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사진=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그와 앙숙 관계인 미국 IT업계에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과거 아이폰의 잠금 해제를 놓고 애플과 충돌한 트럼프는 폐쇄적인 미디어 정책, 인터넷 셧다운제 검토, 망 중립성 원칙 반대 등 보수적 입장을 취하고 있어 개방성을 모토로 하는 IT기업들과의 충돌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불똥은 국내 IT업종으로 튀고 있다. (CNB=도기천 기자)
국수주의자 트럼프, IT업계와 갈등
보호무역 장벽에 글로벌시장 위축
국내 IT기업에 불똥, 주가 내리막
‘트럼프 효과’로 투자심리가 위축되면서 애플,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MS), 넷플릭스, 알파벳 등 미국 증시에 상장된 기술주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이 과거 인터뷰에서 “이익을 낸 적 없는 IT기업이 높은 가격에 주식을 발행하고 있다”고 말한 내용이 재부각 된 데다, 빅데이터, 모바일, 사물인터넷에 소극적인 그의 자세가 영향을 주고 있다.
이런 현상의 뿌리에는 트럼프의 국수주의(國粹主義)적 가치관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는 후보 시절부터 줄곧 보호무역과 이민규제 강화를 핵심정책으로 내세워 왔다. 세계 각지의 전문 인력을 국경을 초월해 영입하며 글로벌 시장을 키우고 있는 IT업계로서는 트럼프가 반가울 리 없다.
▲구글 CEO 순다 피차이는 애플과 트럼프가 아이폰 잠금해제 문제를 놓고 다투자 5개의 트윗을 올려 애플을 옹호했다. (사진=트위터)
그러다보니 트럼프는 IT업계와 자주 갈등을 빚어왔다. 대표적인 예가 애플과의 ‘보안 전쟁’이다.
지난해 12월 미국에서 총기난사로 14명이 숨졌는데 두 명의 범인이 이슬람 극단주의자들로 밝혀졌다. 그러자 FBI(美연방수사국)는 배후를 캐기 위해 이들이 사용한 아이폰5C의 ‘잠금해제’를 시도했다. 하지만 두 달 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FBI는 ‘잠금’을 풀지 못했다. FBI는 애플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거부당했다.
결국 이 사안은 법정으로 갔고 법원은 FBI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애플에게 “수사당국에 기술 지원을 하라”고 판결했지만 애플 CEO 팀 쿡은 “논의가 필요하다”며 거부의사를 분명히 했다. 개인의 사생활 보호가 전제돼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자 당시 공화당의 대선 주자였던 트럼프는 “국가안보를 위해 애플이 잠금장치를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논란은 IT업계 전체로 번졌다. 애플은 물론, 구글,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야후, 트위터, 링크드인, 에버노트, 드랍박스, AOL 등 쟁쟁한 IT기업들로 구성된 ‘정부감시개혁(RGS, Reform Government Surveillance)’은 성명을 통해 트럼프를 비판했다. 구글 CEO 순다 피차이는 연속적으로 5개의 트윗을 올려 애플에 대한 지지를 선언할 정도였다.
트럼프는 애플에 이어 아마존과도 다툼을 벌였다. “내가 당선되면 아마존에 큰 문제가 생길 것”이라며 아마존의 e커머스 시장 독점에 대해 노골적으로 비판했다.
이에 맞서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조스는 선거 기간 내내 클린턴 후보를 지지하며 자신이 소유한 워싱턴포스터를 통해 트럼프의 정책을 비난했다. IT업계 리더 145명도 지난 7월 “트럼프는 혁신의 재앙”이라며 공동성명을 내고 낙선운동에 돌입했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조스. (사진=연합뉴스)
“망 중립성 반대” 통신사 수혜
하지만 이제 IT업계는 트럼프의 당선으로 역풍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보호무역 장벽으로 매출이 줄어들 위기에 놓였으며, 심야시간의 인터넷 게임을 제한하는 셧다운(shutdown)이 현실이 될 가능성도 높아졌다.
트럼프가 망중립성 원칙에 반대하고 있는 점도 악재다. ‘망 중립성’이란 네트워크 사업자(통신사)는 모든 콘텐츠를 동등하게 취급해야 한다는 의미다. 국내에선 이동통신사들이 2012년 카카오가 출시한 보이스톡 서비스를 요금제에 따라 부분적으로만 허용하면서 논란이 시작됐다.
트럼프의 주장이 실현되면 통신사들은 자신들 입맛대로 인터넷 서비스업체와 제휴할 수 있게 된다. 전반적으로 IT업계가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인터넷 거버넌스(통제권)에 대한 정책 변화도 예고된 상태다. 오바마 정부는 그동안 국제인터넷주소기구(ICANN)에 인터넷 주소 관리 권한을 이양하는 방안을 추진해 왔지만 트럼프는 이를 반대해 왔다.
▲애플, 구글,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야후, 트위터, 링크드인, 에버노트, 드랍박스, AOL 등으로 구성된 ‘정부감시개혁(RGS)’은 트럼프의 정책에 반대하고 있다. (사진=RGS)
이런 분위기는 국내 IT업계에도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트럼프 당선 하루 전인 지난 8일(종가기준) 166만4400원이었던 삼성전자 주가는 당선이 확정된 9일부터 하락해 현재(15일 종가기준) 153만9000원(7.53%↓)까지 내려갔다. 같은 기간 엔씨소프트(10.09%↓), 네이버(8.71%↓), 삼성에스디에스(3.98%↓) SK하이닉스(4.33%↓) LG전자(1.46%↓) 등 ICT 관련주들이 동반 추락했다.
하지만 섣불리 예단하기는 이르다는 분석도 있다. 美공화당이 국가 핵심 인프라로 초고속인터넷망과 통신망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는 점에서다. 트럼프 정권이 5세대 이동통신(5G) 등에 투자를 늘릴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전반적으로 IT·소프트웨어 업종은 위축되고, 통신사들은 수혜를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통신망의 발달이 사물인터넷의 기반이 되는 만큼 장기적으로 보면 두 업종이 윈윈 할 수 있는 길이 열릴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