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림기자 | 2016.07.07 16:59:35
고혈압치료제 올메사르탄의 부작용을 두고 환자들의 불안이 깊어지고 있다. 올메사르탄은 만성 설사와 탈수 등 치명적인 장질환 발병 부작용으로 주요 선진국에서 소송이 진행되고 있으며, 심지어 보험 급여 명단에서 삭제한 나라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식약처는 약품 설명서에 ‘주의사항’를 넣는 선에 그쳐 논란을 빚고 있다. 전 의료계를 대상으로 경고 서한까지 발송했던 식약처가 한발 물러선 이유는 뭘까. (CNB=김유림 기자)
만성설사·탈수…올메사르탄 부작용 심각
식약처, 전 의료계에 안정성 경고 ‘호들갑’
제약업계 반발 커지자 주의 문구로 마무리
올메사르탄 부작용 논란은 약품설명서에 주의사항 몇 줄을 추가하는 선에서 일단락 됐다. 대웅제약, JW중외제약, 삼진제약, 동화약품, 일양약품, CJ헬스케어, 일동제약, 한국콜마, LG생명과학, 경남제약 등 올메사르탄을 수입·판매하는 제약사들은 8일부터 “만성흡수불량증-유사 장질환이 조직검사에서 확정될 경우 이 약을 다시 복용하지 않아야 한다”는 문구를 넣게 된다.
올메사르탄은 안지오텐신수용체(ARB) 저해제 계열 고혈압 치료제다. 국내에는 단일제 140개, 복합제 181개 약품이 있으며 시장 규모는 약 5000억원으로 추산된다.
올메사르탄의 안전성 논란이 수면으로 올라온 건 지난 4월이다. 프랑스 국립의약품청(ANSM)은 ▲효과 미흡 ▲중증 장 질환 발병 위험을 이유로 올메사르탄의 의약품 명단 삭제를 결정했다. 명단에서 삭제되면 보험급여항목에서 제외된다. 따라서 해당 약품은 의료보험 적용을 받지 못한다.
우리 식약처 또한 이를 근거로 지난 4월 11일 올메사르탄을 처방하거나 투약할 때 주의해야 한다는 ‘안전성 서한’을 의료계에 대대적으로 배포했다. 식약처가 배포한 서한에는 “프랑스에서 의약품 명단 삭제를 결정했고, 한국 역시 전문가 자문 등 검토 절차를 거쳐 필요한 안전 조치를 취할 계획이다. 향후 의료진들은 환자에게 처방 시 주의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서한에 명시된 ‘의약품 명단 삭제’의 의미가 향후 허가 취소, 보험급여 목록 삭제 등의 조치를 취하겠다는 뜻인지는 명확치 않았다. 해석이 분분한 가운데 소비자들에게는 해당 의약품이 상당히 위험한 의약품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그러자 올메사르탄 매출 1위인 대웅제약과 한국다이이치산쿄는 “프랑스 정부의 의약품 명단 삭제는 허가 취소가 아니라 보험급여 목록 삭제일 뿐이다. 프랑스 당국이 올메사르탄이 다른 ARB 계열 약보다 값이 2배 정도 비싸기 때문에 보험재정 절감을 위해 이 같은 조치를 취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제약사들의 주장에 당시 식약처는 “프랑스 당국에 올메사르탄이 의약품 명단 삭제 결정이 허가취소인지, 급여삭제인지 확인하겠다”고 밝혔다.
이처럼 식약처가 정확한 정황 파악을 못하고 있는 사이 의료현장은 우왕좌왕 했다.
서울의 내과 개원 의사 A씨는 “식약처가 올메사르탄 부작용에 대한 안전성 서한을 갑작스럽게 배포했다. 급여제한, 처방제한의 조치는 없었지만 당장 처방을 내리기 부담스럽다. 이미 뉴스를 접한 환자들이 대체할 약이 많은데, 왜 올메사르탄을 처방하냐고 항의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후 식약처는 지난 5월 중앙약사심의위원회를 열어 대한고혈압학회 등 전문가 의견을 수렴해 주의사항을 넣는 선에서 마무리 지었다.
애초 식약처가 의료계에 대대적으로 서한을 배포한 것은 그만큼 위험성을 경고한 의미다. 하지만 ‘주의사항’ 추가로 한발 물러선 것이다.
부작용 빅데이터 없어 매번 ‘뒷북’
이에 대해 식약처가 제약업계의 거센 반발에 밀려 수위 조정을 한 것 아니냐는 의문이 일고 있다.
실제로 식약처는 주의사항을 넣으면서 “전문가 의견에 근거했다”고만 밝혔고, 국내 환자들에 대한 실태조사는 없었다.
반면 프랑스의 경우 2007년 1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고혈압 약을 복용한 모든 성인 환자(약 450만명)를 대상으로 대규모 조사를 시행해, 명확한 연관성을 밝혀냈다. 해당 연구 결과는 176년 전통의 세계적 학술지인 영국의학저널(British Medical Journal)에 2015년 8월 실렸다.
논문에 따르면 다른 고혈압 약에서는 투약기간에 따라 중증 장질환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았지만, 올메사르탄은 2년 이상 복용했을 경우 장질환 발생 위험도가 10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 이를 바탕으로 프랑스는 보험 급여 명단에서 올메사르탄을 삭제하는 강력한 조치를 취했다.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약은 사실상 시장 퇴출을 의미한다.
미국 역시 이미 몇 년 전부터 올메사르탄 부작용 연구를 진행해오고 있다. 2013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올메사르탄이 치명적인 장질환 등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경고와 함께 안전성 서한을 배포했으며, 현재 부작용 연구를 진행 중이다. FDA는 전 의료진에게 올메사르탄을 투약하는 환자에게서 장질환이 발병하면 FDA에 보고해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지난해 초 70여건이었던 올메사르탄 부작용 소송이 지난해 9월 기준 1230건으로 급증했으며, 계속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이들은 소장에서 이 약을 먹은 뒤 소화불량, 설사·탈수 등을 겪었고, 복용을 중단하면 부작용이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주요 선진국에서 올메사르탄이 논란을 빚자 의료계에서는 ‘제2의 아반디아’ 사건이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당뇨병치료제인 아반디아는 지난 2007년 미국에서 2만8000명이 참여한 임상시험을 진행한 결과, 심근경색 위험이 43%, 심혈관계 사망위험을 64% 증가시킨다는 연구결과가 밝혀져 안전성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이후 전 세계적으로 사망자가 보고됐고, 결국 2011년 미국과 유럽에서 전면 판매금지 됐다.
당시 식약처는 대체제가 없는 환자에 한해서 동의서를 받은 후 제한적 처방을 허용했지만, 부작용이 일어난 현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심지어 환자의 동의서 이행 현황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국감에서 비판을 받았다.
보건의료 전문가는 CNB에 “한국은 선진국들과 다르게 의약품 출시 이후 부작용을 보고하는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우리만의 데이터가 없다보니, 식약처가 조치를 취할 때 제대로 된 근거제시를 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발생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강경연 정책부장은 “올메사르탄의 위험성이 주요 선진국에서 최근에 알려지기 시작한 점을 감안하면 이번 식약처의 조치는 한 발 늦었다. 특히 올메사르탄을 대체할 수 있는 고혈압 약이 무수히 많기 때문에 안전성이 입증되기 전까지 급여중단, 처방규제 등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 국내 실태조사도 진행하지 않고 전문가 집단의 의견만으로 부작용 논란을 마무리한 보건 당국의 태도는 무책임하다”고 지적했다.
(CNB=김유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