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2분기 잠정 영업이익이 8조1000억원으로 전년 동기대비 17%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삼성그룹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다. 그룹 내 주요 계열사들이 끊임없이 인수합병과 매각 루머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건희 회장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으로 체제가 전환되면서 사업재편을 둘러싼 갖은 ‘설’들이 ‘사실’인양 둔갑하고 있는데, 근원지가 증권가 찌라시(정보지)라는 점에서 주가조작을 노린 ‘세력’이 개입한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CNB=도기천 기자)
▲삼성그룹이 사업재편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으로의 경영승계가 맞물리면서 각종 루머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달 1일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호암상 시상식에 참석한 이 부회장. (사진=연합뉴스)
주요계열사 매각설 무성…‘아님말고’ 식이건희→이재용 재편기 틈타 루머 기승
작전세력·인수합병 큰손 ‘낭설’ 진원지
삼성가(家)를 둘러싼 각종 루머는 사업구조 혁신이 본격화된 2014년 경부터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다.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과 이재용 부회장으로의 경영승계, 미래먹거리 사업 창출 등이 맞물리면서 말이 말을 낳고 있다.
단골로 등장하는 계열사들은 삼성물산, 삼성중공업, 삼성증권, 삼성카드, 삼성SDS, 제일기획 등이다. 이들 중 삼성SDS는 물류사업 분할계획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나머지는 움직임이 전혀 없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삼성카드의 경우 삼성생명이 지난 1월 삼성전자가 보유한 삼성카드 지분(37.5%)을 모두 사들여 최대주주(79.1%) 자리에 올라서면서 매각설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보험업계가 2020년까지 새 국제회계기준(IFRS4 2단계) 도입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삼성생명이 지분을 사들이다보니 온갖 풍문이 돌고 있다. ‘큰손’ 기관투자가들이 삼성카드 주식을 사들이고 있는 점도 루머를 키우고 있다.
하지만 삼성카드 측은 펄쩍 뛰고 있다. 삼성카드는 올해 초 공시를 통해 매각설을 부인한 바 있으며, 원기찬 사장이 직접 나서 사내 특별방송을 통해 사실무근이라고 거듭 밝혔다. 원 사장은 기자들이 이에 대해 물을 때마다 “(찌라시에) 대응할 가치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삼성증권도 찌라시에 단골메뉴로 오르내리고 있다. 지난해부터 증권업계의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진행되면서 삼성증권을 둘러싼 풍문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대증권을 인수한 KB금융그룹은 KB투자증권과의 합병을 서두르고 있고, KDB대우증권을 인수한 미래에셋그룹은 오는 11월 업계 1위 규모인 ‘미래에셋대우증권’을 출범할 계획이다.
조선업 불황여파로 경영난에 처한 현대중공업그룹은 보유 중인 하이투자증권 지분 85.32%와 경영권을 매각할 예정이다. KB손해보험이 매각작업을 진행 중인 LIG투자증권은 인수자 케이프인베스트먼트가 최근 금융당국으로부터 대주주 적격성 승인을 받음에 따라 조만간 매각작업이 마무리된다. 농협금융지주에 편입된 우리투자증권은 지난해 NH농협증권과 통합해 NH투자증권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처럼 증권업계 지형이 요동치면서 ‘대기업들이 계열 증권사를 매각한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삼성증권 측은 일관되게 매각설을 부인하고 있다. 윤용암 삼성증권 사장은 최근 수요사장단회의 참석 전 기자들과 만나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다시한번 확인해줬다. 윤 사장은 매각설이 불거지던 올해 1월에도 “만화 같은 이야기”라고 밝힌 바 있다.
▲매각과 분할 등 각종 루머에 자주 등장하는 삼성 계열사들의 본사 및 회사로고. (사진=CNB포토뱅크)
“사실무근” 조회공시 무용지물
삼성중공업은 대우조선해양 인수설에 휘말려 곤욕을 치른 바 있다.
지난 4월 한 외신언론이 정부 및 조선업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정부가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 합병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한 것이 화근이 됐다. 더 이상 공적자금을 쏟아 붓는 것이 무의미 하다고 판단한 산업은행이 조기매각에 나서면서 매수기업 0순위로 삼성중공업이 거론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두 조선사가 경남 거제에 위치해 지리적 접근성이 뛰어난 만큼 사업 포트폴리오 보완을 통해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관측도 덧붙여졌다.
산업은행과 삼성, 대우 모두 보도내용을 적극 부인하면서 인수설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조선업 불황으로 위기에 처한 삼성중공업이 부실덩어리 대우조선을 인수할 리 만무하다는 게 시장의 판단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대우조선이 강점이 있는 LNG선 부문만을 떼내 삼성중공업에 매각한다는 얘기로 변해 다시 불씨가 지펴지고 있다. 삼성 측은 “논할 가치도 없다”고 일축했다.
▲삼성 계열사들을 둘러싼 각종 루머는 삼성가(家) 3세들의 경영승계와 맞물려 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의 외아들인 이재용(48) 삼성전자 부회장, 이부진(46) 신라호텔 사장과 그녀의 동생 이서현(43) 삼성물산 패션부문 사장(왼쪽부터).
삼성물산은 국내주택사업 부문 매각설이 돌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올해 초 삼성물산이 해외사업에 집중하기 위해 국내사업을 축소할 것이라는 얘기가 돌았다. 그 직후 삼성아파트 브랜드인 ‘래미안’이 다른 건설사로 넘어갈 것이라는 추측성 보도가 잇따랐다. 매수 후보군으로는 KCC, 롯데건설 등이 회자됐다.
KCC가 회자된 것은 지난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당시 KCC가 6743억원 규모의 자금을 들여 삼성물산 지분 5.7%를 자사주로 매입한 점이 배경이 됐다.
추측성 보도가 이어지자, 삼성물산 측은 지난 3월 조회공시 답변을 통해 “주택사업을 KCC에 매각 또는 KCC와 합작법인 설립을 통해 양도하는 것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알리기도 했다. 최근에는 롯데건설이 래미안을 가져갈 것이라는 막연한 얘기가 돌아 곤욕을 치렀다.
이런 소문은 ‘근거 없는 낭설’로 확인되고 있지만, 삼성물산 주택사업부문의 실적부진, 대대적인 희망퇴직 등과 맞물려 좀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CNB에 “국내 재건축사업 등에서 치열한 수주전이 예상되는 시기에 이런 루머가 도는 것은 삼성물산을 흠집 내려는 악의적인 행위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강남 재건축 수주전을 앞두고 건설사 주가 흐름을 주무르려는 세력들의 움직임 일수도 있다”며 최근 루머와 관련된 투자자 주의를 당부했다.
삼성에스원은 비주력 사업을 과감하게 매각하는 이재용식 ‘선택과 집중’으로 인해 잊혀질만하면 매각설이 나오는 기업이다.
에스원은 일본 세콤이 지분 25.65%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삼성SDI와 삼성생명, 삼성카드, 삼성증권, 삼성화재가 조금씩 지분을 갖고 있는데 다 합치면 21%가량이다. 에스원은 그룹 내 ‘비핵심 계열사’라는 이유로 그동안 매각 대상으로 거론돼 왔다.
하지만 올 1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대비 4.87% 증가해 증권가에서 ‘어닝 서프라이즈’로 평가되자 지분 매각설이 잠잠해진 상태다.
▲주가 차익을 노린 작전세력, 인수합병 시장에서 가격을 조정하려는 사모펀드 등이 ‘삼성 루머’의 진원지로 알려지고 있어 투자자들의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주요증권사들 외경. (사진=이성호 기자)
삼성그룹이 대주주격인 광고대행사 제일기획도 한때 시장에 매물로 나오며 각종 루머에 시달린 경험이 있다.
삼성은 과거 프랑스 광고커뮤니케이션 기업 퍼블리시스에 지분을 넘기려 했는데, 삼성 계열사 광고 물량 보장 기간과 스포츠단 포함 여부 등을 놓고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최종단계에서 협상이 결렬된 적이 있다.
하지만 이후에도 중국기업 등에 매각을 추진한다는 소문이 증권가 찌라시를 통해 돌았다.
그러자 삼성그룹은 “매각 또는 제3자와의 협력을 전면 철회한다”고 발표했으며, 이후 제일기획의 독자생존 전략을 강화하기 위한 경영진단과 외부 컨설팅에 착수했다.
제일기획 관계자는 11일 CNB에 “매각설은 이미 끝난 얘기며, 지금은 재정비해서 독자생존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일부는 ‘사업재편’ 추진 맞지만…
일부이긴 하지만 실제 변화가 예상되는 기업도 있다.
삼성SDS는 물류사업 분할계획을 검토하고 있다. 최근 공시를 통해 “사업부문별 회사분할을 고려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구체적인 방법이나 일정에 대해 확정된 사실은 없다”고 밝혔다.
사업분할 방식을 놓고 증권가에서는 삼성SDS의 물류사업부문을 떼어내 삼성물산 상사부문과 합치는 방안이 회자되고 있다.
이는 통합 삼성물산이 지난해 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의 반대를 뚫고 제일모직과의 합병에 성공했음에도 최근 주가 흐름과 실적 면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데다 그룹의 실질적 지주회사로서 뚜렷한 미래성장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데 따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IT솔루션을 접목한 글로벌 물류사업에서 남다른 경쟁력을 확보한 삼성SDS 물류부문이 삼성물산에 합쳐질 경우, 상당한 시너지를 낼 것이라는 설이다.
하지만 삼성SDS 소액주주들이 회사 측의 물류사업 분할 방안에 집단 반발하면서 소송 등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실제 성사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전문가들도 예측하기 힘든 삼성그룹의 복잡한 사업구조개편 시나리오. 검증하기 힘들다는 점을 이용해 증권가에서는 갖은 ‘설’들이 ‘사실’인양 둔갑하고 있다.
이재용식 ‘선택과 집중’이 루머 배경
삼성 계열사들을 둘러싼 각종 설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최근 수년간 진행해온 삼성의 구조개편이 배경이 되고 있다.
삼성의 경영혁신은 2013년 연말 제일모직의 패션사업부문을 삼성에버랜드에 넘기면서 시동을 걸었다.
2014년엔 삼성SDS, 삼성에버랜드, 제일모직, 삼성SDI 등 핵심계열사들이 줄줄이 합병·이전 등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지난해에는 삼성토탈·삼성종합화학 등 4곳을 한화에 매각한 데 이어 삼성SDI의 케미컬 부문 등 3곳을 롯데에 넘기는 등 방위·화학 사업을 정리했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도 성사시키며 몸집을 상당히 줄였다.
아직도 이슈는 많이 남아 있다. 삼성이 그리는 사업재편의 큰 그림은 삼성전자 중심의 전자 계열사와 삼성생명 중심의 금융 계열사를 양대 축으로 수직계열화를 추진하는 것이라는 데 대다수 전문가의 시각이 일치한다.
이를 위해 삼성생명의 중간 금융지주회사 전환도 하나의 방안으로 거론된다. 보험업법 개정 가능성으로 인해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해소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데다 궁극적으로는 삼성전자의 인적분할과도 밀접하게 연관 지을 수 있는 사안이다.
삼성전자를 투자회사(홀딩스)와 사업회사로 분할하는 시나리오도 계속 언급되는 메뉴다.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지주사 전환을 추진한다는 것. 삼성그룹의 정점에 있는 삼성물산이 삼성전자 지분을 얼마나 획득하느냐도 관전 포인트다.
또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합병 재추진, 달라지는 금융환경에 따른 금융계열사들의 재정비 필요성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거대한 시나리오의 틈바구니에서 온갖 루머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이 중에는 제법 근거 있는 분석도 있지만, 대부분은 주가 차익을 노리는 작전세력, 인수합병 시장에서 가격을 조정하려는 사모펀드 등이 생산해내는 ‘허위 정보’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정세현 경영컨설턴트는 11일 CNB와 통화에서 “삼성이라는 주제는 시장을 교란하기 가장 손쉬운 재료다. 가령 삼성증권의 매각설을 퍼트려 다른 매물의 가격을 떨어트리는 식”이라며 “최근 이건희 삼성 회장의 사망설이 퍼지며 주가가 출렁거렸을 때 개미투자자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데서 보듯 각종 루머를 여과 없이 받아들이는 건 상당히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