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바구니 물가가 크게 오르며 가계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지난 연말에 이어 새해벽두부터 라면과 맥주 등 이른바 ‘식탁물가’가 줄줄이 인상되면서 서민들의 유리지갑은 나날이 얇아지고 있다. 이 때문에 식품 대기업들이 어수선한 정국에 편승해 너도나도 가격 인상에 가세하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반면 치약과 피로회복제 등은 오히려 가격이 떨어져 이목을 끈다. (CNB=김유림 기자)
‘살균제 치약’ 불신 커지자 값 낮춰
통제 불능 틈타 생필품 고공행진
설 앞 둔 주부들 “장보기 두렵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에 불과하지만, 서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체감물가는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특히 지난해에 이어 새해 벽두부터 식품 대기업들이 연이어 가격 인상을 공표해, 설 명절을 앞둔 장바구니에 한숨이 드리우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라면, 콜라, 맥주 등의 가격이 5~10% 올랐고, 소면·씨리얼·건전지·빙과·과자 등도 최근 6개월 사이 20~30% 뛴 상태다.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11월 오비맥주는 카스, 프리미어OB, 카프리 등 주요 품목의 출고가를 평균 6% 올렸다고 밝혔다. 여기에다 올해부터 소주와 맥주의 빈 병 보증금이 각각 60원(40원→100원), 80원(50원→130원) 인상되면서 주류 가격은 또 오른다.
씨유(CU), GS25, 세븐일레븐 등 편의점들은 순차적으로 주류 가격을 올린다. 소주 처음처럼(360ml)은 10일, 참이슬(360ml)은 13일부터 한 병 가격이 1600원에서 1700원으로 인상된다. 카스맥주(500ml)는 10일부터 1850원에서 1900원으로, 하이트맥주는 19일부터 1800원에서 1900원으로 각각 값이 오른다. 이마트, 롯데마트 등 대형마트도 지난해 생산 물량이 소진되면 빈 병 보증금 인상분을 반영할 예정이다.
농심은 지난달 20일부터 신라면·짜파게티 등 18개 품목의 라면 권장소비자가격을 평균 5.5% 인상했다. 업계 1위 농심의 가격 인상으로 오뚜기, 삼양식품, 팔도 등 후발주자들의 가격 인상도 뒤따를 것으로 관측된다. 대중 음료인 코카콜라와 환타 출고가도 지난해 11월 평균 5% 상향 조정됐고, SPC그룹에서 운영하고 있는 파리바게뜨 역시 지난달 193개 품목의 가격을 평균 6.6% 인상했다.
이처럼 공식적으로 가격 인상을 발표한 기업과 달리 소리 없이 강행한 곳도 많다. 소비자원이 전국 마트·백화점·전통시장 가격을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식료품 가운데 가장 가격 이상폭이 높았던 품목은 CJ제일제당의 제일제면소 소면(900g)이다. 이 제품은 지난해 7월 2244원에서, 12월 2833원으로 6개월 동안 26.2%나 뛰었다.
뒤이어 농심켈로그 씨리얼 스페셜K오리지널(480g)은 20%(5782원→6960원), CJ제일제당 ‘햇바삭김밥김’ 가격 상승률은 19.7%(1874원→2244원)에 이르렀다. 해표 맑고 신선한 옥수수(900ml) 11.3%(4020원→4474원), 백설부침가루(1kg) 9.9%(2208원→2426원), 오뚜기 즉석국은 11.6%(1296원→1446원) 인상됐다. 인기 아이스크림 롯데푸드 돼지바(11.6%), 빙그레 메로나(11.9%), 해태 바밤바(12.7%) 등도 모두 10%이상 값이 올랐다.
편의점에서는 세 가지 종류의 CJ 냉동밥이 지난달 1일 자로 일제히 3000원에서 3300원으로 10% 인상됐고, 해태 자유시간 초콜릿 바와 크라운 산도 딸기가 각각 지난해 9월과 7월에 25.7%(800원→1000원), 16.7%(2200원→2400원) 뛰었다.
▲계란 대란에 이어 식용유 대란까지 벌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게다가 조류인플루엔자(AI) 여파로 지난 9일 기준 계란(30알·특란) 한판의 전국 평균 가격(9142원)이 50% 이상 오른데다, 아르헨티나 등 주요 산지의 콩 재배량 감소로 식용유 가격도 최근 10% 가까이 뛰었다.
식료품뿐 아니라 일반 생필품류 물가 상승도 만만치 않다. 최근 6개월 듀라셀 건전지(AA)는 13.6%(2847원→3233원), LG생활건강 주방세제 자연퐁은 11.2%(6418원→7139원), 유한킴벌리 디럭스 키친타월이 20%(6497원→7793원) 각각 올랐다.
반면 치약과 피로회복제 등의 가격은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소비자원 참가격 사이트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구강청정제 제품 동아제약의 레귤러의 소비자 평균 가격은 1622원으로 같은 해 6월 말 2936원보다 44.8%나 떨어졌다. 존슨앤존슨의 리스테린 쿨민트는 6개월간 3.2% 정도 낮아졌다.
같은 기간 LG생활건강의 치약 페리오 캐비티케어는 7837원에서 6728원으로 14.1% 하락했다. 피로회복제인 박카스F 한 박스(10병) 가격도 같은 기간 8549원에서 6325원으로 26% 낮아졌고, 해태음료의 영진구론산G(10병)도 4533원에서 2339원으로 48.4%나 내렸다.
일반적으로 공산품 및 프랜차이즈 제품은 제조회사에서 한번 가격을 올리면 좀처럼 내리지 않는데, 박카스와 치약은 왜 싸졌을까?
CNB 취재결과 기업들은 가격 인하를 단행한 적이 없었다. LG생활건강과 동아제약 관계자는 CNB에 “공급가를 따로 내린 적이 없다”며 “유통채널 자체적으로 소비자 판매가를 낮춘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치약의 소비자가 하락의 요인으로 아모레퍼시픽의 ‘살균제 치약’ 사건을 꼽고 있다. 지난 9월 아모레퍼시픽 치약 13종에서 가습기 살균제 속 유해성분인 메칠클로로이소치아졸리논과 메칠이소치아졸리논 혼합물(CMIT/MIT)이 검출되면서 수요가 급감하자, 유통업체들이 불가피하게 치약가격을 낮춰 판매했다는 것이다.
또 피로회복제는 ‘마트 판매’ 덕에 소비자들이 저렴하게 살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2011년부터 일반의약품이 약국 이외에 대형마트, 슈퍼, 편의점 등에 판매할 수 있게 됐고, 유통채널들의 경쟁이 심화됨에 따라 자연스럽게 소비자 가격이 내려가게 됐다.
▲올 설 명절 차례상 비용은 지난해보다 크게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사진=SBS뉴스 캡처)
하지만 치약과 피로회복제가 저렴해졌다고 해서 서민들에게 위로가 되지는 않는다. 당장 이달 말 맞이하게 될 설 명절이 두렵다.
11일 서울 강서구에 위치한 시장에 반찬거리를 사러 온 40대 주부의 목소리다.
“이젠 장 보기가 무서워요. 몇 개 사지도 않았는데 10만원이 그냥 넘어. 허리띠를 졸라매며 살고 있지만, 월급은 그대로인 채로 물가는 오르니 갈수록 삶이 힘들어지고 있어요. 그런데도 정부는 물가가 별로 오르지 않았다고 말하는 게 신기해요. 그 양반들은 시장에도 안 가나 봐”
(CNB=김유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