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우발채무 증가를 이유로 증권사 부동산 PF 관련 규제에 나섰다. (왼쪽위부터 시계방향)미래에셋대우,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KB증권 본사 전경. (사진=손강훈 기자)
금융당국이 증권사들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 대해 제동을 걸면서 증권가가 출렁이고 있다. 금감원은 PF 때문에 증권사의 잠재적 ‘빚’이 늘었다며 관리가 필요하다는 입장인 반면 증권사들은 기우일 뿐이라며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금융당국이 PF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뭘까. (CNB=손강훈 기자)
증권사들 PF로 우발채무 급증
금감원 “충당금 쌓아라” 제동
업계 “리스크 없는데 너무해”
부동산 PF는 건설사들이 사업을 시행할 때 사업권을 담보로 금융기간에서 돈을 빌리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에는 저축은행들이 주로 PF에 참여했지만 2011~2012년 10여 곳의 저축은행이 영업정지 처분을 받은 저축은행 사태 이후 주로 증권사들이 참여하고 있다.
통상 PF사업은 건설사가 은행에 시행사의 지급보증을 서는 형태로 이뤄진다. 건설사는 미래 들어설 건물이나 땅의 가치를 담보로 하는 자산유동화채권(ABCP)을 발행해 금융사로부터 자금을 조달한다.
이 과정에서 증권사는 건설사가 발행한 채권에 대해 지급보증을 서는 형태로 신용을 보강해주고 수수료를 챙긴다. 한마디로 시행사-시공사(건설사)-은행-증권사가 서로 얽힌 구조다.
증권사들이 그동안 부동산PF 투자를 늘린 이유는 최근 몇 년 간 국내 증시가 박스권에 갇히면서 수익이 급감한데 따른 것이다. 신흥국 펀드 등 각종 파생상품을 만들어 살 길을 찾았지만 신통치 않았다. 결국 대규모 구조조정이 계속됐고, 이 과정에서 새 먹거리를 찾다가 부동산 PF가 대안으로 떠올랐다.
여러 증권사들이 적극적으로 부동산 PF에 참여하자 금융감독원은 지난 5일 이에 대한 우려를 표하며 우발채무와 관련된 제재 방안을 내놓았다.
우발채무는 미래에 일정한 조건이 발생했을 경우 빚이 되는 것을 말한다. 증권사 우발채무 경우 부동산 PF와 관련된 신용공여가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데 만약 증권사가 보증을 서준 사업이 잘못될 경우 모든 피해는 증권사가 떠안아야 하는 구조다.
▲증권업계 우발채무 추이를 보여주는 그래프. (그래프=한국신용평가)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지난해 9월말 기준 증권사들의 우발채무는 23조원이다. 이중 부동산 PF와 관련된 신용공여 규모는 17조원에 달했다.
이를 근거로 금융당국은 올해 부동산 경기 전망이 나쁜 상황에서 우발채무가 증권사에게 폭탄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점을 고려, 증권사들이 의무적으로 ‘충당금’을 쌓도록 했다.
충당금은 손실에 대비해 회사가 갖고 있어야 하는 자금을 말한다. 충당금 적립은 회수 가능성에 따라 5단계로 나뉘는데 그동안 증권사는 회수율이 비교적 높은 ‘요주의’나 ‘정상’ 단계에서는 돈을 모아두지 않았다.
하지만 이르면 올 2분기 안에 모든 단계에서 충당금을 쌓아야 한다. 증권사의 부담이 커지게 됐다.
증권업계는 불만의 목소리를 냈다. 그동안 부동산 PF가 쏠쏠한 돈벌이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증권사들은 주식시장 불황으로 당기순이익이 39.9%나 급감했다. 미래에셋대우, 삼성증권 등 대형증권사의 당기순이익 역시 각각 157억원, 1742억원의 전년보다 91%, 36.6%로 줄어들어 예외 없이 어려운 상황을 보여줬다.
하지만 자기자본 업계 10위 규모인 메리츠종금증권은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2538억원으로 증권업계 1위를 기록했다. 특히 자기자본이익률(ROE, 투입한 자기자본이 얼마만큼 이익을 냈는지 나타내는 지표) 14.4%로 2014년 이후 3년 연속 두 자릿수를 기록하며 안정적인 수익을 냈다.
이는 부동산 PF 강점을 바탕으로 다양한 영역의 신규 사업 확장에 어느 정도 성공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부동산의 힘으로 실적 선방을 해낸 것이다.
게다가 증권업계가 최근 3년간 부동산 PF의 채무보증을 이행하면서 손실을 본 사례를 4건으로 그 금액은 747억원에 불과했다. 증권사 입장에서는 매우 안전한 사업분야인 것이다.
또한 한국신용평가 안지은 연구원은 지난달 28일 “국내 증권사들의 현재 부동산 관련 우발채무 리스크가 증권사 자기자본으로 손실을 감내할 수준이고 향후 위험부담도 줄어들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으며 증권사에게 힘을 실어줬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로 인한 증권사들의 우발채무가 크게 불어나자 제2의 저축은행 사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14년 3월 저축은행 사태 피해자들이 서울고등검찰청 앞에서 국가배상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PF가 정말 ‘폭탄’으로 돌아올까
그럼에도 금융당국이 PF 규제에 나선 이유는 과거 저축은행 사태의 트라우마 때문이란 해석이 우세하다.
저축은행사태는 2011년 대형 저축은행의 대규모 부실이 드러난 사건이다. 당시 저축은행들은 제대로 된 심사과정 없이 부동산 PF에 참여했고, 결국 막대한 손해를 봤다. 특히 시중 은행보다 높은 이자를 제공하는 저축은행의 특성상 서민들이 많은 돈을 맡겼는데 전국적으로 피해자만 10만명, 피해금액은 50조원에 달했다.
이 사태로 금융당국은 엄청난 비판을 받았다. 이미 수년간 대주주불법대출, 회계조작 등 불법행위가 이뤄져왔지만 사전에 이를 적발하지 못한데다가, 금감원 출신이 저축은행의 요직을 차지한 ‘금피아’ 사례까지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번에 증권사들의 PF에 제동을 건 것도 이런 과거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혹시 모를 리스크에 사전 대비하겠다는 것이다.
증권업계는 저축은행 사태 때와는 전혀 상황이 다르다며 항변하고 있다.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의 50% 이하로 마지노선을 정해 보증을 서고, 회수 가능성이 높은 부동산 PF를 중심으로 사업을 진행하는 등 사전에 위험관리를 철저히 하고 있다는 것.
특히 불법을 자행하며 마구잡이식 대출을 했던 당시 저축은행과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것에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CNB와의 통화에서 “저축은행 사태는 부동산 PF를 시행하는 시스템이 붕괴돼 발생한 일”이라며 “이미 안정적 시스템을 구축해 진행하고 있는 증권사 부동산 PF를 저축은행 사태와 같이 놓고 비교하는 건 말도 안된다”라고 말했다.
(CNB=손강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