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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3일 만에 떠오른 세월호…유병언은 왜 죽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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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이정은기자 |  2017.03.23 15:27:30

▲지난 2014년 6월 유병언으로 확인된 변사체를 처음 발견한 마을 주민이 아직 현장에 남아있는 변사체의 머리카락과 뼈조각을 가리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대한민국에 큰 아픔을 안겨준 세월호가 3년 만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가운데, 유병언의 죽음이 다시 회자되고 있다. 

2014년 4월 16일 전라남도 진도군 관매도 부근 해상에서 청해진해운의 여객선 ‘세월호’가 뒤집어져 침몰했다.

당시 전체 승객 476명 중 304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다. 특히 세월호에는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나는 안산 단원고등학교 2학년 학생 324명이 탑승하고 있었으며, 250명의 어린 학생들이 희생돼 큰 충격을 안겨줬다. 

검찰과 경찰은 사고 원인을 밝혀내기 위해 대대적으로 수사를 벌였고, 세월호를 무리하게 개조한 것이 침몰의 주된 요인이라고 밝혀졌다.

이에 검찰은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을 청해진해운의 실질적 소유자이자 운영자라고 지목하고 소환했지만, 유병언은 자신의 종교인 구원파의 신도들이 모이는 장소인 '금수원'에서 농성하며 끝내 불응했다. 

결국 검찰은 구속영장을 청구, 유병언 일가를 포함해 도피를 돕는 주변 인물들까지 지명수배를 내렸다.

그러나 그 해 6월 유병언은 순천시 서면 학구리에 있는 매실밭에서 변사체로 발견했고, 시체의 부패가 워낙 심한 상태였기 때문에 DNA와 지문으로 신원을 확인했다. 

국과수는 “고도의 시신 부패로 사망원인을 밝혀낼 수 없다”고 발표했고, 이후 갖가지 음모론이 끊이지 않고 있다. 

유병언은 발견 당시 두꺼운 겨울 점퍼와 내복까지 입고 있었으며, 벙거지 모자를 쓰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또 시체 옆에는 막걸리 1병, 소주 2병이 빈 채로 발견됐다. 

하지만 이미 무더위가 시작된 지 한 달도 넘은 상태였으며, 유병언은 평소 유기농식품만 먹는 등 음식에 까다롭기로 유명하고 술은 전혀 입에 대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유병언은 자산가였고 도피를 돕는 조력자가 여러 명이었음에도 초라한 행색으로 홀로 시신이 발견된 점도 석연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3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유병언의 정확한 사망 원인이 밝혀지지 않는 탓에 갖가지 의혹이 난무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세월호 유족들은 국가와 청해진해운을 상대로 백억 원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내고 법적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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