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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어버이연합은 나와 유병재·이상훈을 왜 고소했나

‘알바 시위’ 수사에 그쳐서는 안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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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도기천기자 |  2016.07.14 09:15:44

(CNB=도기천 부국장) ‘대한민국 어버이연합’이 사실상 해체 수순에 들어갔다. 확인된 보도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달 30일부터 서울 종로구 인의동 사무실을 비운 상태. 심인섭 회장은 미국에 있는 아들 집으로 떠났고, 이종문 부회장은 자리에서 물러났다. 추선희 사무총장은 지난달 24일 검찰에 출석한 뒤부터 종적이 묘연한 상태다. 

지난 10여년 간 진보진영은 물론 비박(非박근혜)계에도 이들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야당과 타협했다는 이유로 여당 대표를 화형식 하는가 하면, 새누리당 공천 과정에 개입해 대통령 눈 밖에 난 인사들을 ‘배신자’로 낙인찍어 성토했다. 시민단체·노조가 대규모 집회를 여는 현장에는 빠짐없이 등장해 맞불 집회를 열었다. 심지어 단식농성 중이던 세월호 유가족들 앞에서 치킨·자장면 먹기 퍼포먼스를 벌였다. 

‘친박’이 아니면 모두 공격 대상이었다. 그들 스스로 “대통령을 건드리면 결코 용서할 수 없다”고 천명했다. 

우리나라 대기업을 대표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그들에게 뒷돈을 대줬다. 더불어민주당·정의당 등 야권은 이들의 배후에 BH(청와대)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제 이들의 ‘맞불 집회’와 ‘퍼포먼스’는 보기 힘들 것 같다. 최근 서울광장 등지에서 열린 민주노총의 대규모 시위 때 보이지 않았다. 매일 종로 종묘공원에서 열던 ‘역사강연’도 지난달부터 끊겼다. 

웬 셀프 해체? 당당하게 나서라

필자는 지난 5월 3일 쓴 글([데스크칼럼] 어버이연합, 대한민국이 만만한가)로 인해 이들로부터 고소당했다. 한동안 ‘실종’ 상태였던 추 사무총장이 5월 11일 서울서부지방검찰청을 찾아 직접 고소장을 제출했다. 

고소당한 언론과 개인은 필자만이 아니다. 방송작가 유병재는 자신이 만든 ‘고마워요, 어버이’ 동영상이 문제가 됐다. 영상 속 주인공의 아버지는 일당 2만원을 받고 시위에 나선다. 

개그맨 이상훈은 KBS2 ‘개그콘서트’에서 “쉽게 돈을 송금 받을 수 있는 것? 어버이연합”이라는 발언으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의 김현정 앵커와 기자, JTBC 강모 기자, 어버이연합-전경련 게이트를 최초 보도했던 시사저널 기자 3명도 고소당했다. ‘알바’ ‘일당’ ‘청와대 지시’ ‘뒷돈’ 등이 전부 허위보도란다.  

필자의 경우는 칼럼에서 “어버이연합이 ‘알박기’ 집회를 매년 수십 차례 열었다”고 말했는데, 어버이연합 측은 “알박기를 했던 사실이 없다”며 허위사실유포·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알박기’의 어원은 부동산 개발사업에서 비롯됐다. 사업지 가운데 땅을 사들여 버티는 수법으로 고가의 보상을 받는 행위를 이른다. ‘자리를 선점(先占)한다’는 의미에서, 남의 집회를 방해하기 위해 장소를 미리 차지하는 행위를 흔히 ‘알박기 집회’라고 부른다. 

▲JTBC 관련보도 캡쳐


‘알바 시위’가 본질 아니다 

정말 알박기가 없었을까? 진실은 고소 한 달 뒤에 드러났다. 

박주민·박남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4년부터 최근까지 어버이연합은 총 2728회 집회를 하겠다고 신고했지만 실제로는 184회만 집회를 열었다. 약 93%가 유령집회인 셈이다. 

또 2012년 12월12일부터 2013년 5월12일까지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명동 롯데호텔 앞에 240회에 달하는 집회신고를 냈는데, 실제 집회가 열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박주민 의원은 “롯데를 지켜주기 위해 롯데 앞에 알박기를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알박기’ 시시비비를 가릴 기회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고소인들은 전부 사라졌고, 검찰은 수사를 미적대고 있다.       

이번 사건이 ‘알바 시위’ 수사로 끝나서는 안 되는 이유가 있다.  

대한민국이 집회·시위의 자유를 갖게 된 건 수많은 시민들이 흘린 피의 대가였다.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전투경찰이 대학 안에 상주했으며 다섯 명만 모여도 해산시켰다. 젊음들이 꽃처럼 스러져 간 대가로 우리는 오늘 ‘모여서 외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어버이연합은 피로써 쟁취한 국민의 저항권을 오랜 세월 방해해 왔다. 

우리가 끝까지 이 사건에 주목하는 이유는 두 번 다시 민주주의 파괴세력이 이 땅에 출몰해서는 안된다는 데 있다. 그것이 군사독재 앞에 몸을 던진 청춘들이 그토록 살고 싶어 했던 ‘내일’을 살고 있는 우리의 최소한 도리다. 알박기의 진상이 규명돼야 하는 이유다.   

(CNB=도기천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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