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도기천 부국장) 하루아침에 세상이 바뀌었다. 혹자는 대한민국이 9월 28일(김영란법 시행일)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라고 말한다.
필자는 90년대 초 어느 교육전문지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우리 사회 전반에 촌지 관행이 만연했었다.
특히 교육계는 더 그랬다. 전교생이 30여명 남짓한 시골학교의 교장선생님을 인터뷰 하고 난 뒤에도 으레 서무계 주임이 돈봉투가 끼워진 결재판을 갖고 왔다. 교장은 결재서류에 사인을 한 뒤 봉투를 건넸다. 이미 회계처리가 끝났음을 암시하는 것이라 돌려주는 것도 큰 실례였다.
당시는 취재기자가 사진기자를 대동하고 다녔다. 두 사람의 봉투가 바뀌어 싸움이 난 적도 있다. 통상 취재기자가 사진기자보다 대접이 더 좋았는데 실수로 교장이 두 사람의 봉투를 바꿔서 전달한 것이 화근이 된 것이다.
어느 총각 기자는 은행 다닐 시간이 없어 차 트렁크에 박스를 하나두고 거기에 촌지를 모았다고 한다. 몇 년 지나자 타이어가 촌지 무게에 내려앉았다는 웃지못할 얘기가 무용담처럼 회자되던 시절이었다.
교육계의 봉투 문화는 학부모로부터 비롯됐다. 스승의날이나 가정방문일은 촌지를 전달하는 날이었다. “행복은 촌지순”이었고 가난한 부모들은 가슴을 쳤다.
그러다 당시 비합법단체였던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의 ‘참교육’ 운동이 잔잔한 바람을 일으켰다. 촌지를 거부하는 교사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기 시작했고 “촌지 안받으면 전교조 선생”이란 말이 나왔다. 이렇게 시작된 정화 운동이 스승의날을 자율휴업일로 만들었다.
이후 기자들 세계에서도 촌지가 점차 사라져갔다. 이런 세월 가운데에 있었던 본인도 결코 떳떳하지 못하다.
서론이 길었다. 이제 김영란법 시대다. 필자는 경제부를 맡아 기업들을 상대하다보니 지난달까지만 해도 가끔 비싼 밥을 대접 받았다. 밥값이 3만원 이내로 제한되자 섭섭한 마음이 든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시간당 6030원의 최저임금을 받으며 삼각김밥으로 끼니를 떼우고 있는 청년들이 수십만명인 세상이다. 더 토를 달다간 뭇매 맞는 게 당연하다.
“룰을 알아야 룰을 지키지”
그런데 이 법이 정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어 논란이다. 같은 사례를 두고도 해석이 다른 경우가 부지기수다.
가령, 기업의 홍보담당자가 언론사 데스크에게 전화해서 자신들에게 불리한 기사를 내려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부정청탁에 해당되는지에 대한 해석조차 제각각이다. 금품이 오가지 않았다면 괜찮다는 변호사도 있고, 그 자체가 부정청탁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특집기사를 싣고 협찬을 요구하는 행위에 대해서도 의견이 갈린다. 언론사 수익을 늘리기 위한 정상적인 영업행위라는 시각도 있고, 정식 광고가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는 말도 들린다.
국민권익위원회는 “행위 수행자의 정당한 권원(權原)이 없으면 제재 대상일 수 있다”는 원론적인 말말 되풀이 하고 있다. 신문·잡지의 지면광고(유로지면)은 당사자 간의 정당한 계약에 의해 성립된 것이라 문제가 없지만, 그 외의 홍보성기사, 특집기사의 대가에 대해서는 사안별로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언론 시장에서는 광고와 협찬기사의 경계가 사라진지 오래다. 넘치는 광고성기사(사진)를 두고 ‘정당한 권원(權原)’인지에 대해 권익위도 판단을 못내리고 있다.
권익위의 모호한 태도로 언론 현장에는 온갖 유언비어가 창궐하고 있다.
“기자는 협찬을 요구하면 안되지만 광고 직원은 상관없다” “협찬기사를 광고로 돌리면 문제가 없다” “ABC부수공사제도에 가입된 매체만 광고를 받을 수 있다” 등이다. 심지어 “기자가 기업의 약점을 강하게 취재해도 문제가 된다”는 얘기도 들린다. 대부분은 부정청탁을 금지하는 김영란법과 언론윤리강령을 혼동한 데서 온 무지인 듯싶다.
이처럼 혼란이 커지고 있는 1차적인 원인은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권익위에 있다.
언론 시장에서는 광고와 협찬기사의 경계가 사라진지 오래다. 기업들은 “우리 제품이 최고다”라는 식의 직접광고 보다 소비자 체험기를 중심으로 전개한 특집기사를 더 선호하고 있다. 정부광고도 마찬가지다. 고용노동부는 “강성노조가 일자리 창출을 막는다”는 식의 기획기사에 광고비를 집행하고 있다. 언론사들은 이런 트렌드에 맞춰 기사를 생산하고 있다.
‘정당한 권원(權原)’을 지면광고에 국한하고 있는 시각도 시대에 뒤쳐져 보인다. ‘종이 매체’가 없는 인터넷신문들은 ‘광고성 기사(보도자료)’를 포털에 송고해 광고비를 받고 있다. 파워블로거나 포털사이트 파워링크를 통한 광고효과가 지면을 앞선 지 오래다. 하루 다르게 바뀌는 디지털 세상에 정부시계는 여전히 20세기에 머물고 있다.
그렇더라도 광고와 협찬기사를 구분 짓고자 하는 권익위의 의도 자체에는 공감한다. 기자인지 기업의 홍보맨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언론의 비판기능이 사라지고 있는 시대에 김영란법이 “정신 차리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대로라면 시장기능이 제 역할을 못하게 된다. 벌써부터 무엇이 어찌될지 몰라 홍보활동 자체를 중단한 기업도 여럿 있다. 서둘러 룰을 제시해야 한다.
아울러 작금의 사태를 스스로 자초했다는 점에서 언론은 자성해야 한다. 상당수 언론사는 기자가 기업으로부터 수주해온 광고나 협찬 금액의 일부를 인센티브로 지급하고 있다. 이 돈이 기업으로부터 받는 ‘간접 리베이트’는 아닌지 깊이 생각해 볼 때가 됐다. 김영란법이 ‘기레기 방지법’이 되느냐 마냐는 결국 기자들 하기 나름이다.
(CNB=도기천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