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왼쪽),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의 셋째부인 서미경씨의 미스롯데 시절 모습. (사진=CNB포토뱅크)
롯데그룹 비자금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급물살을 타고 있는 가운데 롯데가(家) 여인들의 계열사 매장 사업이 주목받고 있다. 이번 롯데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가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이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로부터 롯데면세점 입점 로비를 받았다는 의혹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정 대표의 상습도박 혐의로 발화한 이번 사건은 법조계 게이트로 불거져 롯데그룹 전체를 덮치고 있는 형국이다. (CNB=도기천 기자)
경영일선 물러난 신영자, 면세점 구설수
신격호 셋째부인 서미경, 롯데 매점 사업
검찰수사 칼끝 두 사람 비껴갈지 주목
계열사 매장 사업에 참여해 물의를 빚은 롯데가 여인들은 이번에 문제가 불거진 신영자 이사장을 비롯, 과거 구설수에 올랐던 신격호(94) 롯데 총괄회장의 셋째부인 서미경씨, 서씨의 무남독녀인 신유미 롯데호텔 고문 등이다.
현재 신 이사장은 수감 중인 정운호 대표로부터 면세점 입점 로비 과정에서 수억~수십억원의 금품을 수수한 의혹을 받고 있다. 정 대표가 2014년 7월 계약을 통해 롯데면세점 내 네이처리퍼블릭 매장 운영에 관한 컨설팅(점포 위치 조정, 제품 진열, 재고 관리 등)을 맡긴 A사는 신 이사장의 장남이 운영하는 회사로 알려져 의혹을 키우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 2일 검찰은 롯데호텔 면세사업부와 신 이사장 자택 등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정 대표의 상습도박 수사에서 비롯된 이번 사건은 정 대표의 사건수임을 맡았던 법조계 거물들이 불법수임료 혐의로 줄줄이 구속되면서 정관계 ‘태풍의 핵’으로 떠오른 상태다.
2009년 대검 수사기획관 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팀에 참여했던 홍만표 전 검사장, 부장판사 출신 최유정 변호사 등이 이미 구속된 상태며 이들이 어디까지 로비를 벌였는지가 수사의 핵심이라 법조계는 물론 정치권이 긴장하고 있다. 네이처리퍼블릭 사업과 연관된 기업들이 모두 수사를 받고 있으며, 롯데그룹 전반으로 불길이 번진 상태다.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의 연탄배달 봉사활동 모습.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신 이사장이 최근 롯데면세점 입점로비 의혹에 휘말려 의문을 낳고 있다.
봉사활동 전념 한다더니 “왜”
그동안 신 이사장은 롯데 경영에서 물러난 봉사활동에 전념해 온 것으로 알려진 터라 재계 안팎에선 이번 의혹이 의외라는 분위기다.
신 이사장은 신 총괄회장과 그의 첫번째 부인 고 노순화 여사 사이에서 태어난 맏딸이다.
신 총괄회장은 1940년 노씨와 혼인했으나, 성공해서 가난에서 벗어나겠다는 일념으로 신 이사장과 임신한 부인을 두고 1941년 홀로 일본으로 떠났다. 신 이사장은 유년 시절을 부친 없이 보냈고, 노씨는 1960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신 이사장을 홀로 키웠다.
신 총괄회장은 이처럼 처자식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죄책감에 신 이사장에게 더 애틋한 감정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신 이사장은 아버지의 뜻에 따라 오래전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1973년 호텔롯데 부사장을 시작으로, 롯데백화점 총괄부사장, 롯데면세점 사장, 롯데쇼핑 사장 등을 역임한 신 이사장은 2012년 2월 롯데쇼핑 사장 자리에서 물러나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하면서 사실상 경영에서 손을 뗐다.
여전히 롯데제과, 롯데쇼핑, 롯데닷컴, 롯데칠성음료, 롯데정보통신, 롯데푸드 등 계열사 지분을 갖고 있고, 호텔롯데, 부산롯데호텔, 롯데쇼핑, 롯데건설, 롯데자이언츠, 대홍기획, 롯데리아, 롯데재단 등의 등기임원을 맡고 있지만, 이사회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왔다.
이처럼 신 신이사장은 경영 일선에서 떨어져 있었지만, 매장 사업에는 관심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과거 신 이사장은 자신이 최대 주주인 시네마통상, 시네마 푸드를 통해 롯데시네마 안에서 매점사업을 독점하다가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의 대표 사례로 지탄 받은 바 있다.
결국 롯데시네마는 2013년 영화관 내 매점사업을 직영으로 전환하고, 두 회사의 매점 사업권을 회수했다. 롯데시네마로부터 일감이 끊긴 두 회사는 경영난에 시달리다가 결국 지난 1월 청산 절차에 들어갔다.
당시 두 회사의 롯데시네마 내 영업 중단 결정에는 동생 신동빈 롯데 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오너 일가의 사업독점에 대한 비판 여론을 의식한 신 회장이 직접 철수를 지시했다는 후문이다.
이번 롯데면세점 로비 의혹도 이런 신 회장의 매장 사업에 대한 미련이 화를 부른 것으로 보인다.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의 셋째부인 서미경씨 소유의 서울 서초구 방배동 롯데캐슬 벨베데레 빌라. (사진=도기천 기자)
서씨 모녀 이번엔 모습 드러날까
신 총괄회장의 셋째부인 서미경 씨도 매장 사업가로 알려져 있다. 아역배우 출신인 서씨는 1977년 ‘제1회 미스 롯데’에 뽑히면서 신 총괄회장의 눈에 들어왔다. 한동안 롯데 전속모델로 활약하면서 드라마, MC, 영화, 광고까지 두루 섭렵하다 신 총괄회장과 인연을 맺고 외동딸 신유미(현 롯데호텔 고문)를 낳았다.
신 총괄회장이 조강지처를 둔 채 후처로 서씨를 들이다보니 처음부터 신 이사장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첫번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신 이사장은 두 사람의 관계에 제동을 많이 걸었다는 후문이다.
그러다보니 신 총괄회장은 서씨를 호적에 올리지 못했으며, 서씨 모녀는 롯데 변방을 맴돌았다. 수십년 간 ‘얼굴 없는 모녀’로 통했던 그녀들은 작은 회사를 세워 신 총괄회장을 배경에 두고 롯데 매장들을 하나둘씩 ‘접수’해 나갔다.
서씨 모녀는 한때 롯데시네마를 지배하고 있는 유원실업 지분 100%를 보유해 롯데시네마 내 매점운영을 거의 독점하기도 했지만, 일감몰아주기 비난이 일자 최근 롯데쇼핑이 운영권을 회수했다.
롯데백화점 식당가에서 냉면집과 롯데리아 등 22곳을 운영하고 있는 유기개발도 서씨 모녀 소유다. 최근 JTBC ‘썰전’에서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현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의원)은 “롯데월드에 서미경씨 친척들이 점포 하나씩 다 갖고 있다는 소문이 몇 십년 동안 떠돌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서씨 모녀가 이번 롯데그룹 검찰 수사를 비껴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미 과거에 사정당국으로부터 충분한 조사를 받은 바 있고, 친인척 개개인이 각자 소유한 매장들이라 롯데그룹과 한데 묶기에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신 총괄회장이 비자금 수사 대상에 오른 만큼 서씨 모녀도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신격호·신동빈 부자의 수백억대 비자금설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라 두 사람(신영자·서미경)이 칼끝을 피해가기는 힘들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한편 롯데에 대한 검찰 수사는 계열사 간 비자금 의혹에 이어 제2롯데월드 인허가 로비 의혹으로까지 번져가고 있다.
롯데쇼핑, 롯데홈쇼핑, 롯데정보통신, 롯데피에스넷, 대홍기획 등 계열사들과 신격호 총괄회장의 집무실인 롯데호텔 34층, 신동빈 회장 자택 등 총 17곳이 압수수색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호텔롯데 상장이 연기되고, 롯데물산 등의 공모채발행 계획이 줄줄이 무산되는 등 창사 70여년 만에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CNB=도기천 기자)