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전세 아파트 특별공급을 악용한 편법 거래가 문제되고 있다. '100% 입주가능'이라는 광고전단을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상황이다. (사진=손강훈 기자)
도시서민들을 위해 서울시가 주변시세보다 싼 가격에 공급하고 있는 장기전세주택(시프트)이 온갖 편법·불법거래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일부 기획부동산이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시프트 입주 ‘무자격자’를 ‘자격자’로 둔갑시켜 거래를 진행하고 있지만 서울시와 SH공사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무주택서민들의 주거안정’이라는 당초 취지는 퇴색된 지 오래다. CNB가 편·불법거래 현장을 단독 취재했다. (CNB=손강훈 기자)
“수용가옥 사면 입주권 준다” 유혹
철거민 자격 갖춰 시프트 편법입주
개발 지연되면 ‘빚 폭탄’ 떠안게 돼
서울시·SH “나몰라라” 사실상 방치
서울시와 SH공사가 주관하는 시프트는 주변 전셋값의 80% 이하로 최장 20년까지 거주할 수 있는 임대주택이다. 까다로운 조건과 치열한 청약경쟁에도 가격과 기간이 갖는 장점으로 인기가 높다.
최소 2년 이상(24회 이상 납부)의 청약통장은 기본이며, 소득 및 자산보유(부동산, 자동차), 청약통장 납입 횟수, 연령, 부양가족 수, 서울시 연속거주기간, 사회취약계층 등 여러 조건(청약가점)을 따져서 입주자가 결정된다. 통상 경쟁률이 수십대 1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일부 부동산업소는 SNS와 전단지를 통해 “청약통장 NO, 청약경쟁 NO. 100% 입주가능”을 내세우는 광고를 하고 있다. 이들은 ‘특별공급’을 이용해 원하는 지역의 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다며 사람들을 유혹하는 중이다.
CNB는 지난 28일 해당 부동산에 상담을 요청했다. A중개업자는 “간단한 방법으로 100% 분양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도시계획 등으로 철거될 주택을 미리 구매해 소유권을 갖게 되면 나중에 철거가 이뤄진 후 장기전세주택 입주권을 받게 된다”며 “철거주택 구매 비용 역시 보상 받기 때문에 손해 보는 것은 없다. 1년 반에서 2년 정도만 기다리면 무조건 입주 가능”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시는 ‘서울특별시 철거민 등에 대한 주민주택 특별공급 규칙’을 통해 철거민·재개발 대상 주민에게 주거지원을 하고 있다. 도로·공원 건설 등 도시계획사업으로 수용되는 주택의 소유주에게 장기전세주택 입주권이 제공된다.
이처럼 특별공급은 철거민 등 특수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주거안정을 위한 것이다.
하지만 일부 부동산들은 수용 대상 가옥을 매입해 철거민 조건을 갖춘 뒤 시프트를 공급받으라며 유혹하고 있는 것. 수용대상 가옥은 1채에 1~2억원 가량에 거래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공공분양의 공정성을 훼손하는 것은 물론 철거계획이 연기되거나 무산될 경우, 매수자는 불필요한 주택을 매입한 셈이 돼 막대한 재산 손실을 초래할 위험성이 있다.
철거대상 세대주에게 시프트 입주권이 제공된다는 메리트가 있어 해당 가옥이 실제 시세보다 더 비싸게 거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자칫 사기 거래에 휘말릴 위험도 있다.
이런 거래를 성사시킨 중개업소는 법정 중개수수료 외에도 각종 인센티브 명목으로 뒷돈을 챙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매도자는 시세보다 비싼 값에 집을 팔게 되고 매수자는 시프트 프리미엄으로 더 높은 수수료를 내는 게 관행”이라고 귀뜸했다.
더구나 매매계약서는 정상적인 주택매매거래로 꾸며뒀기 때문에 만약 철거 지연 등 문제가 생기더라도 손실은 매수자가 고스란히 떠안게 되는 구조다.
이런 편법·불법 거래에도 불구하고 해당 부동산들은 ‘전혀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A중개업소 관계자는 “정상적인 거래이기 때문에 법적인 문제는 단 하나도 없다”며 “우리 부동산의 경우 그간의노하우로 정확하게 도시계발계획 예정 주택을 소개했다. 분양에 성공한 사례도 많다”고 자신했다.
▲시프트 특별공급을 전면으로 내세운 광고는 각종 포털 사이트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사진=모 부동산 광고 블로그)
“특별공급제도 뿌리째 손봐야”
편법 거래와 사기 위험이라는 문제가 있음에도 서울시와 SH공사 모두 마땅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는 상황이다. 일단 표면적으로는 매수-매도자 간 ‘정상적인 주택거래’로 포장돼 있기 때문에 혐의를 잡기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SH공사는 지난 28일 CNB와의 통화에서 “우리 역할은 시·구청에서 특별공급을 결정하면 물량을 공급하는 것”이라며 “제도적 부분은 시·구청의 소관이다”고 말했다. 재개발·철거 등에 관한 건 지자체 소관이란 얘기다.
그나마 서울시는 좀 더 적극적으로 해명했다. 서울시 주택제도과 최대영 주임은 CNB에 “이런 거래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 특별공급 대상자를 주민열람공고일 이전에 철거 주택을 소유한 자로 변경하는 등 법적으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조치는 취했다”며 “또한 한국공인중개사협회에 특별공급 관련 광고 중단 등의 공문을 보냈다”고 말했다.
이어 “도시개발계획이라는 것은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틀어질 수 있기 때문에 부동산 말만 믿고 덜컥 구입했다가 낭패를 볼 수 있다”며 “결국 구매자가 사기 영업에 넘어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앞뒤 얘기를 종합해보면, 결국 철거예정가옥 매수자 스스로 주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소유주가 실제 해당 주택에 일정기간 거주했는지 등을 따져서 시프트 입주 자격을 강화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한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설령 철거가옥을 매입해 시프트를 분양 받았더라도 이는 다른 서민들의 기회를 앗아가는 셈이 된다”며 “이런 꼼수 거래의 문제점과 위험성을 당국이 적극 알려야 하며, 특별공급 대상 철거민에 대한 기준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CNB=손강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