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총수의 불법적이고 불투명한 경영 고리를 끊어내고 기업을 건강한 기업윤리와 투명한 경영으로 재생시킬 수 있는 강력한 법과 제도를 만들고 특히 집행을 엄중하게 하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시절 이 같이 약속했다. 문재인표 개혁의 타깃은 ‘재벌’이다. ‘재벌개혁’이라는 기치를 전면에 내세우며 대대적인 메스를 가하겠다는 것.
‘전자투표제도 의무화’ 또한 그 방편의 일환이다.
전자투표제는 회사가 전자투표시스템(한국예탁결제원)에 주주명부·주주총회 의안 등을 등록하면, 주주가 주회에 직접 참석하지 않아도 전자적인 방법(온라인)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을 말한다.
2010년부터 도입된 전자투표제는 매년 되풀이 되는 ‘슈퍼주총데이’로 인한 폐해를 줄이기 위함이다. 상장기업들은 서로 짜 맞추듯 3월에 그것도 특정일에 동시다발적으로 주총을 열고 있다.
지난 3월 24일만 하더라도 12월 결산 상장법인 2078사 중 924개사의 주총이 몰렸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일반 주주들의 참여가 어렵다. 소액주주의 의결권 행사가 심각한 수준으로 제약을 받고 있는 것. 따라서 대부분의 주총은 오너일가 대주주 및 친기업 주주들만의 잔치로 끝나는 경우가 태반으로 기업 편의적으로 사측의 안건이 일사천리로 통과되고 있다.
주총 개최날짜를 분산시키면 되지만 전 세계적으로 법률상 강제하는 곳이 없기에 주주들의 참여를 높이는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전자투표다.
하지만 유명무실하다. 전자투표제를 활용할 지 여부는 회사 자율에 맡긴 선택사항인 것. 2010년 도입 이후 2016년 6월까지 전자투표를 이용해 의결권을 행사한 주주의 평균 비율은 전체 주주대비 0.9%, 주식 수 기준으로는 1.76%로 미미하다.
올해(3월 기준)에는 전자투표 행사율이 주주 수 기준 0.2%, 주식 수 기준 2.1%로 활성화가 안 되고 있다. 경영진 등에 대한 주주감시 기능이 제대로 작동될 수 없자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전자투표제를 강제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반면, 기업들은 반대하고 있다. 일단 전자투표제의 저조한 주주권 행사율을 볼 때 활성화 여부에 강한 의문이 들고 온라인에서 루머·여론몰이 등을 통한 무조건 반대 등으로 주총의 정상적인 운영에 차질은 물론 주총 결의의 효력을 둘러싼 많은 법적 분쟁이 생겨날 소지가 있다는 것.
하지만 되묻고 싶다. 그렇다면 현재의 슈퍼주총데이 행태를 통해 건전한 경영의 촉진과 감독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 지를.
회사의 주인은 주주다. 물론 주인행세를 하자는 게 아니다. 오너(소유자)를 응당 인정하되 비판과 감시 기능이 제대로 살아나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오너라고 해도 주주를 무시한 채 마음대로 전횡을 일삼으면 안 될 일이다. 존중해야 하며 그들의 작은 소리에도 귀를 기울여 회사가 올바른 경영에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소액주주라도 당연히 목소리를 낼 권리가 있다. 그 권리를 누구도 함부로 앗아갈 수 없다. 의결권 행사를 할 수 있으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그들만의 장벽을 치고 진입을 막는다는 것은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나는 떳떳한데 의결권 행사를 못한 것은 주주의 탓이다”는 논리는 설득력을 얻을 수 없다.
전자투표제 의무화는 정부의 의지에 달렸다. 지난 2013년 박근혜 정권에서 법무부가 관련 법(상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입법예고까지 했었지만 검토·보류라는 구실로 국회에 제출되지 못한 채 흐지부지 없어진 바 있다.
새정부에서는 어떨까?
현재 국회에는 전자투표제 의무화를 담은 상법 개정안(김종인·채이배·노회찬 의원 각각 대표발의)이 계류중인 상태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였던 지난 1월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개최된 ‘대한민국 바로세우기 3차포럼’에서 전자투표 의무화 등을 공약하며 다음과 같이 밝혔다.
“특별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그동안 역대정부마다 재벌개혁을 공약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정부의 의지가 약한 탓도 있었고, 규제를 피해가는 재벌의 능력을 정부가 따라가지 못한 측면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것만큼은 꼭 하겠다는 실현가능한 약속만 하고자 합니다”
썩은 부문을 도려내고 새살이 돋도록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범하지 않고 제대로 완수해 내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