 식물원은 세계 12개 도시에서 볼 수 있는 식물들이 전시될 예정이다. 한강 풍경과 옛 마곡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 도시와 자연이 공존하는 아시아 대표 녹색명소로 조성돼 내년에 문을 연다.
▲LG사이언스파크 전체 16개 동 중 1차 완공 돼 최근 입주한 6개 동의 모습. 부근에는 나머지 동의 건립공사가 한창이다. (사진=도기천 기자)
LG맨 2만2000명 마곡으로
특히 마곡지구에는 대규모 기업타운(산업단지)이 조성되고 있다. 상업용지가 100% 매각 완료돼 신사옥들이 이미 입주했거나 준공을 앞두고 있다. 그간 14개 기업이 입주를 완료했으며, 오는 2019년까지 90여개 기업이 추가로 들어설 예정이다.
가장 큰 규모는 재계 순위 3위 LG그룹이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LG사이언스파크’다. 축구장 24개를 합친 17만㎡ 부지에 연면적 111만㎡ 규모로 조성돼 2020년 최종 완공될 예정인데, R&D센터로는 국내 최대 규모다. LG그룹은 LG CNS 본사를 비롯해 LG전자 LG화학 LG디스플레이 LG이노텍 LG유플러스 LG생활건강 LG하우시스 등 8개 계열사 연구개발(R&D) 인력 2만2000여명을 이곳에 집결시킬 계획이다.
이는 규모 면에서 마곡지구 개발사업의 결정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LG사이언스파크는 전체 16개 동으로 설계됐는데 이중 6개 동이 최근 완공돼 LG전자 연구원 9000여명이 지난 10일부터 출근을 시작했다.
이들로 인해 한산했던 지하철 5호선 마곡역은 출퇴근 인파로 붐비고 있으며, 부동산 시세도 들썩이고 있다. 마곡엠벨리 7단지의 전용면적 84㎡ 아파트가 최근 몇 개월 사이에 5000만원 올라 9억2000만원에 거래됐으며, 공급 과잉이 우려됐던 오피스텔도 공실이 줄고 있다.
인근 부동산 관계자는 CNB에 “한때 입주기업이 많지 않아 황량했었는데 LG가 입주하면서부터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며 “경기 파주, 안산 등지에 흩어진 LG 연구인력이 이곳으로 옮겨오면서 8.2부동산 대책에도 아랑곳 않고 매매·임대 가격이 오르는 추세”라고 말했다.
▲LG사이언스파크의 각 동들은 브릿지(공중통로)로 연결돼 있다(위). 지역주민에게 개방된 로비(아래). (사진=도기천 기자)
LG가 이 거대한 연구센터를 굳이 ‘사이언스파크’라고 명명한데는 ‘소통과 개방’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실제로 ‘파크(공원)’라는 이름에 걸맞게 건물 안팎을 주민들에게 개방했다. 기자가 출입증 없이 건물 로비와 바깥에 조성된 공원을 한참 돌아다녀도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았다. 보안 문제로 출입이 통제된 대부분 IT기업의 사옥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서울 역삼동에 있는 LG아트센터를 마곡으로 이전하려는 것도 이런 맥락으로 읽힌다. LG는 부지 2만3000㎡, 연면적 1만5000㎡에 1500석 이상의 대규모 오페라 공연장, 소공연장 등을 갖춘 시설을 2020년까지 완공해 서울시에 기부채납 할 예정이다.
▲롯데중앙연구소 전경. 롯데그룹 식품부문 계열사 4곳의 모든 연구 활동이 이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사진=도기천 기자)
“아 역시 롯데는 ‘껌’이었지”
LG 다음으로 주목받는 기업은 롯데다. 롯데는 지난 6월 1일 중앙연구소를 완공해 입주했다. 국내 대기업 중 맨 먼저 ‘마곡 시대’를 연 것. 총 2247억원이 투입돼 2년에 걸쳐 준공된 이 연구소는 지하 3층, 지상 8층에 연면적 8만2929㎡로 기존 양평연구소보다 5배 이상 크다.
이곳에서는 롯데제과, 롯데칠성음료, 롯데푸드, 롯데GRS(롯데리아) 등 롯데그룹 식품사업 부문의 모든 연구 활동이 이뤄지고 있다. 식품 연구개발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한편 식품사업의 미래를 개척하는 전진기지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의지다. 또 롯데백화점, 롯데마트, 롯데슈퍼, 세븐일레븐 등 롯데유통사 제품의 안전성 강화를 위한 다양한 시스템을 갖췄다.
근무환경도 최첨단이다. ‘일과 가정의 양립 추구’라는 목표 하에 업무와 휴식을 병행할 수 있는 커뮤니티 광장, 어린이집과 엄마사랑방, 피트니스센터 등을 조성했다.
▲롯데중앙연구소 1층에 자리 잡은 ‘뮤지엄 엘(Museum L)’. 롯데의 어제와 오늘을 만날 수 있는 작은 박물관이다. (사진=도기천 기자)
그 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끈 공간은 연구소 1층에 자리 잡은 ‘뮤지엄 엘(Museum L)’. 롯데의 어제와 오늘을 만날 수 있는 작은 박물관이다.
영상물과 전시를 통해 롯데의 식품사업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롯데칠성음료의 전신인 동방청량음료 때부터 사용된 음료혼합기 등 롯데의 오래된 공장기계가 전시돼 있으며, 한켠에는 초코파이, 꼬깔콘, 카스타드, 가나초콜릿, 칠성사이다 등 추억의 제품들을 만날 수 있다.
특히 ‘껌’에 대한 롯데그룹의 애착이 느껴졌다. 해방 직후 신격호(96) 창업주는 미군을 상대로 껌을 생산·공급하는 사업에 뛰어들어 큰돈을 벌었고, 이것이 롯데 창업의 동력이 됐다. “껌이라면 역시 롯데껌”이라는 역대급 CM송 대로 ‘청년 신격호’는 늘 품에 롯데껌을 가지고 다녔다고 한다. 이를 기리듯 롯데제과 영등포공장에서 1972년부터 사용된 껌포장기가 박물관 입구를 지키고 있다.
▲‘뮤지엄 엘’ 입구에는 롯데제과가 1972년부터 사용한 껌포장기가 전시돼 있다. 롯데는 ‘껌’을 생산하며 시작된 기업이다. (사진=도기천 기자)
사통팔달·풍부한 녹지 ‘매력’
이랜드그룹도 마곡지구에 대규모 글로벌R&D센터를 구축하고 있다. 지상 10층·지하 5층, 연면적 25만㎡규모의 건물에 이랜드월드·이랜드리테일·이랜드파크·이랜드건설 등 10개 계열사 연구소가 들어설 예정이다. 의·식·주·휴·미·락 등 6대 사업영역을 포괄하는 이 센터를 통해 글로벌 위상을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특히 이랜드의 핵심 사업인 패션 부문의 연구소는 단일 규모로는 세계 최대 수준이다. 패션기획·디자인·첨단섬유소재·생산전략·잡화디자인 등 5개 연구소로 이뤄졌으며, 상품기획부터 소재개발, 디자인, 생산과정을 거쳐 소비자에 이르는 패션산업의 전 과정을 직접 보고 체험할 수 있다. 이밖에 지난 40여년 간 이랜드의 패션 사업 발자취와 독특한 콜렉션들을 한 자리에 모은 패션 박물관, ‘한식 세계화’ 허브 역할을 실행할 외식연구센터 등도 함께 들어설 계획이라고 한다.
코오롱인더스트리와 코오롱글로텍, 코오롱생명화학 등 코오롱 계열 3개사도 마곡지구에 둥지를 튼다. 연구 인력 1000명 이상이 상주하는 ‘미래기술원’의 내년 2월 준공을 앞두고 막바지 내장 공사가 한창이다.
이밖에 희성그룹, 에쓰오일(S-OIL), 넥센타이어, 아워홈 등 2019년까지 90여개 기업이 들어올 예정이다. 1000병상 규모의 대형 병원인 이화의료원도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서울시와 강서구는 마곡지구가 완성되는 2020년 경이면 매년 10만명 이상의 고용유발 효과와 40조원 이상의 생산유발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마곡지구 위치도(위)와 전경. (서울주택도시공사 제공)
기업들이 이곳으로 몰리는 이유는 사통팔달의 지리적 장점과 풍부한 녹지 공간 때문이다. 올림픽대로, 강변북로, 서부간선도로 등이 인접해 여의도·종로·강남 등 서울 도심 곳곳과 쉽게 연결되며,. 9호선 마곡나루역과 5호선 마곡역이 자리잡고 있어 출퇴근도 편리하다. 식물원과 공원 등 녹지가 서울에서 가장 풍부하다는 점도 기업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마곡과 가양대교를 사이에 두고 북쪽에 IT·미디어산업의 메카로 조성된 상암DMC(디지털미디어시티)가 위치한 점도 매력 포인트다. DMC에는 MBC글로벌미디어센터, YTN, SBS프리즘타워, KBS미디어센터, 한국경제신문·TV, 중앙·조선·동아일보의 종합편성채널 방송국과 CJ E&M, LG CNS, LG U+, 팬택R&D센터, 누리꿈스퀘어, 한샘 등 대기업 수십여 곳이 둥지를 틀고 있다.
마곡 입주기업의 한 관계자는 CNB에 “아직은 공사 중인 곳이 많아 어수선한 분위기지만 수년 뒤에는 IT·미디어의 중심의 상암과 R&D 중심의 마곡이 서로 크게 시너지를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