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에 대한 검찰 수사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94)의 셋째부인 서미경 씨(57)와 그녀의 딸 신유미 롯데호텔 고문(33)이 모습을 드러낼지 주목된다. 이들 모녀는 지난 수십 년간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는데, 이번 롯데 수사 과정에서 수천억원대의 세금 탈루 혐의 등으로 사정당국의 수사선상에 오른 상태다. 서씨 모녀의 기구한 인생역정의 종착역은 어딜까. (CNB=도기천 기자)
▲신격호 총괄회장(94)의 셋째 부인 서미경(57)씨가 1976년 모델로 활동할 당시의 사진. (사진=연합뉴스)
‘롯데가 큰손’에서 ‘국제미아’ 전락
불운의 여배우, 한 맺힌 인생역정
숨어지낸 35년 세월 이번엔 끝날까
서씨 모녀에 대한 검찰수사는 크게 두 가지 방향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 총괄회장은 롯데 오너일가의 지분 현황 자료를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하면서 서씨 모녀가 소유하고 있는 유니플렉스와 유기개발, 유원실업, 유기인터내셔널을 계열사로 신고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이 회사들은 대기업 계열사에서 누락돼 각종 공시의무에서 면제되는 혜택을 누렸다. 롯데 계열사들로부터 상당량의 일감을 수주 받고도 중소기업이라는 이유로 실체를 드러내지 않은 것이다.
뒤늦게 이를 적발한 공정위는 최근 검찰에 신 총괄회장을 고발했다. 신 총괄회장은 유니플렉스와 유기개발 등에 400억원이 넘는 자금을 대여했으며, 실제적인 지배력을 행사했다.
사정당국은 서씨 모녀의 소유회사가 롯데 계열사로 드러난 만큼, 그동안 롯데시네마 등과의 거래에서 취한 수백억원의 이익을 ‘부당이득’으로 보고 있다.
서씨 모녀는 또 신 총괄회장으로부터 일본 롯데홀딩스 지분을 증여받으며 수천억원의 증여세를 내지 않은 혐의도 받고 있다.
검찰은 최근 신 총괄회장의 비밀장부를 찾아내 신 총괄회장이 계열사로부터 매년 100억원을 받아간 사실을 확인했는데, 이 돈이 서씨 모녀에게 흘러들어갔을 가능성에도 주목하고 있다.
▲1979년 ‘선데이 서울’ 표지 모델로 등장한 서미경씨(좌). 당시 비키니 차림의 모습(우).
롯데, 서씨 모녀와 ‘선긋기’
롯데그룹은 신 총괄회장 및 서씨 모녀와 선긋기에 나선 상태다.
롯데 측은 서씨 일가가 소유한 회사들을 계열회사로 볼 수 없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서씨가 신 총괄회장과 정식 혼인신고를 하지 않아 친족 관계로 볼 수 없고, 따라서 법적으로 상호출자제한기업(계열사)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자금을 대여한 것도 신 총괄회장이 개인적으로 증여한 것이지 롯데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진실의 키를 쥔 서씨 모녀는 현재 일본에 머무르며 입국을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은 서씨가 스스로 입국할 가능성은 없다고 보고 강제 소환 절차에 착수한 상태다. 우선 국세청과 협의해 롯데 관련 주식, 부동산 등 서씨의 국내 전 재산을 압류했다.
서씨 모녀는 신 총괄회장으로부터 증여받은 땅을 포함해 수천억 원대의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 2007년 신격호 총괄회장이 서씨 모녀에게 증여한 서울 신사동 도산공원 옆 부지를 비롯, 대학로 유니플렉스와 인근 주차장, 방배동 빌라 등이다. 이들은 롯데쇼핑, 롯데푸드, 코리아세븐 주식도 일부 보유하고 있다.
검찰은 서씨의 여권을 무효화 하는 절차도 진행 중이다. 여권법 19조에 따르면 ‘장기 3년 이상의 형에 해당하는 죄를 범하고 국외로 도피해 기소중지된 사람’에 대해 외교부 장관이 여권 반납을 명령할 수 있다. 정해진 기한 내에 자발적으로 여권 반납이 이뤄지지 않으면 여권이 무효화된다.
서씨는 현재 한국 국적만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 여권이 말소되는 순간 합법적 거주 자격을 잃고 불법 체류자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로코코 양식으로 지어진 서미경씨 모녀 소유의 방배동 빌라. (사진=도기천 기자)
미스롯데 시절 37살 연상 신격호와 인연
전 재산을 압수당하고 국제미아 신세로 전락할 처지가 된 서씨에게는 ‘불운한 여배우’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다녔다. 신 총괄회장을 등에 업고 롯데가의 큰 손으로 등극했지만, 그녀의 삶은 순탄치 못했다.
서씨는 7살 때 TBC 어린이합창단 활동을 하며 연예계에 첫발을 내디딘 이후 여러 영화에 출연하며 아역배우로서 이름을 날렸다.
1977년 ‘제1회 미스 롯데’에 뽑히면서 롯데 전속모델로 활약했다. ‘껌이라면 역시 롯데껌’의 광고카피를 히트시킨 주인공이다. ‘서승희’라는 예명으로 드라마, MC, 영화, 광고까지 두루 섭렵했다.
그러다 스물두살 때인 1981년에 37살이나 많은 신 총괄회장의 셋째 부인으로 낙점됐다. 당시 두 사람은 숱한 화제를 남겼지만 이후 서씨의 모습은 연기처럼 사라졌다.
신 총괄회장이 서씨와 인연을 맺을 당시 신 총괄회장에겐 이미 본처(시게미쓰 하츠코)와 전처(첫번째 부인 고 노순화)가 있는 상황이었다.
후처인 서씨를 두고 처음부터 롯데가 내 반발이 심했다. 특히 첫번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인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이 둘의 관계에 제동을 많이 걸었다는 후문이다.
그러다보니 신 총괄회장은 서씨를 호적에 올리지 못했다. 서씨에겐 ‘별당마님’이란 수식어가 늘 따라 다녔다. 서씨가 한번도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던 데는 이런 가족사가 배경이 됐다.
서씨의 무남독녀인 신유미 롯데호텔 고문 또한 베일에 가려진 인물이다. 롯데호텔 직원들도 본 적이 없을 정도다. 지금까지 사진 한 장 공개된 바 없다.
현재 롯데그룹 측이 “서씨 모녀와 롯데와는 아무 연관이 없다”며 강하게 선을 긋고 있는 점도 이런 맥락에서다.
▲서미경씨 모녀는 여권 무효화로 신분이 불안정해지더라도 그동안 일본을 오가며 쌓은 인맥이 상당해 검찰 수사 피해 일본에서 장기 체류할 가능성도 있다. 일본 도쿄도 신주쿠구에 있는 롯데홀딩스 본사 건물. (사진=연합뉴스)
일본 롯데 원로들이 뒷배경?
서씨 모녀가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낼지는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서씨는 이달 초 검찰로부터 여권 무효화 조치에 들어간다는 ‘최후통첩’을 받았으나 꿈쩍도 않고 있다.
롯데가 안팎에서도 이들의 거취에 대한 견해가 엇갈린다.
서씨가 몇 달 더 일본에서 머물다 롯데 사태가 잠잠해지면 비밀리에 자진 입국해 조사받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영원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라는 설도 돈다. 여권 무효화로 신분이 불안정해지더라도 그동안 수시로 일본을 오가며 쌓은 인맥이 상당해 귀국을 장담할 수 없다는 것.
신 총괄회장과 수십여년을 함께해온 일본 롯데의 원로들이 뒤를 봐주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키를 쥔 일본 사법당국이 어떤 태도를 취할 지도 현재로선 장담할 수 없는 상태다.
롯데의 한 관계자는 “서씨가 신 총괄회장과 사실혼 관계이긴 하지만, 롯데 직원 중 어느 누구도 이들의 존재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우리도 신문을 통해 이들의 소식을 접하는 게 전부"라고 말했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