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가 지하철 1호선에서 ‘여성 배려칸’을 시범 운영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여성 대상 범죄의 예방, 임산부 등에 대한 배려 등이 운영 취지지만 ‘성차별’이라는 주장도 적지 않다. CNB가 지난 8일 직접 부산을 찾아 1호선을 타봤다. (CNB=김유림 기자)
여성도 안반기는 ‘여성배려칸’
부산시에 남녀노소 항의 빗발
여혐·남혐 쓸데없는 논란만
부산시는 지난달 22일부터 출근 시간인 오전 7~9시, 퇴근 시간인 오후 6~8시에 운행하는 지하철 1호선 8량 중 5번째 칸을 여성만 탈 수 있도록 운행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다.
앞서 서울시는 2007년과 2011년 여성 전용칸을 도입하려고 했지만 반대 여론에 부딪혀 시행되지 못했고, 2013년 대구에서도 역시 같은 이유로 무산됐다. 부산교통공사는 앞으로 3개월 동안 시범 운행한 뒤, 여론을 수렴해 지속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여성 배려칸 주변의 스크린도어와 지하철 내부에는 ‘여성 배려칸’임을 알리는 분홍색 스티커가 곳곳에 붙여져 있다. 그러나 부족한 홍보와 시민들의 자율성으로 시행하고 있다 보니, 잘 모르는 승객이 많았다.
저녁 7시가 되자 부산교통공사 직원이 여성 전용칸 스크린 도어 앞에서 “여성 배려칸입니다. 남성 승객분들은 다른 칸을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안내하자 당황해 하는 시민들이 적지 않았다.
어쩔 줄 모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어폰을 낀 청년들은 아예 방송을 듣지 못해 미동도 없었다.
지하철 운행 소음에 묻혀 스피커에서 나오는 안내 방송 내용은 잘 들리지도 않았다. 이 때문에 서면역에서 범내골역으로 향하는 1호선의 여성 전용칸에는 남성 승객이 20% 가량 차지하고 있었다.
여성 전용칸에 대한 부산 시민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출퇴근 시간에는 어쩔 수 없이 신체가 밀착될 수밖에 없어 불편했는데, 여자들끼리 있으니 마음 편하다”(20대 여성)
“사람들에게 밀리다 보면 여성과 마주보고 서있을 때가 있는데, 오해를 받을까 부담스러웠던 적이 있다. 차라리 잘 됐다”(30대 남성)
이 같이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는 반면, 오히려 남성 역차별 또는 여성을 약자로 보는 시각에 불편함을 느끼는 시민들도 있었다.
“임산부 좌석까지는 이해가지만, 여성이 무슨 특권층, 사회적 약자도 아니고 오히려 남녀평등에 반감되는 느낌이다”(40대 여성)
“남녀를 떠나서 배려라는 건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하는 것인데, 여자들한테 배려를 강요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지 않다. 더구나 모든 남자들을 잠재적인 범죄자 취급을 하는 것 같아 불쾌하다”(30대 남성)
“왜 유아를 동반한 여성들만 탑승 가능하게 해놨냐. 나도 손자를 데리고 지하철이 혼잡한 시간에 불편함을 많이 느끼는데, 불공평하다”(70대 남성)
새로운 운영방식이다 보니 아무래도 반대 여론이 더 많은 듯했다.
현재 부산교통공사 홈페이지에는 “계속 위해주면 여자들은 더 많은 것을 바란다” “여성칸 인지 나발인지 못 타게 막는 놈 있으면 가만두지 않겠다” 등 이성을 잃은 항의성 글로 도배되고 있다.
곳곳서 역차별, 남녀 갈등
이는 최근 번지고 있는 여혐(여성혐오)·남혐(남성혐오) 현상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지난 5월 강남역 인근 화장실에서 22세 여성을 살해한 용의자가 “여자들이 자신을 무시했다”고 진술하면서 촉발된 여혐·남혐 논란이 이번 ‘여성 배려칸’에서 다시 점화됐다는 분석이다.
‘여성 배려칸’ 사례와 비슷한 경우는 또 있다. 신세계에서 운영하고 있는 스타벅스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대통령 특별 휴가를 받은 군 장병에게 무료로 커피 한잔을 제공하는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를 두고 SNS와 여성 커뮤니티에서 “왜 내가 올려준 매출로 남자들에게 공짜로 커피를 주냐”는 글이 빗발쳤고, 스타벅스 홈페이지 고객의 소리란을 통해 항의하는 여성들의 메일이 수백건에 이르고 있다.
또 이달 초에는 지하철, 버스 임산부 배려석에 다리를 벌리고(일명 쩍벌) 앉아있는 남성들을 ‘몰카’해서 인스타그램에 게시하는 ‘오메가패치’ 논란이 일었다. SNS를 통해 전국에 231명의 남성 얼굴이 공개됐고, 이에 경찰은 지난 6일 명예훼손 혐의로 오메가패치 운영자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이처럼 ‘여혐 vs 남혐’으로 변질된 이성 간 갈등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가운데, 3개월 후 부산시가 ‘여성 배려칸’을 두고 어떤 결정을 내릴지 시선이 쏠린다.
(CNB=김유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