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스타의 금호타이어 매각가 인하 요구가 받아들여지면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다시 우선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박 회장(왼쪽)과 금호타이어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의 이동걸 회장. (사진=연합뉴스)
금호타이어 매각이 원점으로 돌아가면서 금호타이어의 최대주주이자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의 행보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산은은 우선협상 파트너인 중국의 더블스타에게 최대 2700억원에 달하는 상표권 사용료를 우회지원하고 당초 협약된 매각가격을 깎아주는 등 끌려 다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금호타이어를 되찾겠다는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에게는 냉정한 잣대를 적용해 비난에 직면한 상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CNB=도기천 기자)
더블스타 배짱 전술…매각가 반토막 위기
오락가락 산은, 다시 박삼구 회장과 협상
중국기업 상술에 놀아나다 기회 놓친 꼴
산은이 이달 안에 끝내겠다고 공언한 금호타이어 매각이 사실상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금호타이어 주주협의회(채권단 회의)에서 금호타이어의 매각가격을 내리는 쪽으로 가닥을 잡으면서 박삼구 회장의 우선매수청구권이 다시 살아났기 때문이다.
애초 박 회장이 이번 인수전에서 배제된 사연은 이렇다. 산은을 비롯한 우리은행·KB국민은행 등 채권단은 지난 3월 더블스타에 금호타이어 보유지분 42.01%와 경영권을 9550억원에 넘기는 주식매매계약(SPA)를 체결하면서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에게 우선매수청구권을 부여했다.
우선매수권은 채권 소유자가 주식을 제3자에게 매도하기 전에 채무자가 같은 조건으로 우선 매수할 수 있는 권리다. 박 회장이 더블스타가 제시한 9550억원 보다 1원이라도 더 써내면 금호타이어를 가져갈 수 있다는 얘기다. 금호타이어 워크아웃 당시 박 회장과 아들인 박세창 금호아시아나그룹 사장이 1130억원의 사재를 출연한 것에 대한 채권단의 보답이다.
이에 박 회장은 몇몇 기업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인수 자금을 조달하겠다는 계획을 채권단에 제안했다.
하지만 채권단은 “우선매수청구권은 박 회장 개인에게 부여한 것으로, 다른 회사를 동원해 조달한 자금은 안된다”며 박 회장의 제안을 거부했다. 결국 박 회장은 지난 4월 “산은의 부당하고 불공정한 매각 절차에 더 이상 참여하지 않고 우선매수권도 행사하지 않겠다”며 협상 포기를 선언했다.
이후 산은은 더블스타로의 매각에 속도를 냈다. 하지만 협상은 순조롭지 못했다. 금호산업이 소유하고 있는 금호타이어 상표권을 둘러싼 갈등이 있었다.
금호산업을 경영지배하고 있는 박 회장은 상표권 사용조건으로 금호타이어 매출액의 0.5%를 20년간 의무적으로 지급해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더블스타는 산은 등과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하면서 사용 요율은 0.2%, 사용 기간은 5+15년을 제시했었다. 5년간 사용료를 0.2%만 내고, 나머지 15년간은 상표권을 사용한 기간에만 0.2%를 내겠다는 것. 이 요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SPA를 파기하겠다며 배수진을 쳤다.
양측의 입장차가 크자 채권단은 더블스타와 박 회장 간의 차액을 보전해 주기로 했다. 5년간 더블스타가 부담하는 상표권 사용료율 0.2% 외에 0.3%의 사용료(450억원)와 이후 15년간 내야 하는 최대 0.5%의 차액(2250억원)을 채무이자에서 깎아주는 형식으로 지원하기로 결정한 것. 더블스타로서는 최대 2700억원에 달하는 상표권 사용료를 우회지원 받게 된 셈이다.
▲지난 4월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전국금속노조 금호타이어지회 조합원들이 금호타이어 매각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갑자기 인수가 후려치기 “왜”
더블스타의 요구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금호타이어의 실적이 약속한 것보다 나빠졌다며 매각가격을 종전 9550억원에서 8천억원으로 16.2% 낮춰달라고 주장했다.
양측이 맺은 주식매매계약에 따르면 계약 효력 종결 시점인 9월 23일 기준으로 금호타이어의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15% 이상 감소하면 더블스타가 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할 수 있다. 금호타이어는 올 상반기에 507억원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적자로 전환해 더블스타가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요건이 충족된 상태다. 이에 산은은 더블스타의 요구를 수용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되면 박 회장의 우선매수청구권은 자동으로 부활하게 된다. 애초 채권단은 9550억원의 매매가를 기준으로 박 회장에게 우선매수권 행사 기회를 줬는데, 이번에 금액이 변경됐기 때문에 달라진 금액을 기준으로 다시 박 회장에게 기회가 주어진다. 채권단은 더블스타와의 계약 변동 즉시 해당 내용을 박 회장에게 통보해야하며, 박 회장은 한 달 이내에 우선매수권 행사 여부를 채권단에게 알려야 한다.
더블스타가 박 회장에게 다시 선택권이 부여됨을 알고도 인수가격 인하를 요구한 이유는 채권단과 박 회장 간의 갈등 과정에서 자신들의 위상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산은이 박 회장 측의 컨소시엄 요구를 거절하면서 박 회장이 인수 포기선언을 했고, 이로 인해 여론이 들끓었다. 금호타이어 공장이 있는 광주·전남 지역 지자체·경제단체와 금호타이어 협력업체, 노조, 전국 1500여개 대리점주들은 각종 성명과 집회를 통해 중국기업의 인수 추진에 강하게 반발했다. 정치권에서도 산은의 결정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따라서 산은 입장에서는 시간을 끌수록 불리해지는 상황이 됐고, 서둘러 매각을 성사시키는 게 유일한 돌파구였다. 산은이 8월 말까지 금호타이어 매각을 끝내겠다고 한 것도 이 때문이다.
반대로 더블스타 입장에서는 이를 역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자신들이 유일한 협상 파트너라는 점을 이용해 ‘계약 파기’를 무기로 채권단에게 고강도의 요구조건을 던진 것이다.
▲금호타이어 경기도 용인 중앙연구소 전경. (금호타이어 제공)
박삼구 회장, 반전 기회
그러자 채권단 내에서는 “지금이라도 박 회장에게 컨소시엄을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애초 박 회장은 자신이 지분 100%를 소유한 특수목적법인(SPC)을 통해 재무적투자자(FI)와 전략적투자자(SI)를 모으겠다는 의사를 채권단에 밝혔지만 산은이 거부한 바 있다.
컨소시엄 구성이 허용될 경우, 박 회장은 애초 기준 가격 보다 최소 1000억원 이상 싸게 금호타이어를 매수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애초부터 산은이 컨소시엄을 허용했더라면 9550억원에 매매가가 형성 됐겠지만 지금은 더블스타의 요구로 인해 매각가가 사실상 8000억원대로 내려갔기 때문.
박 회장은 과거부터 금호타이어 인수에 강한 의지를 보여 왔다. 따라서 컨소시엄이 허락될 경우, 적극적으로 우선매수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를 양대 축으로 성장한 기업이다. 금호고속을 설립한 고 박인천 창업주가 타이어 확보에 어려움을 겪다 직접 타이어를 생산하기 위해 1960년 세운 ‘삼양타이야’가 금호타이어의 전신이다. 고속버스와 타이어로 시작한 금호 신화는 국내 2위 민간 항공사인 아시아나항공의 설립으로 이어졌다. 박 회장과 장남인 박세창 금호아시아나그룹 사장 모두 금호타이어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을 정도로 금호가(家)의 뿌리가 된 기업이다. 반세기 넘는 세월 동안 형성된 광주·전남 지역민들의 깊은 애정도 인수 의지의 배경이 되고 있다.
산은은 더블스타에 끌려 다니다 결국 외통수에 걸린 셈이 됐다.
더블스타의 손을 들어주면 중국기업에게 57년 역사의 향토기업을 ‘특혜 매각’ 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그렇다고 박 회장에게 컨소시엄을 허용할 경우, 애초 가격보다 최소 1000억원 이상을 싸게 파는 셈이 된다.
더불어민주당 이개호 의원은 이런 상황에 대해 “돈에만 눈이 어두워 국책은행의 본분을 망각한 결과”라고 비판했다.
한 채권은행의 관계자는 CNB에 “산은이 대우조선해양에 수조원의 자금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도덕성 논란이 일었고 이로 인해 자체 기준이 엄격해진 것으로 알고 있다. 박삼구 회장과 신경전을 벌인 것도 이 때문인데, 결과적으로 중국기업의 상술에 놀아난 꼴이 됐다”며 “여론이 들끓고 있는 상황이라 매각 자체가 연기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